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웠다. 그래서 단숨에 읽었다. 故 박완서 님의 산문은 나에게 정갈한 한정식 느낌이다. 소박한 음식이지만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나고, 반찬 그 어느 하나 허투루 담기지 않아 하나씩 음미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박완서 님의 산문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도 마찬가지의 기대감에 읽어보았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산문이 부담이 없으면서도 어느덧 삶에 대한 태도가 압축되어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들어서 공감하며 읽어나간다.

공감할 만한 소재와 내용 덕분에 더욱 집중해서 읽는다. 읽는 맛이 담백하면서도 깊어서 마음이 들뜬다.



박완서.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1950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중퇴하였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장편소설로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등이 있고, 소설집으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노란집』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두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모독』 『빈방』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2011년 1월 22일 여든 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은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2장 '그리운 침묵', 3장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4장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나뉜다.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다 지나간다, 꽃 출석부, 호미 예찬, 그리운 침묵, 그는 누구인가, 음식 이야기, 내가 문을 열어주마 등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펼쳐 드니, 글 읽는 맛이 다르다.

평범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해주어 집중해서 읽어나가게 만들어준다.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박완서 님만의 시선으로 들려주니 새롭고 특별했다.

집 앞엔 숲이 있고 동네가 숲에 안긴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사는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그만큼 숲이 주는 위안은 도시 문화권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앉은 것 같은 소외감을 다독거려주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 작은 숲이 불안에 떨 적에 보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특히 요새처럼 숲이 진녹색으로 두텁게 번들거릴 때 어디서 오는지 모를 수상한 바람이 숲을 흔들 적이 있다. 그럴 때 숲은 온몸에 비늘을 뒤집어쓴 한 마리 거대한 공룡으로 변한다. 중생대의 공룡이 멸종의 예감으로 괴롭게 몸을 뒤채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감이다. 숲의 나무들이 저희들끼리 연대하여 한 마리의 거대한 공룡으로 변신한 걸 보면서 느끼는 공포감이 제발 나만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만일 사람들이 함께 그런 것을 느낀다면 어떡하든지 숲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다 콘크리트를 치든지 아파트를 짓든지 하고 말 것 같아서이다. 인간은 공포감을 느꼈다 하면 무슨 수를 써서든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숲이 괴롭게 뒤채는 건 미구에 닥칠 그런 운명을 예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29쪽, 「다 지나간다」 중에서)



시대의 빈곤함도 눈앞에서 펼쳐보는 듯이 생생하게 잘 이야기를 해주었고, 아픈 이야기도 실감 나게 풀어내어 마음에 훅 들어와 박히는 듯했다.

박완서 님의 사생활을 한눈에 들여다본 듯이 읽어나갔다.



따뜻한 느낌으로 읽어나간다. 따뜻한 마음이 드러나도록 잘 표현을 했다. 그런데 작가의 말을 보다 보니 역시 작가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진 듯했다. 이 책은 거의가 다 일흔이 넘어 쓴 글들이라고 한다.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 아마도 삶을 무사히 다해간다는 안도감-나잇값 때문일 것이다.

날마다 나에게 가슴 울렁거리는 경탄과 기쁨을 자아내게 하는 자연의 질서와 그 안에 깃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읽는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262~263쪽)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갖가지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이야깃 속으로 푹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문득 가끔은 내 언어를 잃지 않도록 다독여주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이 책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소박하면서도, 그렇기에 더 잊기 쉬운 일상의 소소함을 이 책을 읽으며 꼭 다시 가다듬고 싶다.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실은 내가 진짜였다 1
유운 지음, 삼월 원작 / 연담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탄탄한 스토리와 화려한 그림, 환상적인 색감, 달달하고 당찬 소녀 키이라의 매력에 푹 빠져서 단숨에 읽어나가게 된다. 매력적인 웹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실은 내가 진짜였다 1
유운 지음, 삼월 원작 / 연담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식간에 읽었다. 그리고 '다음 권에 계속'이라는 글을 보고 나서야 '아, 이 책이 1권이구나!' 알게 되고 말았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인 것이다. 바보. 여기서 끊기면 나 어쩌라고!

나는 드라마도 소설도 완결이 안 되었을 때 시작하기를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몰입해서 보다 보면 다음을 기다리는 그 마음이 애가 탄다.



웹툰을 잘 몰라서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 책 『사실은 내가 진짜였다』는 카카오페이지 100만, 카카오웹툰 240만 독자가 선택한 로맨스 판타지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인기 많은 웹툰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니,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어 나에게도 읽을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인연이다.

그렇게 이 책은 받아들자마자 단숨에 읽으며 순식간에 몰입된 웹툰이다. 그만큼 매력만점이다.



아빠에게 사랑받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왔건만,

어느 날, 자신이 유일한 친딸이라 주장하며 나타난

코제트에 의해 처형당하고 말았다.

목이 베이는 선명한 감각을 느낀 채로

열여덟 살이 되던 해로 회귀한 키이라.

복수도 중요하지만 가짜 건 진짜 건 무슨 상관이야?

다시 찾은 생,

이젠 나를 위해 자유롭게 살겠어! (책 뒤표지 중에서)

이 책에는 에피소드 1에서 19까지 담겨 있다. 이 책이 1권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재미 좀 있게 생겼는데 그 즈음 딱 '다음 권에서'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원래 그런 것이 1권 아니던가.



알고 보니 웹툰 『사실은 내가 진짜였다』는 삼월 작가의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였다고 한다. 탄탄한 스토리와 화려한 그림, 환상적인 색감, 달달하고 당찬 소녀 키이라의 매력에 푹 빠져서 단숨에 읽어나가게 되는 웹툰이다. 매력적인 웹툰이다.

그리고 이 책이 1권이다. 찾아보면 웹툰으로 볼 수 있겠지만, 올 칼라의 멋진 그림을 책장을 넘겨가며 보는 것만큼 근사한 일도 없으리라 생각되어 다음 권이 출간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겠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 사랑, 그 난해한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방법
이상란 지음 / 치읓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제목은 『나는 신을 사랑하기로 했다』이다. 이 책을 제목만 보고 읽어보기로 한 것은 섣부른 결정이었다. 이 책에 하나님, 부처님을 비롯하여 동양신, 서양신, 즉 인도신, 제주신, 그리스신 등등 온갖 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 짐작했으니 말이다.

사랑이 사랑에 고백한다. 지난 삶들이 주인을 잃은 부끄러운 변명들이었다고.

신 앞에 '나'를 드러냄으로써 사랑이 되려고 한다. (11쪽)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사랑, 그 난해한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라고 하니,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사랑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는 기나긴 여정을 이 책 『나는 신을 사랑하기로 했다』와 함께 해본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된다. 들어가는 말 '사랑이 사랑에'를 시작으로, 1장 ''나': 직설적, 그 아래의 순수함', 2장 ''천국': 초원 위에서 신을 만나다', 3장 ''교감': 낯선 감정, 낯익은 느낌', 4장 ''신과 개와 고양이':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5장 ''가족': 신이 내린 가장 어려운 과제', 6장 ''길': 신의 그림자', 7장 ''본성': 악의 시대, 사랑을 말하다', 8장 ''받아들임':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로 나뉜다.


이 책은 처음 제목을 보고 예상하던 내용과 달랐다. 또한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 '사랑'이며,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하여 기대하던 그 내용과 또 다르게 펼쳐졌다. 예상을 뛰어넘어서 여러모로 생각 외의 책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책 내용 중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면, 사실 나는 반려동물 이름을 음식 이름으로 지으면 오래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검색해 보니 역시 그런 미신이 있다. 그런데 아들이 고양이 이름을 미역이라고 지었다고 개념 없는 주인을 만난 덕이라고 하다니, 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

이 책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여 따뜻하리라 생각했지만, 따뜻하기만 하지는 않았으니, 그건 사랑이란 것이 그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도 각양각색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니까.

신의 존재는 인간을 통해서 인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226쪽)

인간 세상에 드러난 다양한 모습 중 하나를 이 책을 통해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은 인간을 신보다 위대하게 만든다는 말 앞에서 생각에 잠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는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곰곰 생각에 잠겼다. 신의 존재는 인간을 통해 인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나 또한 그중 하나이니, 작가와의 접점을 찾아보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사랑은 역시 시공을 초월해서 누구나 진지하게 접근해 볼 만한 소재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십의 주역공부 - 다산처럼 인생의 고비에서 역경을 뛰어넘는 힘
김동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역은 많은 이들의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아인슈타인, 칼 융 등 수많은 학자들이 주역을 통해 세상의 거대한 섭리를 찾고자 했다고 하니, 나도 동참하려고 했지만, 막상 책장에 꽂아둔 원본을 꺼내들기에는 이미 서로 너무 멀어져 버렸다. 꺼내들었다가 도로 꽂아놓기를 수십 번.

그래도 주역에 관한 책이 나오면 관심을 갖고 바라본다. 원본보다는 훨씬 우리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주는 책이니 말이다.

이번에는 다산이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이어온 유배 생활의 첫 공부로 《주역》을 택했다고 하며, 그는 이를 통해 깨달은 순환과 균형의 이치를 삶에 대입시켜 《주역사전》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다산은 자신이 쓴 500여 권의 책을 모두 버려도 이 책만큼은 마지막까지 꼭 남겨 후세에 전해달라고 당부할 만큼 가장 아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이 책에 담긴 이야기에 슬슬 관심이 생기지 않는가.

이 책은 국내 사주명리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김동완 저서 『오십의 주역공부』이다. 주역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오십의 주역공부》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김동완. 운명 상담가, 인문학자, 동양학자이자 리더십연구가이다. 현재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금까지 3000명 이상의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산리더십연구소 소장, 한국역학회장과 한국사주역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고 강연도 했다. 《사주 명리 심리학》, 《관상심리학》, 《운과 돈을 부르는 색채 심리학》 등 2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책날개 발췌)

이제야 다산의 사상과 삶 속에서 운명학에 얽힌 흔적을 찾아서 책으로 펼쳐본다. 과골삼천이라는 말이 있듯 다산은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날만큼 정좌한 채 학문에 몰두했고 평생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런 다산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6쪽,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오십, 진정한 어른을 만나고 싶은 당신에게'를 시작으로, 1장 '새로운 나로 바로 선다는 것: 인생이 안 풀린다고 느낄 때 괘를 알면 내가 보인다', 2장 '정해진 운명을 넘어선다는 것: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고 싶을 때 괘를 알면 사람이 보인다', 3장 '살아갈 인생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 어제와 다른 내일을 만들고 싶을 때 괘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로 이어지며, 에필로그 《주역》을 새롭게 읽어야 할 때로 마무리된다.



다산은 요즘 말로 하면 '인생 꼬인 엄친아'였다고 한다. 일찍이 너무 잘 나간 탓인지, 서른아홉 살 때부터 다산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강진에 유배 갔을 때, 말할 상대조차 없는 그를 붙들어준 특별한 학문이 바로 《주역》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산이 수많은 경전과 철학서 가운데 《주역》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주역》이 난해하다는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실제로 다산은 1803년 늦봄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주역》에 관한 그의 생각을 이렇게 썼다.

"《주역》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가 꺾여서 탐구하고자 하면서도 감히 손도 대지 못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눈으로 보는 것, 붓으로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밥을 먹고 변소에 가며, 손가락을 놀리고 배를 문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주역》 아닌 것이 없었다."

내로라하는 천재들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히는 다산조차 기가 꺾일 정도로 어려운 책이기 때문에 유배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에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크다. 그전까지 다산은 《주역》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으나 일생일대의 시련과 맞닥뜨림으로써 《주역》과 다시 만난 셈이다. (18쪽)

이 책이 《주역》 강해가 아니라 다산의 이야기와 삶 속의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더욱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다산은 불혹의 전쟁 같은 삶과 치열한 학문적 연구를 마치고 50대에 비로소 자신의 외면과 내면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어떤 시련이 와도 정신은 절대 굴복하지 않았고 그 정신을 갈고 닦아 자신을 완성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이 다산의 그것과 닮았다면 지금 우리에게도 다산의 지혜가 필요하다. 모두가 혼란스럽고 휘청이는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진 이는 앞을 향해서 묵묵히 걷는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고 앞을 헤쳐나가는 사람이 성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200년 전 18년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던 다산의 철학을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때다. 《주역》은 지나온 삶을 반추할 기회를 주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한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22쪽)



이 책은 주역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예로 들었고, 저자가 사주를 봐준 사람들의 일화도 틈틈이 들려주고 있다.

내 눈에 띈 것은 다산 이야기.

양념처럼 중간중간 담겨있는 다산의 이야기를 만나면 무척 반가웠다.

다산이 별시 초시에 합격하고 2차 시험에서 떨어진 후 당시 심경을 <감흥>이라는 시로 남겼다고 한다.

<감흥>

세상살이 술 마시는 일과 같아서

처음에는 따져가며 잔에 따른다.

마신 뒤엔 문득 쉽게 술이 취하고

취한 뒤엔 본디 마음 혼미해지네.

정신 놓고 술 백 병을 들이키면서

돼지처럼 씩씩대며 계속 마시지.

산림에는 드넓은 거처가 많아

지혜로운 이 진작에 찾아간다네.

마음에만 품을 뿐 갈 수가 없어.

하릴 없이 남산 그늘 지키고 있네.

(140쪽)

저자는 이 시를 보면 청년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웃음이 난다고 언급한다. 생각해보니 정말 세상살이가 그렇긴 하다.

이 책은 기를 쓰고 주역을 이해하자고 거창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소리에서 문득 주역의 진리를 깨닫도록 슬쩍 건드려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덜어낼수록 이익이 커진다는 뜻은 동양철학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진리인데, 여기에 주역 공부하러 찾아온 회계사 제자 이야기가 이어진다.

"선생님, 저는 오래전부터 재무제표를 쓸 때 손익계산서를 왜 '익손계산서'라고 하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회계 시스템은 서양에서 도입됐고 서양에서는 의례 이익계산서(Income Statement)나 익손계산서(Profit and Loss Statement)라는 말을 쓰거든요?"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무척 흥미로웠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익손계산서라고 하지 않고 손익계산서라고 하죠. 익손이라는 말은 아예 쓰지 않아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선생님 밑에서 주역을 공부해보니 왜 손익계산서라고 하는지 알겠습니다."

"그것 자네가 혼자서 터득했나?"

"주역에 손괘 다음에 익괘가 나오는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서양은 이익 위주로,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만 동양에서는 우선 덜어내고 채운다고 보는 거죠." (169쪽)

또한 마지막에는 《주역》 64괘를 소개하고 있으니, 상징키워드로 주역 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겠다. 한 번에 이해하려고 하지는 말고 짤막짤막 끊어서 읽어나가고 사색에 잠기는 방법이 좋겠다.



'양자역학이 지금껏 해놓은 것은 태극, 음양, 팔괘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_스티븐 호킹

주역을 그냥 원전으로 읽자고 하면 부담스러워서 쉽게 접근할 수 없지만, 이렇게 접근성이 뛰어난 책으로 살짝 발을 담그는 방식으로 접해도 괜찮겠다.

사서삼경에 속하며,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학문이고, 이 안에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나잇대라면 특히 더욱 와닿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