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통해 사유하는 대부분의 인간은 선형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대한다. 우리가 생각할 때, 머릿속에 문장이 줄지어 흘러간다. 우리가 살아갈 때, 눈앞에 세계가 지나간다. 그 가없는 흐름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현재라는 찰나 속에 우리는 산다. 일몰의 시간, 사라지는 빛이 물들이는 하늘을 보며 옆에 선 이에게 아름답지, 말하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이미 지나가고 없다. 그것이 우리의 언어가 우리에게 허락한 생의 방식이다. (179쪽)
개기월식도, 결혼식도, 생일도, 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소중하지 않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우리의 매일매일은 소중하다. 그것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무심히 지나가는 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소중히 숨결을 불어넣고 가치를 되살려주는 표현을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스르륵 넘길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머물면서 음미해야 한다.
저자가 글 속에 표현한 존재들과 공연 등을 되살리며, 내 오래전 기억들도 함께 떠올리는 시간을 보낸다. 파리의 기억도, 그 밖의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에서 교차점을 발견하며 한참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