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의원에 아주 일찍 출근한다. 다섯 시 전에 일어나 준비하고 한의원에 도착하면 일곱 시 반 전이다. 초 간단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는다. 이 아침상이 설과 한가위에는 그대로 차례상이 된다. 나는 형제자매들과 합의해서 함께 조상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 대신 혼자 한의원에서 416차례를 지낸다.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11년째 이어온다. 진실이 밝혀지면 그만둘 수도 있겠지만 그럴 날이 과연 오기나 할는지,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먼지로 돌아가지나 않을는지.
설, 한가위에 한의원 나와 있어 봐야 거의 예외 없이 적막강산이다. 그래도 나오는 며리는 416차례를 거를 수 없어서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지 알 수 없으나 내게 416은 인생 전체를 뒤흔든 일대 사건으로서 그 이후 세계를 내다보는 모든 창이 바뀌었다. 개인 차원 생사관은 물론 사회·역사관, 심지어 전혀 무관해 보이는 자연관까지 모조리 전복되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한 저들 목숨값을 갚아야 할 책무가 내게는 있다. 텅 빈 진료실로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