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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국회의원)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교정당국과 법무부는 국민의 분노가 들리지 않습니까? 법무부 태도는 변한 게 없었습니다. 그간 피청구인에게 제공되어 온 황제 출장 스타일링 서비스도 여전합니다.


수인번호 0010 윤석열 피고인을 법과 원칙대로 일반 수용자와 동일하게 처우하는 게 그렇게나 힘듭니까? 형집행법상 부분 가발을 포함한 장신구는 엄격히 금지되고, 스타일링을 허용할 법적 근거는 전무합니다.

지난 21일 헌재 탄핵심판 변론에 처음 나타난 피청구인은 머리에 한껏 힘을 준 모습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공수처는 피의자 윤석열에 대한 일반 접견을 금지한 바 있습니다.

법무부 설명대로 대통령실이 섭외한 일반인 스타일리스트가 머리 손질을 해줬다면, 이는 형집행법 제41조 제1항 위반에 해당됩니다. 법을 우습게 아는 평소 습관대로 대수롭게 넘긴 그깟 머리 손질이었는지, 이후 헌재에 출석할 때마다 소위 뽕이 잔뜩 들어간 그의 머리는 한껏 부풀어 있었습니다.

별도로 추계한 출장 스타일링 서비스 1회 금액(대통령실 인근 A미용실 12만 원, 구치소 인근 B미용실 10만 원, 헌재 인근 C미용실 10만 원)은 대략 10만 원 선으로 추정됩니다. 메이크업이 추가된다면, 금액은 2배로 뜁니다. 피청구인이 다섯 차례 헌재에 출석하며 발생한 스타일링 비용은 누가, 어느 기관이 지불했습니까?

대통령실이 대납했다면, 권한행사가 정지된 자의 편의에 국고금을 유용한 셈입니다. 경호 업무와는 무관한 스타일링 비용을 경호처에서 지급했어도 문제입니다. 국고금 횡령과 직무유기 혐의에 해당하며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란 수괴 피고인이 직접 지불했어도 규정 위반입니다. 법무부 보관금품 관리지침상 보관금, 소위 영치금은 1일 2만 원 한도에서 음식 구입에 사용하고, 나머지 금액도 의류ㆍ침구ㆍ약품ㆍ일상용품ㆍ도서 등의 구입비용으로 용처를 정하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스타일링이 대통령실 요구였다며, 구체적 내용을 함구하고 있습니다. 직무가 정지된 자에게 대통령실이 편의를 봐줬다면, 이는 헌법 65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 아니겠습니까? 국민들은 피가 끓어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며 탄핵심판을 보고 있습니다.

내란 수괴 피고인은 스타병에라도 걸린 겁니까? 스타일링 없이는 외부 노출도 힘든 피청구인의 행태와 이를 용인한 교정당국의 위법적 결정에 반드시 책임을 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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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13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이 보아주는 눈길’을 받아먹고 사는 무리한테는, ‘그깟 헤어스타일’일 수 없겠지요. 그러니 ‘나랏일’이나 ‘사람들 살림살이’가 아닌 ‘머릿결’에 힘을 쓰는 모지리짓을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 모지리뿐 아니라 다른 벼슬아치(정치꾼)도 똑같이 머리카락에 힘주고 비싸고 값진 옷차림에 까만 자동차를 몰고서 움직입니다. 그 모지리도 모지리이지만, 우리나라 벼슬아치는 모조리 ‘그깟 헤어스타일’에 갇혀서 ‘사진 잘 찍히려’고 용을 쓴다고 느낍니다.
 


春有百花秋有月(춘유백화추유월) 갖은 꽃들 피는 봄, 달 뜨는 가을

夏有凉風冬有雪(하유량풍동유설) 바람 시원한 여름, 눈 오는 겨울

若無閑事掛心頭(약무한사괘심두) 쓸데없는 일 따위 마음 두지 않으면

便是人間好時節(편시인간호시절) 겨울 가을 여름 봄 모두 좋은 나날들

_무문혜개(無門慧開) 짓고 강용원 옮기다.

 

이 시를 발견한 곳은 우이동 어느 쌈밥집이다. 아직도 연탄난로를 쓰는 노포다. 밥 먹다 말고 내가 연탄과 난로 사진을 찍자 다른 곳도 있다며 바깥쪽을 가리킨다. 식당 주 공간 아닌 보조 공간인데 연탄 광으로 쓴다. 거기 벽에 떡하니 이 시 담은 액자가 걸려 있다. 승려가 쓴 것으로 보이는 붓글씨 서체가 특이해 사진에 담았다가 내친김에 번역까지 해 글 들머리 화제부터 삼았으나 시는 오늘 이야기 문을 여닫는 조연일 따름이다. 주인공은 연탄이다.

 

사진 찍고 돌아와 내가 연탄 이야기를 꺼내자, 주인과 직원이 옛 벗을 만난 양 오래된 기억을 서로 꺼내놓으며 수다 삼매로 들어간다. 1965년 서울로 와 도시빈민으로 살아온 내게 연탄은 어두운 기억으로 점철된 존재다. 무엇보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 번 쓰러져 바보(!)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부터 떠오른다. 연탄가스 중독이 거듭해서 일어났지만, 대책은 없었다. 절대빈곤이 마주한 절벽이었다. 그 암담함을 돌이키면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그다음은 단연 고된 배달 기억이다. 성북구 동소문동 616번지는 대표 산동네로 당시 서울 사람이면 모를 수 없는 빈촌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극빈층에 속했던 우리 집은 대부분 연탄을 낱장 구매해 손으로 날랐다. 그나마 돈이 좀 돌면 두 장, 마르면 한 장을 가운데 구멍에 매듭진 새끼줄을 넣어 들고 산 아래 연탄 가게서부터 꼭대기 우리 집까지 날랐다. 초등학생인 내가 그 일을 했고 어른인 아버지는 일절 손대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이제 연탄재 이야기다. 산동네 쓰레기는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차가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일주일 치를 모아 메고 들고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뛰어가 쓰레기차에 던져넣어서 버렸다. 왜냐하면 쓰레기차가 계속 멀어져가기 때문이다. 이때 주된 쓰레기가 다름 아닌 연탄재다. 이 일도 내 몫이었다. 눈 내리면 미끄럼 막고, 장마 끝엔 파인 길 메우는 경우 빼고 연탄재를 이렇게 모아줬으니 나도 난지도 표고를 100m 높이는 데 공을 세운 셈이다.

 

195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해 1990년대 초반까지 서민 사회를 상징했던 연탄은 한창일 때 서울에서만 하루 1,000만 장을 소비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1,800가구가 연탄을 쓴다. 그나마 이문동에 있던 마지막 삼천리 연탄 공장이 2024년 문을 닫았다. 전국적으로는 74,000가구 정도가 연탄을 쓴다. 20곳가량 남아 소규모 생산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 연탄과 더불어 출발한 내 10대가 이제 70대로 접어들었으니 내 인생도 저물어간다.

 

연탄은 본디 왜놈 발명품으로서 병탄기에 들어와 우리 삶에 이식되었다. 그 자체를 바로 정치적 의미와 결부시켜 해석할 수는 없지만 고난에 찬 현대사 속 서민 애환에 드리운 식민지 유제, 이승만과 박정희 그림자를 지우고 이해할 수도 없다. 사라지는 연탄과 더불어 사라져야 할 유제와 그림자가 여전히 날뛰는 현실에서라면 연탄 한 장 바라보는 일이 예사로울 수 없다. 내란 상황에서 불안해하는 일은 연탄가스 중독을 걱정하는 일과 어찌 그리 비슷한가.

 

내란 수괴들이 벌인 기이하고 더러운 짓거리가 점입가경이다. “노상원 뒤에는 김충식이 있다. 김충식은 명신이 엄마 내연남으로 일본 왕족 밀서를 명신이 연놈한테 전달했다. 국 이 내란 맨 뒤에는 일본이 있다.” 어젯밤 분노와 슬픔으로 내가 처마신 술은 왜놈 발명품 가짜 소주다. 오늘 아침 일어나니 연탄가스 중독에서 막 깬 상태와 같다. 대체 이 악무한을 어찌할까.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이라니. 대체 어떤 삶이면 이렇게 노래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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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사진 이미지만큼 효과적인 것도 드물다. 사진 기술이 널리 사용된 20세기에 일어난 사건 가운데는 사진으로 기록된 점 때문에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뇌리에 저장해둔 그런 이미지 가운데 전쟁과 관련한 것이 몇 개 된다.


한국군도 참전한 베트남전쟁이 아직 계속되고 있던 1970년대 초에 세계의 신문들에 실려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한 유명한 사진이 있다. 원경은 연기가 자욱해 어디인지 분간이 되지 않고 중경에서는 군인들이 여럿 걸어오는데 그들 앞에서 아이들이 뭔가에 쫓겨 뛰어오고 있고 그중 한 소녀는 발가벗었다. 베트남계 미국인 기자가 촬영한 사진 속에서 당시 아홉 살이던 소녀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베트남 공군이 그녀가 살던 마을에 가한 네이팜탄 공습으로 등에 심한 화상을 입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다른 하나 아직도 내 뇌리에 선명히 남은 사진 이미지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당시 그 나라 좌파 정부의 요청으로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던 시기 파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수용소에서 찍었다는 한 소녀의 얼굴 모습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 1985년 6월 호 표지에 실렸던 그 사진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열두 살 소녀 샤르바트 굴라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길이었다. 1945년 9월 2일 일본과의 전쟁 승리를 축하해 뉴욕의 타임스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한 해군 병사가 간호사 복장을 한 여성에게 열렬하게 입맞춤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도 뇌리에 선하다. <라이프> 지에 실린 그 사진은 제2차 대전 승전의 기쁨을 표현하는 가장 유명한 이미지의 하나로 꼽힌다.

또 하나 잊지 못할 전쟁 사진이 있다. 거기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피사체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이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하도 피골이 상접해 꼭 해골만 같다. 저런 상태로 어떻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처참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 순간 눈이 저절로 커지고 입이 벌어지며 얼굴은 일그러지게 된다. 그런 이미지를 한 번 보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은 나뿐만 아닐 것이다. 참고로 지난 1월 27일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해방된 지 80주년 된 날이었다.

예상외로 아는 사람이 드문데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독일군으로부터 해방한 것은 소련군이다. 수용소 해방을 위해 독일군과 교전을 벌이다가 소련군은 병사와 장교 합쳐서 23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러시아의 유엔 주재 대사 바실리 네벤자가 최근에 열린 국제 홀로코스트 기념행사에서 한 말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네벤자는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로 진군할 때, 레닌그라드 공방전(1941년 9월 8일〜1944년 1월 27일)에서 아사 직전의 러시아인들을 회복시킨 경험을 지닌 소비에트 의사들이 동행한 사실도 말하고 있다.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어린이 300명을 포함한 7,000명 이상의 수감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내가 본 사진 속의 이미지처럼 피골이 상접하여 해골 같았던 사람들은 수용소에서 풀려나는 것만으로는 살아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죽기 직전의 해골 같은 사람들도 살아났다면 그것은 소련군 덕분일 공산이 크다. 독일군에 포위당했다 탈환된 자국의 레닌그라드에서 아사 위기에 몰린 사람들을 살려낸 경험을 지닌 의사들을 아우슈비츠로 데려간 것은 소련군의 세심한 조치였다고 봐야 한다. 그런 배려가 아니었더라면 아우슈비츠 수감자들은 수용소에서 풀려났어도 다수가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소련군은 아우슈비츠를 해방하기 위한 전투 과정에서도 목숨을 많이 바쳤을 뿐 아니라, 자국민이 대량으로 겪은 아사 비극을 그들이 해방할 수감자들이 겪지 않도록 의사들을 데려와 보살피게 했으니 커다란 인도주의적 공헌을 한 셈이다.

이미 말한 대로 지난 1월 27일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해방된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런 뜻깊은 날이니 기념 의식이 거행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한 가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은 행사 주최 측에서 여러 나라 인사들을 초청하면서 소련의 후신 러시아 쪽만 쏙 뺐다는 것이다. 매년 1월 27일에 열리는 아우슈비츠 해방 기념행사에 벨라루스와 함께 러시아가 초청받지 못한 것은 2022년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 이유를 짐작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때 이미 서방의 나토가 지원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임박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친나치화, 돈바스 내 러시아계 주민 차별과 학살, 그리고 특히 나토의 끝없는 동진이 자국의 안보에 실존적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을 예고하던 중이었다. 결국 2월 24일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뤄졌고, 전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기념행사 주최 측은 그 뒤로 러시아를 기념행사에 초청하지 않았고, 그런 처사를 한 것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에 소재한다. 러시아는 그래서 기념행사에 참여하고 싶어도 폴란드가 막아서면 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폴란드는 냉전 시기에는 바르샤바협력기구의 일원으로 소련의 우방이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 즉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이 되었고, 나토국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반러시아적 태도를 드러내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도 그렇지, 폴란드든 아우슈비츠 기념행사 주관 조직이든 아우슈비츠 해방을 기념하는 행사에 러시아의 참석을 봉쇄한다는 것은 상식, 아니 양식에 어긋난다. 더구나 그날 행사에는 영국 국왕 찰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 외에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자행한 나치의 후신인 독일의 총리 올라프 숄츠까지 초청받아서 참석했다는데 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80주년 기념행사에 러시아를 배제하는 것은 철면피한 냉소주의적 역사 지우기요 왜곡이라 함 직하다. 냉소주의는 이때 어떤 사실을 놓고 그에 대한 무지 때문에 드러나는 태도보다는 고의적 무시의 태도를 가리킨다. 지난 1월 27일 아우슈비츠에 모인 인사들 가운데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한 것이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이고, 소련이 그 과정에서 큰 희생을 치르며 큰 인도주의적 선행을 베풀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행사 주최 측은 그런 점을 무시하고 러시아를 초청 대상에서 배제하는 냉소적 태도를 드러냈다.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 하겠다.

이 맥락에서 올라프 숄츠가 미국인 세계 최대 갑부 일론 머스크가 오는 23일의 독일 총선과 관련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을 지지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과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해방한 것은 미국이라고 말한 점이 주목된다. “우리는 미국이 우리나라를 해방하고 우리가 다시 민주주의가 되게 도운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숄츠의 이 발언은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을 패퇴시킨 것이 미국이라는 것이다. 사실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독일에 진군해서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나치로부터 최종 항복을 받아낸 것은 전쟁 기간 무려 2,700만 명의 희생을 치른 소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도 40만 5천 명 이상의 전사자를 낳았으니 중대한 공헌을 했다고 봐야 하겠지만, 소련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숄츠가 나치로부터 독일을 해방한 것이 미국이라고 한 것은 명확한 역사 왜곡이다.

같은 맥락의 왜곡은 유엔에서도 이루어졌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1월 27일 국제 홀로코스트 기념의 날을 맞아서 한 연설에서 “나치와 그 부역자들”에 희생당한 민족으로 유대인, 로마니인, 신티인 등은 언급하면서 러시아인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엔 사무총장이 나치 범죄 희생자 목록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희생당한 소련인 수백만 명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이 러시아의 외교부 대변인 마리야 자하로바의 반응이었다. 제2차 대전 중에 나치가 유대인 600만 명을 살해한 것은 당연히 저주할 범죄행위이지만 당시 그들에게 목숨을 잃은 것이 유대인만은 아닌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이라 하면 흔히 홀로코스트를 떠올린다. 세계인은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해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무자비한 억압과 파괴, 전치, 고문, 살상을 일삼아도 눈감아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만행으로 가장 큰 인명피해를 본 것은 이미 말한 대로 무려 2,7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러시아다. 물론 그들 모두가 나치에 의해 직접 살해당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이 희생당한 것이 나치가 일으킨 전쟁 때문임은 부정할 수 없다. 아우슈비츠를 해방한 것, 나치와 전쟁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둔 것, 또 전쟁 기간 엄청난 희생자를 낸 것 등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한 역할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데, 세계평화와 화목을 선두에 지켜야 할 유엔의 수장인 사무총장까지 냉소주의적인 역사 왜곡의 대열에 참여하니 가증스럽지 않은가.

아우슈비츠 행사 주관 측은 러시아는 쏙 빼놓고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부역자로 그가 지휘한 극우민족주의 세력이 10만 가까운 폴란드인과 수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전범 스테판 반데라를 국가 영웅으로 추앙하는 나라다. 젤렌스키 정권에도 지금 반데라를 국부로 숭배하고 극우민족주의를 제창하는 친나치 세력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폴란드 정부는 젤렌스키는 80주년 기념식에 초청해 축사할 기회를 부여하고, 아우슈비츠 해방의 최고 주역인 소련의 후신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게는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이유야 분명하다. 아우슈비츠가 소재한 폴란드는 지금 나토 소속이고, 러시아는 나토가 추진하는 전략적 패퇴의 대상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우슈비츠 해방의 내력을 안다면 푸틴은 빼고 젤렌스키만 초청했다는 것은 뭔가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국제관계, 세계질서는 뒤죽박죽이다. 특히 서방 자유주의 세력의 행태가 상식과 양식의 범위를 넘어섰다. 20세기 초반에 양차 대전을 치르면서 세계는 가공할 물적 인적 희생을 치르고 종전 뒤 유엔이라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국제기구를 탄생시킨 바 있다. 유엔은 그 헌장을 통해 국제관계에서 최종심급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세계평화를 위한 최고 보루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최근 발언을 보면 거기서도 평화의 기본 원칙과 가치는 사라진 모습이다. 유엔의 수립을 통해 가동되기 시작한 국제관계, 세계질서가 와해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우슈비츠 80년을 맞은 지금 세계는 매우 어수선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성숙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밀집한 서방 세계가 최근에 막가는 행동을 보인 데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유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자본의 자유와 권리가 가장 먼저 고려된다는 것이다. 서방 세계가 자유주의를 국제관계의 원리로 삼을 때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주도한 서방 세계가 ‘가치-기반 국제질서’를 제창할 때도 군수산업이나 에너지산업, 금융자본 등 자본의 이해관계가 최우선으로 고려된다. 미국 등은 가치-기반 국제질서의 원칙을 내세우며 그에 순종하지 않는 조선인민공화국, 중국,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등을 전제 또는 독재 국가로 매도해왔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한다고 하면서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실제로 한 것은 철저히 자국 자본의 이해를 지키고 확장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약소국가들이 인민 복지와 안녕, 주권을 지키려 하면 정권 전복을 꾀하며 곳곳에서 색깔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자유주의는 자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느라 파시즘과 동맹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오늘날 자유주의와 파시즘의 동맹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집단서방이 동유럽에서는 친나치 세력이 국가권력을 장악한 우크라이나에, 서아시아에서는 나치의 가장 큰 희생자임을 자처하면서 나치와 진배없는 폭력성과 잔인성으로 팔레스타인인을 대규모로 학살하는 아파르트헤이트 국가 이스라엘에 온갖 무기를 대주며 지원하는 것이 그것이다.

아우슈비츠 기념행사에는 올해도 많은 국가의 수반, 주요 인사가 참석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는 거기 참석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 대부분이 서방국가에서 초청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한 이유다. 서방 세계는 지금 세계평화를 망치는 장본인이며, 아우슈비츠 행사에 초청된 인사들은 서방 세계의 반평화적 행태에 가장 큰 책임을 진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등 지금 서방과 척진 국가 인사들은 초청받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아우슈비츠 해방의 의미 자체가 부정된 것과 다르지 않다. 심각한 역사 지우기요 왜곡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워지고 왜곡되면 역사가 어떻게 바로 서겠는가. 아우슈비츠 80주년을 보면서 우울한 생각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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