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개였다······고 느낀다

아니 풀이었던가······

풀이었다면 개일 수 없었을 텐데, 개에게 말을 걸던

풀의 마음이 익숙하다

그렇다면 나는 뭐였나?

내가 뭐였냐는 게 이제는 중요하지 않지만

거기그 장소의 냄새가

사무칠 때가 있다

흙과 먼지와 피와 살과 눈물의 냄새, 그 사이로

향긋하게 번지던 가느다란 풀냄새가

 

-김선우 축 생일<미륵의 고독> 1의 서장(序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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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로서 향후 삶에 큰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는 어떤 제안을 한 사람과 대화한 뒤 심사 복잡해진 일요일 낮. 점심 같이하자는 청을 정중히 물리고 그냥 지하철을 탄다. 생각에 없던 을지로4가역에서 내린다.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서자, 사람 왜자기는 음식점이 나온다. 기본 차림으로 보이는 음식과 소주를 주문한다. 뜨끈한 국물에 속을 데우고 찬 소주를 들이켠다.

 

식사 마치고 나와 조금 걸으니 청계천 배오개다리 출입 계단이 나온다. 배오개다리는 본디 없었으나 복원 과정에서 만들었다. 배오개는 다리 정북향 나지막한 고개에 배나무가 많이 있어서 붙인 옛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한자로는 이현(梨峴)이고 사극 아이콘 최숙빈이 살았던 이현궁(梨峴宮)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이명박 토건이 불러낸 뜻밖 서사가 흥미롭다.

 

이명박이 복원하기 전에는 복개 위에 고가도로가 있었고, 그전에는 구정물이 흐르는 천변에 판잣집이 닥지닥지 들러붙어 있었다. 청계천이란 이름은 왜 강점기에 붙였고 본디는 개천(開川)’이었다. 조선 건국 초부터 개천도감을 설치해 치수에 힘썼을 정도로 한양도성 행정에 매우 중요한 생활하수로였다. 연인들 거니는 오늘날 풍경은 토건이 지은 가벼운낭만이다.

 

복원된 청계천을 놓고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명박 인간성과 실제 정치 행태를 보면 논란보다 더 깊은 쟁점이 존재하겠지만 그리 들어가지 않고 오늘 청계 이야기는 요즘 내 화두와 관련한 내용만 한다. 배오개다리 아래로 내려서자마자 눈길은 버드나무에 사로잡혔다. 정화 본성 버드나무가 물가에 있는 일이야 당연하거니와 내 주의는 다른 생명을 향한다.


 

죽은 등걸은 말할 것도 없고, 산 줄기에도 무성하게 핀 버섯-대부분 운지(雲芝)라 불리는 구름버섯-이 내 숨을 70번이나 멈추게 한다. 사진 찍느라 시공간은 물론 내 자신 마저 해체한 채로 흘러가다가 홀연 광통교에 가 닿는다. 지나온 물길이 아득한 소실점 되어 사라진다. 그래. 없다, 청계도 천도. 내가 본 것은 정화 버드나무와 그 주검에서 움터 산 버섯뿐이었다.

 

연인원 19천만 명 다녀간 명성도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해당 70억 원짜리 물소리도 개천(開川)이란 장소와 풍경이 6백 년 동안 간직해 온 전언이 아니다. 개천은 상수(上水)인 수십 개 지천이 백성을 먹여 살리고 내온 허드렛물을 받아 한강으로 내보내 한양을 정화하는 하수(下水)로서 숭고한 음성을 소롯이 간직하고 있다. 나는 오늘 바로 그 소리를 듣는다.

 

개천은 이 물 이름이기도 하지만 정화 하수 기능을 온전히 하기 위해 물길을 여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물을 붓는이명박식 토건과 전혀 다르다. 기술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삶을 이해하는 태도 차이다. 이명박 청계천 복원은 앵글로아메리카 제국이 저질러온 테라포밍에 해당한다. 장소와 풍경 고유함을 살해하고 우스개 삼은 범죄다. 바른길이 과연 있을까?

 

국권 상실기 왜 제국이 서울을 짝퉁 테라포밍으로 극심하게 도륙한 데다가 해방 이후 부역 정권이 미 제국 식 테라포밍을 중첩하면서 너무나 처참하게 망가뜨린 까닭에 나 같은 무지렁이 지식과 상상력으로는 절망밖에 할 일이 없다. 나는 속죄부터 한다. 나아가, 절망할 수 없어 할 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 아프고 슬픈 장소와 풍경에 더 깊게 귀 기울인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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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성지가 된 지 오래다. 윤석열이가 검찰총장 되어 반란을 일으킨 이후 서초동 교대역과 서초역 일대가 광화문 버금가는 장소와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검찰청, 대법원, 윤석열이 우리가 몰려 있는 곳이어서다. 지난 1011일에는 촛불행동이 조희대 대법원 앞인 서초역 8번 출구에서 집회하고 강남역 쪽으로 행진했다.

 

대검찰청은 물론 대법원, 심지어 아크로비스타까지도 권위주의에 절은 건축물이다. 거기서 일하는 자들과 사는 자들을 그대로 반영한다. 아니다. 거꾸로다. 그런 상징을 조작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지었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이가 싸지른 친위쿠데타 이후 속속 밝혀지는바 이 건물들로 상징되는 법과 힘을 쥔 사악한 무리가 서초 풍경을 뒤집어놨다.

 

서초(瑞草)’서리풀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서리풀은 벼다. 본디 오래전에는 이곳이 질 좋은 쌀 생산지였다고 전한다. 우리 생명 공동체 존속에 단연 으뜸으로 공헌한 식물 생명체가 쌀이라는 사실을 임을 생각할 때 이 살림 터전에다 죽임 성채를 세운 짓은 아무래도 음모다. 그에 맞서 씨알풀(民草)’이 살해 풍경을 도로 뒤집어놓으려 한다.

 

아니다. 아미타브 고시-육두구의 저주저자- 어법에 따르면 이 장소와 풍경 자체가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들리지 않는 음성으로 씨알풀을 부르고 씨알풀은 거기 응답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장소와 풍경은 우리랑 공생하는 당사자로서 반란과 살해에 맞서는 전선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죽은 땅덩어리와 텅 빈 허공이 결단코 아니다.

 

서리풀을 떠나며 나는 소스라치듯 깨닫는다. 그동안 숲과 물을 걷고 난 뒤 밤이 되면 문득 낮에 걸었던 숲과 물이 마치 사람처럼 그리워지며 어둠 속에 남겨진 그 고독을 짠해하던 심사가 어디서 발원하는지를 말이다. 비록 약한 의인법이긴 하지만 장소와 풍경을 사물 취급하지 않았다는 증거니 기나긴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한다. 정색하고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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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식당이라도 주인과 안면 트는 집이 있고 그렇지 못한 집이 있기 마련이다. 뒤 경우인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하려고 카드를 주니 느닷없이 이런다: 현금 없으신가 봐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순간 당황했다. 잠시 뒤에 한 내 대답은 이렇다: , 비용 증빙 때문에요.

 

식당 문을 막 나서는데 등 뒤에서 주인이 들으라는 듯 말한다: 세금 얼마나 내길래. ‘세금 많이 내나 보네!’ 하고 놀라는 말투가 아니다. ‘대체 세금 얼마나 낸다고···.’ 하고 비아냥거리는 말투다. 순간, 또 당황했다. 잠시 뒤에 한 내 생각은 이렇다: 다음에는 민망해서 이 집 못 오겠구나.

 

사실 한의사는 세금 관련해서 비용 증빙이 쉽지 않은 직업군에 속한다. 관내 식당에서 밥 먹은 영수증만 인정하다가 최근 들어 관외 것도 인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수증을 챙긴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경우를 당하면 내 가난을 일부러 드러내는 듯해 시선이 가리산지리산한다.

 

필경 그 식당 주인도 세금을 문제 삼아서 현금 결제를 요구했을 테다. 아무리 줄 서서 먹는 집이라 해도 세금, 뭐 얼마나 된다고 신경 쓰냐?’ 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결국 나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다른 처지에 섬으로써 이런 일이 일어난 셈이다. 그런데 왜 그는 내게 비아냥거리는가?

 

세금 문제로 신경 쓰는 같은 상황에서 탈세를 대놓고 시도하는 쪽이 도리어 그렇게나마 증빙을 시도해 비용 처리하려는 쪽을 나무랍게 대하는 행동은 아무래도 괴이쩍다. 자기기만이거나 변형된 자기혐오쯤 되지 싶다. 식민지 그늘에서 뒤틀어진 어떤 부류 자화상 같아서 영판 속 쓰리다.

 

그나저나 가성비 좋은 단골 식당 하나 잃었다 싶으니 이 또한 심사 보깨는 일이다. 도시 식당이 얄팍한 음식으로 사람을 모욕하는 풍조가 갈수록 가파르게 가속해 가는 마당이라 허탈감이 뜻밖에 옴팡지다. 사람 사이 쓰렁쓰렁해질 때면 늘 하던 대로 나는 허영허영 휘적휘적 숲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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