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광장은 교대역 10번 출구 앞 대로다. 전국 집중 145차 촛불 대행진이다. 반란 패거리가 끊임없이 소란을 떨고 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고 자리 잡아 가는 상황을 보고 안심을 하는지 전국 집중 치고는 모인 시민이 많지 않다. 그래도 이미 동력을 상실한 전광훈 집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여전한 활기 변함없는 흥취가 규모를 의식할 수 없게 만든다.

 

있는 듯 없는 듯 흘러 다니는 나 같은 늙은이도, 나지막이 구호를 따라 외치는 수녀도, 요란하게 춤추며 눈길 끌러 나대는 승려도, 무대 위 공식 발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말을 고래고래 내뱉는 관·종 아줌마도 더불어 어울리며 정치 집회와 놀이마당 경계를 가로지른다. 주최 측 노력도 있지만 시민 자발 행동이 빚어내는 네트워킹이다. 극우에 없는 풍경이다.



이런 풍경은 이명박 때 촛불을 들었던 소녀들에게서 비롯해 진화해 오다가, 마침내 김명신 반란에 맞선 소녀들이 응원 봉 들고나와 판을 뒤집자, 엄숙함 속으로 즐거움이 삽시간에 번져가면서 폭발하듯 펼쳐진 놀라운 변화다. 본디 우리 생명 공동체-흔히 민족이라고 일컬어온-본성에 녹아 흐르는 신명이 역사상 최악이자 최선인 정치 상황과 만나 절정을 이룬 셈이다.


 

인류 혁명사는 혁명이 제가 나은 자식을 잡아먹는 과정이었다. 혁명이 엄숙 일변도로 흘렀기 때문이다. 엄숙 극단에는 잔혹이 칼을 물고 있기 마련이다. 참 혁명은 즐거운 놀이기도 하다. 놀이는 잔혹이 부르는 피바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혁명 대상을 정확히 응징 단죄하고, 나아가 새 나라 새 질서를 구축하는 기꺼운 축제로 마무리된다. K-정치가 그 일을 해낼까?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 따르면 윤석열 파면 결정문에서 가장 먼저 확정된 문장은 이렇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다.” 후자는 전자에서 발원한다. 결국 시민이 반란을 막았다는 말이다. 거룩하고도 질탕한 시민이 광장을 지키는 한 과거는 귀환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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