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주역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예로 들었고, 저자가 사주를 봐준 사람들의 일화도 틈틈이 들려주고 있다.
내 눈에 띈 것은 다산 이야기.
양념처럼 중간중간 담겨있는 다산의 이야기를 만나면 무척 반가웠다.
다산이 별시 초시에 합격하고 2차 시험에서 떨어진 후 당시 심경을 <감흥>이라는 시로 남겼다고 한다.
<감흥>
세상살이 술 마시는 일과 같아서
처음에는 따져가며 잔에 따른다.
마신 뒤엔 문득 쉽게 술이 취하고
취한 뒤엔 본디 마음 혼미해지네.
정신 놓고 술 백 병을 들이키면서
돼지처럼 씩씩대며 계속 마시지.
산림에는 드넓은 거처가 많아
지혜로운 이 진작에 찾아간다네.
마음에만 품을 뿐 갈 수가 없어.
하릴 없이 남산 그늘 지키고 있네.
(140쪽)
저자는 이 시를 보면 청년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웃음이 난다고 언급한다. 생각해보니 정말 세상살이가 그렇긴 하다.
이 책은 기를 쓰고 주역을 이해하자고 거창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소리에서 문득 주역의 진리를 깨닫도록 슬쩍 건드려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덜어낼수록 이익이 커진다는 뜻은 동양철학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진리인데, 여기에 주역 공부하러 찾아온 회계사 제자 이야기가 이어진다.
"선생님, 저는 오래전부터 재무제표를 쓸 때 손익계산서를 왜 '익손계산서'라고 하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회계 시스템은 서양에서 도입됐고 서양에서는 의례 이익계산서(Income Statement)나 익손계산서(Profit and Loss Statement)라는 말을 쓰거든요?"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무척 흥미로웠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익손계산서라고 하지 않고 손익계산서라고 하죠. 익손이라는 말은 아예 쓰지 않아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선생님 밑에서 주역을 공부해보니 왜 손익계산서라고 하는지 알겠습니다."
"그것 자네가 혼자서 터득했나?"
"주역에 손괘 다음에 익괘가 나오는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서양은 이익 위주로,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만 동양에서는 우선 덜어내고 채운다고 보는 거죠." (169쪽)
또한 마지막에는 《주역》 64괘를 소개하고 있으니, 상징키워드로 주역 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겠다. 한 번에 이해하려고 하지는 말고 짤막짤막 끊어서 읽어나가고 사색에 잠기는 방법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