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큰애가 멘토링 하는 아이가 있더라고요. 그 아이가 되게 가난하대요. 다문화가정인데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얘기를 듣는데 너무 마음이 아픈 거예요.·······오늘도 멘토링 가는 날인데 아까 큰애랑 통화를 했거든요. “맛있는 것 좀 사서 가.” 팬티랑 티셔츠 사서 보낸다고 했어요.
그런데 내가 너무 적극적으로 이러면 큰애가 화를 내. 엄마는 도와주고 싶어 하지만 아이 아빠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얘기를 들어보니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야.·······큰애가 하는 말을 들으면 나보다 큰 세계를 보고 있어요. 나는 단순하게 보이는 것만을 판단하는데 얘는 그게 아니더라고요.(336~337쪽-김호연 엄마 유희순)
내게는 두 분의 인생은사가 계시다. 모두 여성이다. 서로는 모르시지만 대학 동문이다. 한 분은 중학교 국어 교사로서 세미나식 수업을 통해 내 언어 머리뚜껑을 열어주셨다. 다른 한 분은 고등학교 프랑스어 선생님이셨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내게 두 필지의 땅을 주셨다.
각기 다른 결정적 시기에, 놀라운 방식으로 내 생이 결하고 있는 모성애를 채워주신 그 분들을 나는 어머니로 모시고 싶어 했다. 예컨대 스승의 날 아닌 어버이날을 챙기는 식이었다. 그러다 문득 벼락같은 깨달음이 왔다. 두 분 모두에게 금쪽같은 자식들이 있고 그 날 그들이 사랑으로 모실 텐데 내가 어떤 식으로든 끼어들면 그들 마음에 아무래도 간섭파가 생길 것이다. 그 느낌이 두 분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나는 고요히 제자 자리로 돌아왔다.
진부한 얘기거니와 사랑도 예의도 진심과 정성이 한 방향으로 한껏 흘러서 이루어지는 무엇이 아니다. 각자의 감정이 형성되는 과정에 서로 섬세하게 참여할 때 오달지게 영그는 무엇이다. 어느 한쪽의 이름이 과하게 드러날 때 사랑이 일그러지는 것은 반대로 그 이름을 숨길 때 뒤틀리는 것과 함께 비대칭의 대칭 진리를 구성한다.
이 비대칭의 대칭 진리가 구현되는 시공이 “큰 세계”다. “보이는 것”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열리는 세계다. 어른 세계다. 새끼를 잃어버린 순간 어름에서 엄마는 누구나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 같은 상태로 속절없이 미끄러진다. 동병상련이라는 무조건적 무제약적 격정에 휘감긴다. 격정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큰, 그러니까 어른 세계로 향한다.
스스로 웃자란 어른이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종자 정신성에서 나는 아주 긴 세월 동안 0세짜리 아기였을는지도 모르겠다. 의식 차원에서 치유되는 부분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비-의식 차원의 불가역적 흠결이 자리 한다면 끝내 그 허공을 여실히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불완전한 어른으로 감사해야 하리라. 이 감사는 내게 영존하는 애티(유치함)childishness를 애다움(무구함)childlikeness으로 변화시키는 소식과 에너지일 테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김호연 엄마 유희순이 “큰애”를 보면서 뒤좇아 깨닫는 것은 능력 차이 때문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와 무게 차이 때문이다. 더디 가서 다다르는 큰 세계는 새끼 잃은 어미가 참 어른 된 세계다. 더없이 큰 세계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