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목표는 관악산순환둘레길이다. 지난 일요일, 우선 관악구 구간 일부를 걸었다. 다음 주에는 관악구 구간 나머지와 금천구 구간을 걷기로 한다. 이번부터는 여태까지 숲, 나무를 보았던 큰 시선에다 길 주변과 조금 더 들어간 곳 곰팡이(버섯), 돌꽃(지의), 이끼, 그리고 생명의 여백 풍경을 살피는 작은 시선을 보탰다.
내게 걷기는 human-biont 한 몸 건강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다. 공생하는 네트워킹을 몸으로 확인하는 시공간 창조 행위다. 몸 안팎을 두루 살피며, 속도와 시야를 조절한다. 혹한 견디는 작은 생명이 저마다 지닌 빛깔과 풍경을 보며, 놀라거나 탄식한다. 움직일 수 없는 생명들이 자아내는 지극한 자태는 물론이거니와, 작은 동물이 남긴 자취 또한 눈물겹다.
낙성대로 내려오기 직전, 길 저만치 죽은 나무 등걸 우묵 자리에 눈길이 닿았다. 거기 도토리 몇 알이 모여 있다. 자연적으로 떨어져 그리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주위를 둘러보니 도토리나무가 있지도 않고, 우묵 자리 모양새상 위에서 무엇이 떨어져 쌓일 수는 없었다. 다람쥐나 청설모가 마련한 창고일 가능성이 컸다. 손 그림자도 대지 않고 그 자리를 떴다.
다시 나지막한 산등성이 넘어 내려오니 관악산일주문이었다. 인근 지하 허름한 식당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숲속 사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스마트폰 사진이라 그다지 세밀하지는 않지만, 지금 내 수준으로 표할 관심 정도는 담아내고 있었다. 허황하게 큰 언어로 살기 싫어 택한 삶을 알량한 사진 몇 장이 증명해주는구나 싶어서 가만가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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