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의원에 아주 일찍 출근한다. 다섯 시 전에 일어나 준비하고 한의원에 도착하면 일곱 시 반 전이다. 초 간단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는다. 이 아침상이 설과 한가위에는 그대로 차례상이 된다. 나는 형제자매들과 합의해서 함께 조상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 대신 혼자 한의원에서 416차례를 지낸다.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11년째 이어온다. 진실이 밝혀지면 그만둘 수도 있겠지만 그럴 날이 과연 오기나 할는지,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먼지로 돌아가지나 않을는지.


 

, 한가위에 한의원 나와 있어 봐야 거의 예외 없이 적막강산이다. 그래도 나오는 며리는 416차례를 거를 수 없어서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지 알 수 없으나 내게 416은 인생 전체를 뒤흔든 일대 사건으로서 그 이후 세계를 내다보는 모든 창이 바뀌었다. 개인 차원 생사관은 물론 사회·역사관, 심지어 전혀 무관해 보이는 자연관까지 모조리 전복되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한 저들 목숨값을 갚아야 할 책무가 내게는 있다. 텅 빈 진료실로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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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신이 집사람 구속 기소를 촉구하는 광화문 집회가 25() 오후에 열렸다. 장관은 단연 깃발이었다. 커다란 전통 문양 깃발에서 손바닥 크기 종이 깃발에 이르기까지 “100깃발이 빚어내는 펄럭임과 일렁임은 그만으로도 가슴 뭉클하게 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결결이 번져가는 구호와 함성, 백인 백색 자유발언, 신명 나는 공연이 어우러지면서 K-민주주의는 찰나마다 약동하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깃발은 자기 정체성과 주장을 가리키는 표지며 실천과 참여 역동을 고취하는 향도다. 깃발 풍경을 보면 집회 성격과 수준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전광훈 떼거리 집회에는 태극기와 다윗 별(이스라엘 국), 그리고 성조(미국)기가 등장한다. 끝났을 때 태극기 팽개치고 가는 짓 보면 애국은 허울이고 속마음에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을 테다. 현실 이스라엘을 성서 이스라엘과 동일시해 신앙 본진으로 삼고, 미국을 그 신앙 전해주고 공산주의에서 구원해 준 은인으로 여기는 무지몽매가 불러낸 부박한 블랙코미디다. 신학도 교의도 윤리도 없는 사이비 오컬트일 뿐이다. 구호는 악다구니고, 발언은 개소리고, 공연은 싸구려 복음성가 따위뿐이다. 문화도 정치도 없다. 교회 두겁 쓴 매국노 게토일 따름이다.

 

이렇듯 일소에 부치는 일은 쉽다. 그러나 여기서 배설되는 유튜브에 중독된 권력자가 자기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사실, 그래서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저들과 저들을 둘러싼 무리가 최소한 25%라는 말은 들어도 들어도 아뜩함이 줄어들지 않는 마력을 지닌다. 다른 나라도 그런가? 모르겠다. 안팎 일급 지식인 그 누구도 온전히 제국주의론 범주에서 우리를 이해시키지 않으나 나는 대한민국이 여전히 중첩/누적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다고 판단한다. 최근 2년 동안 공부한 결과다.

 

이번 내란 사건이 우리 사회에 엄존하는 식민지 유제와 특권층 부역 엘리트가 형성한 무섭고 더럽고 막강한 담합을 전방위로 드러내 주는 바람에 우리 절망과 희망은 맹렬하게 갈마드는 중이다. 이제 엊그제 깃발을 되돌아보며 모순을 역설로 달여낼 길을 찾는다. 역설은 불안에서 나온다. 불안은 길이 있으니 그리로 향하라고 우리를 흔든다. 흔들리며 첫발을 내디딜 때 역설이 창조된다. 그 역설을 용기라 부른다. 우리는 고비마다 경이로운 용기를 내는 이웃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들과 동심원을 이루며 민주주의 터전을 넓혀나간다. 모두 깃발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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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법 폭동 중심에 특정 개신교 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우리에게 개신교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광훈이나 이만희가 특별한 꼴통이 아니라 이른바 보수 개신교 목사 대부분이 도긴개긴이라고 쓰다가 나는 문득 우리 사회에 참 스승, 참 어른이 없다는 생각에서 멈춰 섰다. 쓰던 글을 모두 지웠다. 어른 없는 우리 사회 풍경을 그리기 위해.

 

조선일보가 원로랍시고 인터뷰한 면면이 양비론에 정답훈계질을 일삼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나훈아가 엄마행세하며 되지도 않은 양비론을 펼쳐 물의를 빚었다. 중앙일보가 인터뷰한 최장집은 양비론에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많이 배웠다고, 윗자리 있()다고, 명성 높다고, 그렇게 살아 나이 들었다고 어른이라면 나잇값을 제대로 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럴까?




 

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박 성공한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성공위에서 나이 들면 원로라고, 어른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이런 성공은 개인 소유로 여겨진다. 사유로서 성공을 움켜쥔 어른은 그 성공을 공동체, 특히 다음 세대와 공유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공유는 겸허와 돈후(敦厚)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언제 그런 어른을 만나본 적이나 있던가.

 

백성이 불안에 요동치는데, 성공한 어른들이 나와 진심 사과하고 공동체를 위로하며 안온케는 못할망정 양 싸대기나 올려붙이고 심지어 겁박하는 꼬락서니를 보다못해, 성공도 거두지 못하고 어른 반열에 끼지도 못하는 내가나마 주제넘게 말씀드린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세대로서 용서를 구합니다. 잘 싸워준 젊고 어린 세대를 존경합니다. 안전하며 온전한 나라 꼭!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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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민(서울교대 교수)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글을 그대로 싣는다



나는 비판이론을 기반으로 연구하는 학자다. 비판이론은 한마디로 권력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론이다. 비판이론은 학문의 세계에서는 쿨하고 멋진 이론이지만 극우들에게는 빨갱이 이론, 극우기독교들에게는 사탄의 이론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나는 빨갱이도 아니고, 더군다나 모태신앙의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북한에는 1도 관심 없는, 쇼핑과 K팝 아이돌을 사랑하는 자본주의의 노예이기도 하다.

비판이론은 자본주의의 끝판왕 나라인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배웠다. 비판이론을 공부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더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나의 최애가 오래오래 마음 놓고 돈 벌 수 있으려면 팬덤인 우리 모두가 잘 살아야 하니까 자본주의가 오래오래 잘 작동해야 한다. 그러려면 비판이론처럼 자본주의의 구멍들을 메꾸어줄 철학들이 필요하다. 내가 연구하는 “기술의 민주화”도, “사이비치료 연구”도 모두 비판이론에 근거한 것들이다. 비판이론을 얘기하는 이유는, 나는 소위말하는 “깨어있는” “진보적인” 교육학자라는 백그라운드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내가 아들을 깨어있는, 진보적인, 인권감수성이 높은 남자로 키우기 위해 교육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시켰겠나. 어릴 때부터 매일 2-3시간 토론을 하고, 전세계를 데리고 여행다니며 다양한 사회와 문화를 보여주고, 시사 문제들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하고, 예술과 창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클래식, 발레, 뮤지컬, 국악, 미술관과 박물관 안 데려간 곳이 없고, 설문조사지 만든다고 하면 편향되지 않은 설문지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한지 함께 생각하고, 역사적 사건들과 종교적 신념들에 대해 이야기나누고, 자연의 신비로움과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나 혼자 애 둘 데리고 바다로 산으로 협곡으로 사막으로 안 가본 곳이 없다. 남편은 여행 안좋아해서 나 혼자 아들, 딸 데리고 다니며 교육시켰다. 학교 공부만 빼고 다 지원했다(사교육 거의 안 시켰다는 뜻이다). 학교 공부는 지가 알아서 해야지.

이보다 더 애들 교육을 잘 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은 내가 바라던대로 훌륭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정말 순식간에 내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교육시켜놓은 아들은 극우 유튜버에 빠지게 되었다.

아들이 중 2 즈음 되었을 때이다. 어느 날 이런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왜 군대 안 가? 여자도 똑같이 가야지.”
“우리 사회는 남자를 너무 차별하는 것 같아.”
“남자가 왜 자기를 she 로 불러달라고 해? 내 마음대로 부르면 되지. 나는 남자는 무조건 he라고 부를거야.”
"여가부는 폐지해야해"

나는 단어 몇 개, 문장 몇 마디만 들어도 이 사람의 철학과 세계관을 유추할 수 있다.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가르치지 않은 가치에 대해 아이가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어?”

“유튜브에 엄청 똑똑하고 멋있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그랬어.”

조던 피터슨이었다.
그 외에도 몇 몇 극우 유튜버들이 있었다.

그 후, 나는 아들을 극우 유튜버들이 심어놓은 사상에서 빼내오는데 수개월이 걸렸다.
생각보다 극우 사상은 접착력이 강했다. 잘 안 떨어졌다.

애를 빼내는 방법은 끊임 없는 토론 밖에는 없었다.
왜 여가부 폐지가 남자인 너한테도 손해인지. 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차별이 심한지. 왜 사람을 부를 때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불러줘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얘기하는 “페미”와 진짜 페미니즘은 어떻게 다른지. 진짜(학문적 철학적) 페미니즘은 장애인 인권,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인권과 어떻게 연결이 되어있는지. 극단주의를 알아보는 방법. 가짜뉴스를 가려내는 방법. 차별금지법 등등..

수개월 동안 온 정성을 다해 아이와 열심히 토론을 했다. 극우 유튜버들이 애 머리에 심어놓은 생각이 어디가 왜 잘못된 것인지를 애가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논리를 매우 치밀하게 분석해서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 찾아내야 했다. 남녀의 문제를 개인의 경험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적 관점에서 보도록 수없이 설명하고 가르쳐야 했다. 한번으로 안되고 여러번 반복적으로 토론해야 했다. 조던 피터슨의 논리와 생각이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정확하게 짚어서 비판해야 했다.

내가 가만히 보니 극우들은 자기 생각만 한다는 것이 특징이더라. 미시적으로만 본다. 지금 나의 이 행동을, 생각을 사회 모두가 하게 되었을 때에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지 생각을 안한다. 못하거나. 사회복지 시스템이 당장 자기는 필요 없으니까 세금 내기를 싫어한다. 그런데 사회복지 시스템이 안좋으면 내 자식이 살게될 사회는 위험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안한다. 이런 생각은 인간의 이기적 욕구를 넘어 애써 더 넓고 긴 관점으로 문제를 보는 능력을 요하는데 이게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요한다.

이렇게 공부를 많이한 나에게도 애를 극우적 생각에서 꺼내오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는데 대부분 부모들은 자기 애가 이런 사상에 빠졌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알더라도 빼내올 방법을 모를 것이다. 나는 십년 넘게 애들의 가치관 교육에 이렇게 힘을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애가 극우에 단 한 달 만에 넘어갔는데, 이런 교육을 받지 않은 남자 아이들은 그대로 여기 세뇌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얘기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매우 sticky 해서 잘 안 떨어진다.

유럽에서는 중학생이 유튜브를 보다가 테러리스트 프로파간다에 넘어가서 가입을 하고 테러리스트에 입단을 한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IS 같은 테러리스트에 가입하는 중학생은 없지만 또 다른 테러집단인 극우 보수 유튜버들에게 세뇌당하는 일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현재 고등학생인 우리 아들의 주변 모든 남자아이들이, 정말 거짓말 안하고, 단 한 명도 안 빼고, 100%의 남자아이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며 신남성연대를 추종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 고등학생 아이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뭘 안다고 빨갱이 빨갱이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들보고 빨갱이라고 한단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의 정치성향을 그대로 배운 것일 가능성도 크지만, 내 경험을 보면 이 아이들은 부모의 신념과 관계 없이 극우 유튜버를 보며 빠져들었을 가능성이 100%이다. 실제로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극우 유튜버들을 신봉하고 있다고 한다. 자기 친구들이 좋아한다는 극우 유튜버들의 영상 몇 개를 아들이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나는 단 5분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말도 안되는 괴로운 개소리들을 아들 친구들은 “이 사람 너~~무 똑똑하지 않냐?”하면서 본단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세가지를 생각해보았다.

하나는, 학교 교육을 바꿔야한다. 이런 신념이나 가치관, 철학은 지금의 주입식 교육 방식으로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대항할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어야 하는데 그것은 토론과 글쓰기,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지식의 학습을 통해서 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AIDT에 자원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청소년의 극우화 예방은 아주 시급한 문제이다. 우리의 자원을 비판적 사고력 교육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토론 교육과 역사교육, 민주주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나도 대학생때까지만 해도 부끄럽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중도보수였다. 미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바뀐 것이다. 그들의 교육은 100% 토론 교육이었다. 교육은 중요하다.

그리고 둘째는, 건전하고 민주적인 가치관을 가진 2030 남성들이 유튜버를 더 많이 해야한다. 아들이 “엄마 그런데 진보 유튜버는 없어. 진보인 사람은 유튜브 안하는 것 같아.” 라고 말한다. 아니다. 진보 유튜버들 있다. 그런데 그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젊은 전문직이다. 이런 사람들은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정치적 신념은 가족 간에도 서로 바꿔놓을 수 없다. 극우적 생각이 일단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매우 어려운 싸움이 된다. 그래서 예방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극우 유튜버의 비민주적 개소리들을 저격할 수 있는, 청소년에게 매력적인 유튜브 방송이 더 많아져야 한다. 불행히도 청소년이 볼 수 있는 건전하고도 재미있는 유튜브 채널은 입시 콘텐츠 채널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셋째는, 어차피 경쟁적 입시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논술, 토론, 디베이트처럼 비판적 사고력을 집중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입시를 만들면 좋겠다.

2030 남성이 우측으로 쏠려있다는 통계 그래프를 여러번 보았다. 4050은 다시 좌측으로 쏠린다. 그런데 나는 지금 2030이 나이들면서 좌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30은 유튜브 세대이다. 새로운 유튜브 세대가 계속계속 밀고 들어올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념 그대로 간직한 채 노인이 될 것이다.

이번 폭동과 같은 일들이 다시는 생기지 않아야 한다. 나는 그런 세상을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이미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한다. 우리의 아이들을 극단주의와 파시즘으로부터 보호해야한다.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지 않게 지금 당장 우리의 아이들을 점검해보고, 아이들이 유튜브에서 무엇을 보는지 이야기해보고, 건전하고 상식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이 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책임이다.

+) “구출”이라는 표현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극단주의는 ”혐오“의 세계관을 가졌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구출하는 심정을 가지게 된다. 민주주의는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민주주의는 혐오의 반대편에 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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