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지법 폭동 중심에 특정 개신교 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우리에게 개신교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광훈이나 이만희가 특별한 ‘꼴통’이 아니라 이른바 보수 개신교 목사 대부분이 도긴개긴이라고 쓰다가 나는 문득 우리 사회에 참 스승, 참 어른이 없다는 생각에서 멈춰 섰다. 쓰던 글을 모두 지웠다. 어른 없는 우리 사회 풍경을 그리기 위해.
조선일보가 원로랍시고 인터뷰한 면면이 양비론에 ‘정답’ 훈계질을 일삼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나훈아가 ‘엄마’ 행세하며 되지도 않은 양비론을 펼쳐 물의를 빚었다. 중앙일보가 인터뷰한 최장집은 양비론에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많이 배웠다고, 윗자리 있(었)다고, 명성 높다고, 그렇게 살아 나이 들었다고 어른이라면 나잇값을 제대로 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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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박 “성공”한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그 “성공” 위에서 나이 들면 원로라고, 어른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이런 “성공”은 개인 소유로 여겨진다. 사유로서 성공을 움켜쥔 어른은 그 성공을 공동체, 특히 다음 세대와 공유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공유는 겸허와 돈후(敦厚)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언제 그런 어른을 만나본 적이나 있던가.
백성이 불안에 요동치는데, 성공한 어른들이 나와 진심 사과하고 공동체를 위로하며 안온케는 못할망정 양 싸대기나 올려붙이고 심지어 겁박하는 꼬락서니를 보다못해, 성공도 거두지 못하고 어른 반열에 끼지도 못하는 내가나마 주제넘게 말씀드린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세대로서 용서를 구합니다. 잘 싸워준 젊고 어린 세대를 존경합니다. 안전하며 온전한 나라 꼭!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