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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승룡(서울의소리 편집주간)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北이 反美인 이유를 나눕니다. 저는 평화협정을 지향합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곳을 파괴하라!"

1950년 6월 27일 동경에 있던 맥아더는 5공군 사령관에게 명령한다.

"폭격기를 한반도로 출동시켜 36시간 동안 모든 폭탄을 북군에게 쏟아 부어라" 5공군 사령관이 답한다. “각하, 지형도 모르고 한국군과의 교신이 안 돼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맥아더는 퉁명하게 "어쨌든 38선과 전선 사이에서 움직이는 건 다 폭격해”

1950년 7월 13일 B-29 폭격기 56대가 참가한 원산폭격은 주민들이 사는 주택가에 폭탄이 떨어져 1,249명이 희생되었다. 이중 195명이 여성, 125명이 어린이, 122명이 노인이었다.

맥아더는 1950년11월5일 중대한 명령을 또 내렸다. "北의 모든 도시와 마을들을 군사목표로 삼아 완전 초토화시켜라" 이때 등장한 폭탄이 네이팜탄과 소이탄이다. 가솔린이 섞인 이 폭탄들은 터지면 직경 약 45미터의 둥근 지역을 모조리 태웠다.

2차 대전은 대도시에 피해가 집중되었는데 맥아더 명령으로 작은 시골마을까지 모두 불살라졌다. 폭격의 패턴은 먼저 중폭격기가 잿더미로 만들면, 이어 전폭기가 나타나 화재 진화를 못하도록 기총소사를 하고 시한폭탄을 뿌렸다.

1952년 여름 미국은 北의 78개 도시와 읍, 주요 군사시설을 ‘지도위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이렇게 진행된 ‘프레스 펌프 작전’ 첫날 무려 1,254회의 폭격과 2만3천 갤런의 네이팜탄이 평양을 비롯한 밀집지역에 퍼부어졌다.

1952년 7월 11일과 12일 가공할만한 평양폭격이 가해졌는데 폭격의 목표물은 ‘살아 있는 것들’이었다. 1만여 통의 네이팜탄과 6만2천 발의 탄약, 697톤의 폭탄이 북한 주민들의 머리 위에 쏟아졌고, 하루에만 평양시민 7,000여명이 사망하였다.

8월 29일은 전쟁 기간 중 최대의 폭격이 이뤄졌는데 그날 하루 동안 평양은 1,403회의 폭격과 700톤의 폭탄 세례를 받아야 했다. 미 공군은 보급을 끊기 위해 북 전역을 연결하는 철도망을 파괴했다. 또 포로송환 문제로 휴전협상이 중단되자 압력을 가하기 위해 모든 민간인들에게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했다.

심지어 폭격 대상에서 제외시켰던 수력발전소와 논농사에 필수적인 저수지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곡창지대인 해주의 경우 저수지 20곳에 폭탄이 떨어지면서 둑이 파괴돼 마을이 물에 잠기고 벼농사가 중단되었다.

<세균전으로도 北을 공격했다>

美軍에 의해 조선반도에서 52년 1월28일부터 세균전이 시작했다. 미 합동참모본부의 지시와 극동군 사령부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다. 폭탄이 투하되어 터지면 폭탄 뚜껑이 열리면 페스트, 콜레라, 장티프스 각종 전염병 균을 보균한 파리, 거미, 빈대 등 곤충들이 나와 많은 감염시켜 이유도 모르고 죽게 된다.

브루스 커밍스(1943년생)는 시카고 대 석좌교수로 한국전쟁에 대한 권위 있는 역사학자인데 그는 北에 대한 공습은 미국이 타 민족에게 가한 가장 극단적인 폭력이라고 말했다. 코리아 전쟁 당시 북 인구가 970만 명인데 최소 150만 명이 사망했다.

세균전을 실행에 옮겼던 미군 포로의 증언과 북을 방문한 일본의 ‘한국전쟁 미군 세균전 사실 조사단’ 회원들의 전언 등 수백 개의 증거자료로 있다. 또 국제과학위원회 조사단이 1952년 북지역 세균전 방문조사를 통해서 미군이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1952년 1월부터 3월 사이 北, 169개 지역에 804차례나 세균탄 또는 살인용 미생물이 든 각종 물체를 투하했다.

<북 주민 가슴에는 미국에 대한 증오만 남았다>

피난 내려온 북 주민들에게 왜 북의 고향을 두고 월남했는가 물었을 때 대부분 그들이 한 말이다. ‘무시무시한 폭격으로다 폐허가 되었기에 살기 위해서 내려왔지’ 였다. 폐허 속에 남아있던 북 주민들은 배고픔과 함께 가슴 속에 원한이 자리 잡았다. 北에서 심한 욕이 '미제 승냥이놈'이다.

노근리 사건은 미군의 범죄행위 가운데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이 사건이 드러남으로 미군의 민간인 학살 행위가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폭로되었다.

북의 인구 가운데 15% 이상이 전쟁 중에 사망했고 5천여 학교, 1천여 개의 병원, 2천8백만 평방미터의 주택 등 파괴되었고, 25만 마리의 소, 38만 마리의 돼지, 37만 정보의 농지 피해를 입었으며, 8천7백여 동의 공장과 생산설비가 파괴되었다.

미 극동 공군 폭격사령관을 역임했던 오도넬은 전쟁초기 6개월 동안 우리는 북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래서 더 이상 목표물이 없었다고 말했다.

미군이 전쟁 3년 동안 쓴 폭탄의 양은 63만5천t인데, 태평양전쟁 때 쓴 50만3천t보다 많다. 태평양전쟁이 치러진 지역이 한반도 수십 배였기 때문에, 한반도에 투하된 폭탄으로 초토화 그 자체였다.

커티스 미 공군 전략공군사령관은 폭격으로 北의 인구 20%를 죽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미 극동공군은 집중적이고 대대적으로 북주요 도시를 폭격했고, “이 지역이 사막으로 변했다”고 맥아더가 말할 정도로 도시들은 잿더미가 됐다.

<1947년 여름 미 군정청 체포명령이 떨어지다>

사상과 집회의 자유가 있는 보편적 가치와 헌법을 어기고 미 군정청은 한국 내 좌익 활동을 하는 자들을 체포하는 것을 넘어서 47년 8월15일부터는 좌익 활동을 하지 않아도 당시 남주민 77%가 갖고 있던 사회주의 생각을 하고 있으니 미 군정청 한국인 다수를 사상 범죄라고 본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이 체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 자유를 지향하면서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같이 했던 사회주의자들에 대하여 온건한 사람들도 잡혀가는 세상이 되니 이들이 그때 월북을 했고 그 인물들 가운데 지난 번 글에 언급한 임화, 지하련, 김순남 등이 월북하게 된 것이다.북으로 간 이유와 남으로 내려온 이들의 상황이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이 글이 다리가 되 길 바란다.

미국에 대하여 갖는 북의 주민감정이 어떤 것인지 또 이런 미군에 대한 공포 속에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가족 세습으로 하는 이유, 저들의 자위 국방을 담보하기 위해 미국이 북을 공격하면 ‘다 죽는다’ 는 마지막 담보로 핵보유국이 된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면. 또 남북간에 북미간에 평화협정이 있어야함을 다시 기억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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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째 광장은 교대역 10번 출구 앞 대로다. 전국 집중 145차 촛불 대행진이다. 반란 패거리가 끊임없이 소란을 떨고 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고 자리 잡아 가는 상황을 보고 안심을 하는지 전국 집중 치고는 모인 시민이 많지 않다. 그래도 이미 동력을 상실한 전광훈 집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전한 활기 변함없는 흥취가 규모를 의식할 수 없게 만든다.

 

있는 듯 없는 듯 흘러 다니는 나 같은 늙은이도, 나지막이 구호를 따라 외치는 수녀도, 요란하게 춤추며 눈길 끌러 나대는 승려도, 무대 위 공식 발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말을 고래고래 내뱉는 관·종 아줌마도 더불어 어울리며 정치 집회와 놀이마당 경계를 가로지른다. 주최 측 노력도 있지만 시민 자발 행동이 빚어내는 네트워킹이다. 극우에 없는 풍경이다.



이런 풍경은 이명박 때 촛불을 들었던 소녀들에게서 비롯해 진화해 오다가, 마침내 김명신 반란에 맞선 소녀들이 응원 봉 들고나와 판을 뒤집자, 엄숙함 속으로 즐거움이 삽시간에 번져가면서 폭발하듯 펼쳐진 놀라운 변화다. 본디 우리 생명 공동체-흔히 민족이라고 일컬어온-본성에 녹아 흐르는 신명이 역사상 최악이자 최선인 정치 상황과 만나 절정을 이룬 셈이다.


 

인류 혁명사는 혁명이 제가 나은 자식을 잡아먹는 과정이었다. 혁명이 엄숙 일변도로 흘렀기 때문이다. 엄숙 극단에는 잔혹이 칼을 물고 있기 마련이다. 참 혁명은 즐거운 놀이기도 하다. 놀이는 잔혹이 부르는 피바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혁명 대상을 정확히 응징 단죄하고, 나아가 새 나라 새 질서를 구축하는 기꺼운 축제로 마무리된다. K-정치가 그 일을 해낼까?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 따르면 윤석열 파면 결정문에서 가장 먼저 확정된 문장은 이렇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다.” 후자는 전자에서 발원한다. 결국 시민이 반란을 막았다는 말이다. 거룩하고도 질탕한 시민이 광장을 지키는 한 과거는 귀환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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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또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 아침 B2 폭격기를 동원해 이란 핵시설에 대규모 공습을 가하고 나선 것이다. 미 대통령 트럼프는 작전이 성공적이었다고 허풍 떨지만, 이란의 핵시설이 파괴된 징후는 별로 없어 보인다. 엄청난 군사 자원을 동원하여 전 세계의 관심과 우려와 주목을 받으며 감행한 작전치고는 별 볼 일 없는 ‘성과’다.
아니나 다를까 영국 등 서방 제국주의는 모두 미국의 선택과 행동을 지지하고 나섰다. 세계 전체의 여론은 물론 다르다. 자신이 ‘싸움 개’로 키워서 서아시아에 풀어놓은 잔악한 이스라엘을 돕는다고 나선 미국의 이번 공습을 글로벌 남구, 세계 다수는 한목소리로 규탄하고 있다.
미국의 만행에 대한 규탄 가운데 러시아의 전임 대통령이며 권력 서열 2위로 인정되는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발언이 들을 만하다. 메드베데프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푸틴 정권 내 대표적 강경파로 떠올랐고, 촌철살인의 멘트를 자주 날리곤 한다. 아래는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뒤 그가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올린 멘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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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핵시설 세 곳에 야간 공격을 가해서 미국인들이 이룬 것이 무엇인가?
1. 핵연료 주기의 핵심 기반 시설은 영향을 받지 않았거나 경미한 피해만 본 듯하다.
2. 핵 물질의 농축, 그리고—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다—미래의 핵무기 생산은 계속될 것이다.
3. 이란에 자체 핵탄두를 직접 공급할 태세인 나라가 여럿 된다.
4. 이스라엘은 공격받아 폭발로 뒤흔들리고 있으며,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5. 미국은 이제 새로운 갈등에 휘말렸고, 지상 작전 가능성이 코앞에 다가왔다.
6. 이란의 정권은 살아남았고, 십중팔구는 더 강력해졌다.
7. [이란] 국민은 이전에는 무관심하거나 반대하던 사람들을 포함해서 나라의 정신적 지도부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
8. 한때 ‘평화 대통령’으로 칭송받던 도널드 트럼프는 이제 미국을 또 다른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9. 세계의 압도적 다수 국가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행동에 반대한다.
10. 이래 가지고서는 아무리 조작된 상이라 해도 트럼프가 노벨 평화상 받기는 잊는 것이 좋겠다. 정말 좋은 시작 방법일세. 대통령 각하,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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