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 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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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을 겪으니까 멀지 않더라고요. 죽음과 삶이 늘 이 공간 안에 다 같이 현존한다는 생각이 들어요.(341쪽-유예은 엄마 박은희)


<24. 죽음은 소멸이 아니다>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산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뿐이다.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그 보이지 않는 존재가 우리의 윤리를 구성하며 창조를 추동한다.”


생식기 차이 하나로 여성과 남성을 구분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생물학적 상태만으로 죽음과 삶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죽음과 삶의 전체 상태를 놓고 보면 무수한 스펙트럼이 있지만 교집합은 늘 존재한다. 그 교집합이 죽음과 삶을 뫼비우스 띠처럼 서로 맞물리게 한다. 삶이 죽음을 품듯 죽음이 삶을 품는 한 죽은 자는 “멀리” 있지 않고 “이 공간 안에 다 같이 현존한다.” 416아이들은 아득한 하늘 어디에 있지 않다. 하늘이라면 엄마의 그리움, 벗의 기억이 참 하늘이다. 416아이들은 그렇게 산 자의 생각과 행위, 밝혀지는 진실, 새로워지는 법과 제도, 변화해가는 우리사회 속에 형형하게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면 416아이들이 산 자를 떠나지 않고 이제 여기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산 자가 끊임없이 416아이들에게 가 닿는 것이다. 416아이들에게 가 닿지 못하면 산 자는 살아갈 수 없다. 산 자에게 살아갈 의미와 동력을 준다는 면에서는 416아이들이 신이다. 신으로서 416아이들은 산 자로 하여금 신의 길을 걷도록 한다. 신의 길을 걷는 자도 그렇게 신이 된다. 신들의 시공에서 생사의 구분이 의미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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