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패(賜牌)는 조선 시대 임금이 궁가(宮家)나 공신에게 산림이나 토지를 하사하는 일이다. 경기도 양주와 의정부에 걸쳐 있는 산이 사패산인데, 선조가 6번째 공주인 정휘옹주에게 혼인 선물로 이 산을 주어서 생긴 이름이다. 해발 552m 화강암 덩어리 골산(骨山)이다. 그동안 마치 오봉산처럼 도봉산 일부로 여겨 따로 걸을 생각 내지 않다가 지도에서 골짜기들을 발견하고는 작심한다. 사패산은 골짜기 넷을 거느린다: 범골, 안골, 울띄골, 오야골. 오늘 이 넷 모두를 걷기로 한다. 20km가 넘을 듯하니 시간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차질이 빚어질지도 모른다.

 

회룡역에서 내려 호암사 가는 길을 따라 먼저 범골로 들어간다. 골짜기 이름이 왜 범일까? 다른 자료는 없고 호암사 호암(虎巖)이 범바위니까 아마도 이 골짜기에 범이 살았나보다 추측한다. 아닌 게 아니라 호암사 바로 뒤에 범이 살았을 만한 바위굴이 있다. 절에서 그랬는지 출입을 막아 놓았다. 굳이 들어갈 생각은 없다. 조금 가파르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을 걸어 범골 능선에 다다른다. 지도로 확인하니 사패산 정상을 오른쪽에 두고 오야골로 내려가 송추역 근처에서 점심 먹은 뒤 울띄골로 들어가는 일은 시간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길을 바꾼다.


 

사패 능선과 만나는 지점 1/3쯤 전에서 오른쪽 작은 능선을 타고 안골로 내려간다. 골바닥에 닿아 왼쪽으로 따라 올라가면 성불사가 나온다. 절을 구경 생각은 없으나 안골 깊이 들어갈 수 있는지 보려고 절집을 가로지른다. 더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하릴없이 내려오다가 안골 폭포를 만난다. 신기하게 하얀 암반 위로 조그만 물줄기가 재잘거리며 흘러내린다. 철이 철이니만큼 아쉽지만 한참이나 눈에 담아두고 음식점을 찾아 내려간다. 혼자 먹을 음식이 없는 유원지 식당 몇을 지나 겨우 설렁탕집을 발견한다. 시장이 반찬이라던가, 역대급 맛이다.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안골로 되들어가다가 오른쪽 능선 산너미길을 따라간다. 바로 여기가 북한산 둘레길 14구간인데 풍경 좋다고 소문 자자한 길이다. 나는 능선길을 본능으로 싫어하나 이 길에서는 그런 마음이 피어오르지 않는다. 울띄골로 내려가는 지점부터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직은 바싹 마른 겨울 모습이지만 물과 돌, 그리고 나무가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이 참으로 정겹고 곱다. 다른 철에 꼭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한다. 풍요롭지는 않으나 돌돌 흐르는 도랑물로 오랜만에 물 모심까지 한다. 물이 가는 길에서 멀어지는 인간 언덕길로 올라간다.


 

다시 숨 고르고 지도를 열어 살핀다. 오야골 가는 길을 살피기 위해서다. 어라?! 내 발밑에 굴 하나가 지나간다: 사패산 터널. 산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가는 광폭(편도 4) 쌍굴 터널이다. 지역 주민은 물론 환경 단체, 불교계가 일제히 들고일어나 반대한 까닭이다. 과연 얼마나 중요한 도로인지는 모르지만, 특히 박정희 이후부터 사악한 제국 부역자 집단이 장악한 대한민국 토건 현실에서 볼 때 흑막은 없을 수 없다고 본다. 본디 길이 지니는 쌍방 소통은 가로막히고 효능과 권위만이 일방으로 질주하는 터널 위에서 나는 돌연 허공으로 둥둥 떠오른다.


 

정신을 다시 주워 담고 내려와 오야골로 들어간다. 자두 옛말인 오얏과 관련된 이름 아닐까, 짐작하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잘 닦여진 길 왼쪽으로 내려다뵈는 제법 깊은 골짜기 내는 돌덩어리들로 이루어진 바닥이라 건천(乾川) 상태다. 한참 올라가니 원각사가 나온다. 흔히들 부르는 이 골짜기 이름이 기원한 절이다. 그냥 지나친다. 조금 뒤에 쏠 하나가 나타난다. 여기도 자질자질하나 물 많을 때 드러낼 모습과 소리를 상상하도록 이끄는 힘에 이끌려 이슥히 바라본다. 사패 능선 향해 더 올라갈 며리는 없다고 판단해 발길을 거둔다. 5시간 걸어 마무리다.

 

오늘 골짜기 넷을 더하면 5년간 서울 안팎 계곡 60곳을 걸었다. 놓친 데가 없지는 않겠지만 모든 골짜기로 들어가라라는 말에 여정히 값하는 여정이었다. 왜 굳이 골짜기를 걸었나? 능선과 달리 계곡에서는 비인간 생명인 버섯(곰팡이돌꽃··나무, 그리고 비생명 흙···바람들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마주하여 교감할 수 있어서다. 이런 내 행동은 제국주의 생활 양식 가운데 하나인 등산이 아니다; 내 몸에서 공생하는 섬세 생명과 더불어 더 널리 생명과 우주를 만나는 잔치제의. 숲에 홀로 들 때, 함께 들 인간 벗을 그리는 며리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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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일이송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역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결국 미군의 영국 기지 사용을 허가했다. 아침저녁으로 말 바꾸는 게 간사하기가 이를 데 없다. 엡스타인 영국 정부라는 조롱에 부합하는 결정이겠다.
반면에 미국의 요청의 나라를 거절한 나라도 있다. 스리랑카. 오늘, 아누라 쿠마라 스리랑카 대통령은 전투기의 착륙을 허가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 작은 나라의 용기를 상찬하는 말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란 전쟁 초반에도 이미 그 용기를 국제 사회에 보여줬다. 트럼프가 순전히 '재미를 위해' 스리랑카 인근에 있던 이란의 군함을 격침시키고 수십 명의 목숨을 빼앗았을 때, 재빨리 200명이 넘는 이란 선원을 구출했었다. 중립을 표방하는 스리랑카지만 순전히 인도주의적 결단에 의한 행보였다. 스리랑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세계인들이 그 행보에 존중을 표했다.
세계 열강들이 미국 눈치를 보면서 주접을 떠는 동안, 작은 나라 스리랑카는 이렇게 인도주의적 실천을 단행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황이 좋은 게 아니냐고 할 테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면서 스리랑카는 현재 매주 수요일마다 휴일로 정한 상태다. 높은 유가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제 언론들은 스리랑카의 '용기'만 부각하고 스리랑카의 이런 결단을 가능케 한 내막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령, 이런 결정을 내린 아누라 쿠라마 대통령이 스리랑카 역사상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라는 사실 같은 것들.
2022년 봉기를 통해 부패한 대통령을 내쫓은 스리랑카 주권자들은 핑퐁게임하듯 수십 년 동안 정권을 나눠 가지던 양당 엘리트들에 넌더리를 내고 3%의 지지율을 보이던 한줌의 좌파 세력을 지지했다. 한때 무장혁명을 지향했던 JVP는 이제 다른 좌파들과 연합해 좌파연합 NPP로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며 여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젊은 나이에 JVP 당원이었던 아누라 쿠라마는 늘 정부 암살단에 쫓기는 신세였다. 자기 때문에 부모집도 홀라당 불에 탈 정도였다. 온갖 역경을 딛고, 또 2022년 혁명에 힘입어 대통령까지 오른 인물이다. 역사상 처음 좌파가 정권을 잡았는지라 곧바로 주저앉을 거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무너지던 경제를 다시 세우고 있고 2026년 2월 기준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65%에 육박한다.
요컨대 스리랑카의 인도주의적 결단은 이처럼 주권자들이 만들어낸 좌파 정부의 결단이었던 셈이다. 가난한 소국이지만, 지금 현재 그 품위와 자존심과 인류애를 드러내는 나라.
주식 걱정, 유가 걱정에 전쟁과 살육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에게 미덕을 보여준다 하겠다. 인간의 품위는 얼마나 인간다운가에 있지 돈이 많은가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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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일이송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이란 전쟁에 관한 포스팅을 여러 번 했더니 이란 전쟁에 대해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이 연달아 온다. 정중이 고사했다.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다. 더구나 전쟁과 생태를 분리해서 말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을 계속 지켜보는 이유는 이 정치적 재앙이 곧 생태적 재앙이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의 기저에 흐르는 석유 지정학이 곧 기후 지정학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둘은 한 몸이다.
미군과 이스라엘을 폭격하는 사이, 미국에는 대형 산불이 나고 40도가 넘는 3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작 3월인데도 40도가 넘는다.
그런데 이건 약과다. 올해 늦여름부터는 우리가 겪어보지 못할 폭염이 지구를 덮칠 개연성이 높다. 간단한 과학 이야기다. 2023, 2024, 2025년. 이렇게 3년의 기온은 인류 역사상 최정점을 찍었다. 2024년의 경우 12만 년 동안 중 가장 더운 해였다. 왜 이렇게 더운 것인가를 놓고 과학자들이 지금도 박터지게 싸우는 중이다. 정말 에어로졸 감소 때문인가? 알베도 감소의 충격 때문인가? 또는 우리가 모르는 복잡한 지구생태계가 온난화를 더욱 상승시키는 건가?
하지만 문제는 이 3년의 더위가 라니냐 기간에 펼쳐졌다는 점이다. 라니냐는 0.4~0.6도 가량 지구의 기온을 떨어뜨린다. 라니냐 기간이었기 때문에 기온이 떨어졌어야 정상이었다. 반면에 엘니뇨는 지구의 기온을 끌어올린다. 바로 올해 늦여름부터 엘니뇨가 온다. 말하자면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3년 후에 엘니뇨가 오기 때문에, 막대한 폭염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미국의 3월 폭염에서 보듯 벌써부터 조짐이 안 좋다.
한쪽에선 정유 시설과 가스전이 불타오른다. 또 한쪽에서는 지구가 불타오른다. 왼쪽 사진은 이란이고, 오른쪽 사진은 미국의 래브라스카다. 이 둘은 다른 이야기인가? 화석연료 제국주의가 19세기 말부터 중동의 모든 땅자락에 경계를 그어가며 지정학적 갈등과 제노사이드와 전쟁을 유발해 왔고, 그렇게 유혈의 쟁탈전을 경유하며 추출한 석유와 가스를 불태운 결과 지구가 점점 더 불타오르게 된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결국 송유관이다. 세계 석유의 20%를 배출하는 송유관. 그곳이 막히니 줄지어 유조선도 늘어서고, 유가 상승 때문에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인질이 된 채 질질 끌려 다니고 있다. 말하자면 트럼프로 표상되는 화석연료 제국주의의 인질이 된 셈이다.
요즘 스페인이 가장 목소리 높여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판한다. 매일 비판이다. 전 세계에서 산체스 총리에게 팬레터가 쇄도하고 있단다. 스페인 내부의 정치적 지형에 따른 효과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덕분이기도 하다.
산체스 정부는 지난 6년간 태양광과 풍력 발전 용량을 두 배로 늘렸다. 콜롬비아와 함께 요근래 가장 빠른 속도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전기 가격을 가스 시장과 구조적으로 분리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최근 조사 결과, 스페인에서 가스 가격이 전기 가격을 결정하는 시간은 전체 시간의 15%에 불과하다. 이는 이탈리아의 90%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즉, 재생에너지에 투자함으로써 화석연료 가격 변동에 훨씬 덜 취약하게 된 것이다.
가스의 90% 이상을 미국에 의존하는 독일이 트럼프에 꿈벅 죽는 것에 비해, 스페인이 지금 머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따질 수 있는 데는 이런 에너지 전환이 나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터다. 재생에너지는 어떻게 전환하고 어떤 속도로 전환하냐에 따라, 자립이 될 수 있고, 평화의 자원이 될 수 있으며, 정의와 평등의 밑천이 될 수 있고, 또 민주주의와 반권위의 밑천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을 때 러시아에 가스를 의존하던 유럽 등 많은 나라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흐지부지됐다. 러시아산 가스가 아니라 미국산 가스를 구입했다. 미국 화석연료 기업들만 배가 터지도록 돈을 벌었다. 그리고 이란 전쟁이 나자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러시아산 가스 구입으로 선회하고 있다. 푸틴이 내적 어깨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일부 국가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들.
기회주의자인 프랑스 마크롱이 최근에 한 말은 그래도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재생에너지가 중요해졌다며 지금 받고 있는 피해가 "바로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의 대가"라고 공언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화석연료를 소비할 때마다 전쟁과 분쟁과 피로 점철된 비극들을 소비한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반전평화를 외치는 것과 화석연료 근절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한하게 작동하며 이윤을 축적하려는 이 전쟁 기계에 윤활유를 공급하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전쟁을 하면서 동시에 기후-생태를 보호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가 상승과 방산주 잭팟 타령 좀 제발 그만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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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96세의 고령으로 며칠 전 사망한 뒤 국내 학계에서 그를 “기리는” 글들이 쏟아졌다. 내가 접해본 글들은 대체로 “냉정한 우호”에 가까운 내용이었던 것 같다. 호의적 애도 가운데는 “젊었을” 사회이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동기가 하버마스의 글을 읽은 것이었다는 내용이 더러 있었다. 나도 “젊었을” 때 그의 글들을 접했었고 상당 부분 공감한 적도 있으나, 포스트모더니즘에 관련된 그의 글을 읽고서는 부정적 평가로 돌아섰다고 기억된다.
그의 사후, 2023년 10월 가자의 하마스 세력이 벌인 ‘알 학사 홍수 작전’--이에 관해서는 시온주의가 기획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종족 학살을 자행하는 것에 대해 그가 동료들과 발표한 친-이스라엘 입장문(「연대 원칙에 대하여(Grundsätze der Solidarität)」)을 환기하는 언급이 다수 나왔다. 하버마스는 거기서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옹호하고, 독일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했으며, 반유대주의를 경계하고 인도적 가이드라인—이스라엘의 반격은 국제법과 인류애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그가 제시한 인도적 가이드라인은 빈말에 불과했고,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데 주력한 입장문이었던 것이다.
국내에서 하버마스를 전적으로 옹호하는 지식인은 눈에 많이 띄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를 비판이론의 대가로 보는 데에는 대체로 공통적이다. ‘서구의 대표적 이론가’이며, 그런 정도의 대우는 받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서구의 대표적 이론가’란 무엇인가? 내가 페이스북 등에서 접한 글들에서 그 표현의 의미라고 느낀 것은 그래도 그는 ‘서구 이성’을 대표하는 발군의 이론가이며, 그만큼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의 대표적 이론가’의 의미는 그와는 정반대일 수도 있다.
AI 도움을 받아 번역해서 올리는 아래의 글은 2년 전 하버마스의 입장문이 논란이 되었을 때 바로 나온 것이다. 필자 하미드 다바시(Hamid Dabashi)는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비교문학, 세계 영화사, 포스트식민주의 비평 이론을 가르치는 ‘이란학 및 비교문학 담당 하고프 케보르키안(Hagop Kevorkian) 석좌교수’다. 최신 저서로 『두 가지 환상의 미래: 서구 이후의 이슬람』(2022), 『마지막 무슬림 지식인: 잘랄 알레 아흐마드의 삶과 유산』(2021), 『식민지적 시선의 역전: 페르시아인들의 해외 여행기』(2020), 『벌거벗은 임금님: 민족국가의 필연적 종말에 관하여』(2020) 등이 있다. 다바시의 하버마스 비판은 국내에서 자주 접하는, 하버마스에 대해 비판적 우호의 태도와는 대조적이라고 여겨져서 그의 글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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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사태를 계기로 폭로된 유럽 철학의 도덕적 파산>
이란, 시리아, 레바논, 혹은 터키가—러시아와 중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무기 공급, 그리고 외교적 보호를 받으며—오늘날의 가자지구처럼 텔아비브를 세 달 동안 밤낮으로 폭격하고, 수만 명의 이스라엘인을 살해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을 불구로 만들며, 수백만 명을 노숙자로 전락시켜 도시를 살 수 없는 폐허 더미로 만들 의지와 수단을 가졌다고 상상해 보라.
단 몇 초만이라도 그것을 상상해 보라. 이란과 그 동맹국들이 민간인 사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텔아비브의 인구 밀집 지역, 병원, 유대교 회당, 학교, 대학교, 도서관—실제로 인구가 밀집된 그 어떤 장소라도—을 의도적으로 겨냥한다. 그러고는 세계를 향해 그저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와 그의 전쟁 내각을 찾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가상의 시나리오가 맹렬히 전개된 지 24시간 이내에 미국, 영국, EU, 캐나다, 호주, 그리고 특히 독일이 무엇을 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라. [2023년] 10월 7일 이후(그리고 그 이전 수십 년 동안), 텔아비브의 서구 동맹국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지른 일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 장비와 폭탄, 탄약을 제공하고 외교적 비호까지 해주었으며, 그동안 미국 언론 매체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도륙과 제노사이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제공해 왔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라.
앞서 언급한 가상의 시나리오는 현존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단 하루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유럽, 호주, 캐나다의 군사적 폭압이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힘없는 세계의 민초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현실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서구”라고 부르는 그 무엇의 도덕적 상상력 및 철학적 우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럽의 도덕적 상상력의 영역 밖에 있는 우리 같은 이들은 그들의 철학적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랍인, 이란인, 무슬림, 혹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우리는 유럽 철학자들에게 그 어떤 존재론적 실재성(ontological reality)도 갖지 못하며, 단지 정복되고 잠재워져야 할 형이상학적 위협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임마누엘 칸트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에서 시작하여 에마뉘엘 레비나스와 슬라보예 지젝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기이한 것, 물건, 혹은 동양학자들이 해독해야 할 과업을 부여받았던 지식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이나 미국, 그리고 그 유럽 동맹국들에 의해 우리 중 수만 명이 살해당한다 해도 유럽 철학자들의 마음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생기지 않는다.
유럽의 부족적 청중들
의구심이 든다면, 현대 유럽의 대표적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와 그의 동료 몇 명을 보라.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뻔뻔하게도, 잔인하고 저속한 행태를 보이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도륙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제 질문은 더 이상 현재 94세인 하버마스를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다. 질문은 그를 사회과학자이자 철학자, 그리고 비판적 사상가로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다. 그의 생각이—과연 그랬던 적이 있는지조차 의문이지만—여전히 세계에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가?
세계는 나치즘과의 악독한 결탁에 비춰서 또 다른 주요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에 대해 유사한 질문들을 던져왔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제 하버마스의 폭력적인 시온주의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것이 그의 철학적 기획 전체를 평가하는 데 미칠 중대한 결과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질문들을 던져야만 한다. 하버마스의 도덕적 상상력 안에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같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 단 한 조각도 없다면, 과연 우리가 그의 철학적 기획 전체를 그의 부족적인 유럽 청중들을 넘어 인류의 나머지 부분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고 간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버마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저명한 이란 사회학자 아세프 바야트는 가자 상황에 관해 그가 “자기 자신의 아이디어와 모순된다”고 말했다. 정중히 말하건대,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팔레스타인 생명을 무시하는 하버마스의 태도는 그의 시온주의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는 비유럽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보지 않거나,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공개적으로 선언했듯 그들을 “인간 짐승”으로 보는 세계관과 정확히 일치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무시는 독일과 유럽의 철학적 상상력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통념상 독일인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헌신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출한 그 웅장한 문건이 입증하듯, 나머지 세계가 보기에 나치 시대의 독일이 행했던 일과 그들이 지금 시오니즘 시대에 행하고 있는 일 사이에는 완벽한 일관성이 존재한다.
필자는 하버마스의 입장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시오니즘적 도륙에 가담하는 독일의 국가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고 믿는다. 또한 아랍인과 무슬림에 대해 똑같이 인종차별적이고 이슬람 혐오적이며 외국인 혐오적인 증오를 품고 이스라엘 정착민 식민지의 집단학살 행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이른바 “독일 좌파”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오늘날 독일이 가진 것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라 ‘집단학살에 대한 향수’라고 생각한다 해도 우리는 용서받아야 할 것이다. 독일은 지난 100일뿐만 아니라 지난 한 세기 동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도륙에 대리 만족하며 탐닉해 왔기 때문이다.
도덕적 타락
유럽 철학자들의 세계관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유럽 중심주의’라는 비판은 단순히 그들의 사고에 있는 인식론적 결함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타락의 일관된 징후다. 필자는 과거 여러 차례에 걸쳐 유럽 철학적 사고의 중심과 오늘날 그들의 가장 찬양받는 대표자들에게 깃든 치유 불가능한 인종차별을 지적해 왔다.
이 도덕적 타락은 단순한 정치적 실수나 이데올로기적 맹점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치유되지 않는 부족주의로 남아 있는 그들의 철학적 상상력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티니크의 위대한 시인 에메 세제르의 유명한 선언을 되새겨야 한다.
“그렇다, 히틀러와 히틀러주의가 밟아온 단계를 임상적으로 상세히 연구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20세기의 아주 고결하고 인문주의적이며 기독교적인 부르주아들에게 그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에 히틀러가 살고 있으며, 히틀러가 그들의 악귀라는 사실을 폭로해야 한다. 그들이 히틀러를 비난한다 해도 그것은 모순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히틀러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죄악이나 인간에 가해진 굴욕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백인’에 대한 죄악이며 백인에게 가해진 굴욕이기 때문이다. 즉, 그때까지 아랍인, 인도인, 아프리카인들에게만 전적으로 유보되었던 식민주의적 수법을 히틀러가 유럽에 적용했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은 세제르가 이 구절에서 언급한 식민지 만행의 연장선에 있다. 하버마스는 팔레스타인 도륙을 승인하는 자신의 태도가, 자신의 조상이 나미비아에서 헤레로와 나마쿠아 집단학살을 저질렀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속담 속의 타조처럼, 독일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유럽적 망상 속에 머리를 처박고 세계가 그들의 본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필자가 보기에 하버마스는 놀랍거나 모순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는 보편적인 자세를 거짓으로 취해왔던 자신의 철학적 계보가 지닌, 치유 불가능한 부족주의를 철저히 지켰을 뿐이다.
이제 세계는 그 거짓된 보편성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났다. 콩고민주공화국의 V.Y. 무딤베, 아르헨티나의 월터 미뇰로나 엔리케 두셀, 혹은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과 같은 철학자들이 하버마스와 그 일당들보다 훨씬 더 정당한 보편성을 주장할 자격이 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하버마스 성명서의 도덕적 파산은 유럽 철학과 나머지 세계 사이의 식민지적 관계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세계는 유럽의 ‘종족 철학(ethno-philosophy)’이라는 거짓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해방을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같은 이들이 겪는 세계적인 고통에 빚지고 있다. 그들의 장기적이고 역사적인 영웅주의와 희생은 마침내 “서구 문명”의 기초에 깔린 노골적인 야만성을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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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1일 나는 성내천을 거슬러 걸었다. 청량산 허리께까지 닿아 그 발원지를 가늠만 한 뒤 시간에 쫓겨 되돌아왔다. 그 정도면 됐다고 여겨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길을 내려왔다고 썼다. 오늘 그 길에 다시 선다.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계곡을 다 걷고 그 너머에 있는 고골 계곡까지 걸어 나올 참이다. 지하철 5호선은 강동역에서 갈라져 마천역과 하남 검단산역을 종점으로 하는 두 노선이 있다. 마천역에서 출발해 계곡 둘을 걸어 하남 검단산역으로 가는 경로다.

 

다시 성내천 계곡을 향한 며리가 있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어 끊어진 인연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사람 하나 있다. ‘모든 인연은 배반으로 끝난다(김종철 선생)’, 누구 잘잘못을 따지기는 어려우나 꼭 그러자면 내 잘못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바 나는 미숙했고 투미했다. 못된 탐욕이 있지는 않았으나 숙의에 실패했다. 오늘 아침 홀연 그와 그가 살던 곳이 떠올랐다. 그가 내 생에 남긴 무늬를 기리며 내가 그 생에 남긴 얼룩을 뉘우치고자 하는 결심이 서늘 포근 들었다.

 

그가 건강하게 살아가길 삼가 빌면서 발걸음 기억 좇아 청량산 성내천 발원지로 가는 계곡에 든다. 쉽게 가는 능선길을 마다하고 계곡 물길을 따른다. 어느 순간 길은 능선으로 방향을 튼다. 물을 따라가서는 길이 안 된다고 먼저 간 이들이 판단한 결과일 테다. 나는 결연히 물소리를 따르기로 한다. 늘 그렇듯 이렇게 일부러 길 밖으로 나가는 찰나부터 두려움, 아뜩함, 그리고 기이한 설렘이 갈마든다. 비와 땀에 젖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 발원지를 향해 길을 만든다.

 

안말내(성내천) 습원

 

얼마나 헤맸을까깨진 기왓장 하나가 눈으로 와락 뛰어든다얼른 고개를 들어보니 능선 이룬 남한산성이 저 멀리 어룽어룽 보인다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주위를 찬찬히 살피니 뚜렷하지는 않으나 성내천 처음 물을 머금어 흘려보낼 만한 조그만 습원 있다예를 표하자 편안한 심사가 되어서는 쉽게 에돌아가는 비탈길로 방향을 튼다드디어 연주봉 옹성 암문 근처에 다다른다이렇게 헤맨 탓으로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다내쳐 고골 계곡으로 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전승문(남한산성 북문)

 

북문 아래 식당에서 산나물 없는 산나물’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는다주인장은 손님에 별 관심이 없고 식당 한복판에 친구들과 앉아 낮술 판 벌이며 스페인 여행 이야기를 해댄다이렇게 번 돈으로 그렇게 누리는가 보다아무렴남한산성이야 한낱 유원지지 역사는 무슨무심히 일어나 북문으로 간다정조대왕이 전승문(全勝門)이란 이름은 내렸으나 현액을 내리지 않아 나중에 채자(採字)로 달았다고 한다역사는 종종 이렇게 아퀴를 나중에 맞추며 흘러가기도 하는가보다.



북문에서 내려가는 고골은 광주 옛 읍치(邑治)라는 뜻이다. 한강을 끼고 있어 기원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온조가 세운 백제 요지기도 하다. 고려 건국공신 왕규가 본거지로 삼았던 곳으로 추정된다. 조선 때는 남양주 둔지나루, 광주 창모루를 통해 모인 식량을 고골 사창(司倉)에 보관했다가 등짐으로 남한산성까지 날랐다. 그 길이 세미(稅米)길이다. 세미길을 내어준 골짜기가 바로 고골 골짜기다. 고골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내가 오늘날 덕풍천이다. 고골은 유구한 역사 그 자체다.


고골내(덕풍천) 물소리를 처음 들은곳


골짜기 아래 펼쳐진 벌은 둔전(屯田)이 있었을 만큼 넓다. 그런 역사와 지정학이 사라진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형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안정된 농촌도 아니고 가지런한 도시도 아니며 하다못해 무슨 공업단지도 아니다. 건성드뭇이 자리 잡은 각종 건물 탓에 어수선하고 너절하기까지 하다. 식민 통치와 부역 국가 난개발 과정에서 교통 주변부로 내몰리며 눈 밖으로 밀려난 듯하다. 최근 공공주택 지구로 지정되어 목하 폐허가 되고 있다. 덕풍천 중상류 살풍경도 똑같다.


이 폐허는 또 다른 폐허를 낳지 않을까? 


덕풍천을 따라 걷는 내내 심사가 편치 않다. 성내천에 이름 빼앗긴 안말내처럼 여기 고골내도 웅숭깊은 역사를 되살려 내기에는 너무도 살뜰히 더럽혀졌다. 공공주택 지구 토건이 끝난 다음 여기는 어찌 변해 있을까. 이 토건에 공공연히 침투했을 부역 자본 정체를 아는 나로서는 몹시도 비관할 수밖에 없다. 저들이 역사와 자연을 공경할 리 없다. 오히려 망가뜨려야 종주국에 바치는 충성이 되니 기를 쓰고 압살하리라. 각성한 시민이 굳세게 맞서 싸우기를 간절히 빈다.

 

다섯 시간 동안 안말내, 고골내 골짜기를 잇는 해발 500m 고개를 넘어 물경 20km를 걸었다. 천추 아래 모든 근육이 아프지만 내일 피곤을 걱정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 살아간다. 오히려 내가 숲과 더불어 반제 전선을 이루는 이 제의가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한다. 검찰개혁이 그런대로 방향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개혁 대상한테 개혁을 맡겨 놓고 휘청댄 개혁 주체는 아직도 저들이 혼을 제국에 판 악령 존재라는 진실에 귀 닫고 있다. 반성하고 책임져야 한다.

 

숲으로 떠날 때는 사사로운 계기가 작동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게 숲은 사사로움 너머까지 번지는 지평이므로 서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질문과 공부가 더해져 내 삶을 확장하고 증언하는 일이 빠져서는 안 된다. 당연히 돈 되는 일과 반대 방향이다. 아도르노가 말했듯 고결을 내려놓고 각별한 수치심을 지닌 채 안절부절못하면서 가난하게 살아가는삶이 선한 사람을 만든다. 비록 순댓국에 소주 한 잔일 테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를 빛접게 그리며 지하철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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