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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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남자들 가운데, 인생에서 중요한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목적 하나에 사로잡힌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일과 관련된 역할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정체성을 (그리고 때로는 진실성도) 잃어버리는 남자를 너무 많이 봤거든요.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남자들이 자기를 지나치게 대단하게 생각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가 아닌, 자신이 누군가에 터한 자아감을 계발하는 데 필요한 내면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생애의 좌표를 잃어버리는 것은 자만심보다는 내적 공허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어떤 남자들은 엉뚱한 데서 사랑을 찾습니다. 착취적인 섹스나 약물 남용도 있지만, 더 자주 나타나는 것은 권력과 부와 명성에 대한 탐욕이죠.


  내가 아는 남자들 사이에 만연한 가장 일반적인 정신적 질환은 자기 삶에서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지는 에고 팽창이 아니라, 이른바 ‘멜랑콜리’입니다. 그 병세가 너무 깊어지면 자아감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경험상 말씀드립니다.(67-68쪽)


파커 J. 파머는 여기서 에고 팽창과 ‘멜랑콜리’를 대척점에 놓는다. 전자는 자기중심적인 목적 하나에 사로잡힌 사람이며, 자만심에 찬 사람이다. 후자는 일과 관련된 역할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내적 공허에 빠진 사람이다. 이 단호하고 단순한 대비는 어떤 혼효를 전제한다.


사람은 두 가지 선택기준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네 가지 삶을 살아간다. 두 가지 선택기준이란 우선순위와 중심(목적)이다. ①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남을 중심에 두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②우선순위에도 중심에도 내가 있는 사람이 세상을 망치는 극소수 범죄자다. 물론 이 범죄자 대부분은 지배층이다. ③나를 우선순위에 두지는 않으면서 중심에는 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망치는 일에 마름 노릇해 떨어지는 떡고물로 살아간다. 이들이 바로 자기애 경향에 중독된 대부분의 남성(, 그 남성을 내재화한 여성)이다. ④우선순위에도 중심에도 나를 두지 못하는 사람이 우울장애로 침륜된다.


파커 J. 파머는 ②③유형을 구분하지 않았다. 결정적 차이는 우선순위가 내게 있느냐다. 우선순위가 내게 없는 ③유형 사람만이 정체성이나 생의 좌표를 잃으므로 본문에서 대척점에 놓인 두 사람은 ③④유형이다. ③④유형의 사람에게는 같은 점과 다른 점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③④유형 모두 우선순위에 나를 놓지 않는다. 내적 공허는 양자 모두에게 있다. 대처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③유형은 내 중심을 가짜로써 채우려 하고 ④유형은 내 중심을 진짜비우려 한다. 현대사회는 ③유형을 자기계발로 부추겨 가짜 성공으로 착취하고 ④유형을 우울장애로 묶어 약으로 착취한다. 파커 J. 파머의 혼효는 바로 이점을 소홀히 하게 만든다.


의학자 또는 의사가 아닌 파커 J. 파머의 이야기를 보완하기 위해 논의를 세밀하게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죽어나가는 ③유형 사람 대부분을 놓치고 만다. 물론 이 논의는 이치를 말한 것뿐이다. 현실에서 우울장애로 묶이지 않는데도 내적 공허로 자아감이 병든 사람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더 연구해야 한다. 이 문제는 개인적 과제가 아니다. 사회적 어젠다다.


사회적 어젠다일 수밖에 없는 것은 파커 J. 파머가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래서 더욱 논의를 세밀하게 한 것이다. 이론상 우울장애에 걸릴 확률은 ‘여자’가 “남자”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이 이론에는 위에서 내가 말한 ③유형에 대한 고려가 누락되어 있다. 내분비 상태를 포함해 더 근본적으로는 우울장애 정의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실적으로 볼 때, 자기애 경향의 왜곡된 본질을 밝히면 우울장애 경계가 더 유연해질 수 있다. 치료 방식도 마찬가지리라.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더 많은 남자가 모여앉아 자신의 좌절, 두려움, 희망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한다면 변화할 수 있”(68쪽)기 때문이다. 여기가 바로 가장자리다. 이 가장자리에서 “남자”와 ‘여자’가 아닌 인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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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가을은 빛나는 초록으로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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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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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와 경험은 내게 멘토링이 일방통행로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잠재력을 서로 일깨워주는 상호작용이다. 신학자 넬 모턴의 말을 빌리자면, 멘토링은 “서로 말을 듣는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멘토링은 우리의 취약함과 상호 필요를 존중하는 관계 속으로 서로를 초대하도록 기회를 열어준다. 멘토링은 멘토가 주는 만큼, 혹은 종종 더 많이, 멘티와 주고받는 선물이다.(58쪽)


지금은 감옥에 들어가 있는 두 전직 대통령이 저지른 죄악 가운데 가장 큰 것 하나를 대부분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말에 대한 ‘특수’강도다. 권력을 이용해 멀쩡한 시민의 말을 강취한 뒤 의미를 비틀어버린 범죄다. 예컨대 이명박은 도덕을 도둑으로 타락시켰고, 박근혜는 대포 폰을 대통령 폰으로 격상시켰다.


국민을 위해 기도하고 국가를 위해 우주 기운을 끌어온다는 이 두 절정고수 말고 말 강도 둘이 더 있다. 종교, 특히 ‘개독’이라 일컬어지는 개신교가 그 하나다. 이들은 예컨대 진리를 전리錢利로 타락시켰다. 다른 하나는 언론자본으로 대개 조·중·동이라는 환유로 통한다. 이들은 예컨대 얼척없는 땡추를 멘토로 격상시켰다. 혹은 멘토를 땡추로 타락시켰거나.


멘토는 이제 값싸디값싼 장사꾼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민멘토’라는 호들갑까지 등장한 마당이라 개나 소나 멘토 자리에 앉혀지고 심지어 자처한다. 이 언저리에서 어느 음식장사꾼은 졸지에 선생님이 되고 한물간 연예인이 사부가 되기도 한다. 언론의 탈을 쓴 자본이 짓이겨버린 멘토를 이대로 놔둘 순 없다. 복권을 넘어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보자.


분리문명의 멘토는 일방통행 하는 교사였다. 분리문명을 극복하려는 거대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오늘날의 멘토는 멘티와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존재다. “우리의 취약함과 상호 필요를 존중하는 관계 속으로 서로를 초대하도록 기회를 열어”가는 존재다.


완벽하기 때문에 멘토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넉넉한 부분이 있어 멘토가 되었을지라도 모자란 점에서는 누군가의 멘티가 된다. 자신의 멘티가 멘토가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훨씬 높은 것이 자연스럽다. 기회를 열었기에 멘토라 일컬을 따름이다. 멘토와 멘티는 상호 필요를 존중하면서 전체성으로 가는 공시적synchronic 공동체 운동 음악의 협연자다.


기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대개 멘티보다 연륜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연륜에서 앞서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오늘 이전의 지혜와 지식에서다. 오늘 이후의 지혜와 지식에서 연륜은 별로 기여할 게 없다. 진취성에서 멘티가 앞서는 것이 자연스럽다. 멘토와 멘티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이루어가는 통시적diachronic 공동체 운동 음악의 협연자다.


내 인생에도 이런 협연자가 더러 있었다. 특히 최근에 만난 한 협연자는 내가 그에게 선물한 바리-원효 사상에 구체성을 부가하는 스티브 테일러, 찰스 아이젠스타인, 미셸 오당을 내게 선물했다. 물론 아직도 협연은 끝나지 않았다. 그와 내가 협연을 계속하는 한, 이 땅에서 그 누구도 멘토란 말을 강탈할 수 없으리라. 혹 자작극이라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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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함께 찾아오는 지혜


이파리는 많아도 뿌리는 하나

거짓으로 보낸 젊은 시절 동안

햇빛 아래서 잎과 꽃들을 흔들어댔지

이제 나는 진실을 향해 시들어가네


The Coming of Wisdom with Time

Though leaves are many, the root is one;

Through all the lying days of my youth

I swayed my leaves and flowers in the sun;

Now I may wither into the truth.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예이츠의 시는 내가 잊고 싶지 않아 하는 무언가에 이름을 지어준다. 나이 듦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면 “거짓으로 보낸 젊은 시절”을 넘어 “진실을 향해 시들어”갈 기회가 열린다. 시들어가는 것을 보톡스로 막으려는 유혹에 저항한다면 말이다.

  내 젊은 시절의 거짓말들은 의도적인 게 아니었다. 사실인 즉, 나 자신과 세상, 그리고 그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 주제들에 관해 내가 했던 말은, 종종 내 에고라는 악명 높은 거짓말쟁이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내가 누군지에 대한 영적 진실 (즉, 어둠과 빛의 복잡하고 헷갈리는 혼합물)을 받아들이자면, 내 에고는 쪼글쪼글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이는 사람을 가장 쉽게 주름지게 만든다. 이 모든 주름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이 정도나마 내가 다다른 진실은, 자신을 정직하게 직면할 용기를 내도록 하는 영적 훈련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패배를 인정하고 “그래,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라고 말할 정도로 에고가 깨지고 삶에 의해 거름이 되는 경험에서 온 것이다.(40-42쪽)


머지않아 “진실을 향해 시들어 가기”는 죽음에서 끝이 나리라. 죽음은 시듦의 궁극적 형태이고 아마도 진실의 궁극적 근원일 것이다.(47쪽)


예이츠는 시에서처럼 미리 알아차리고 스스로 진실을 향해 시들어간 것일까? 모른다. 대신 파커 J. 파머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패배를 인정하고·······에고가 깨지고 삶에 의해 거름이 되는 경험”을 하고서야 “이 정도나마” 진실에 다다랐다고 고백한다. 에고가 “쪼글쪼글”해져야 “내가 누군지에 대한 영적 진실 (즉, 어둠과 빛의 복잡하고 헷갈리는 혼합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 셈이다. 요컨대, 시들어야 진실을 향한다, 다.


나는 “영적 훈련”으로 도달한 진실을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적 훈련이 “용기를 내도록” 하여 “정직하게 직면한” “자신”을 통해 도달한 ‘진실’은 기껏해야 ‘아라한’이기 때문이다. 아라한은 진정한 “영적 진실 (즉, 어둠과 빛의 복잡하고 헷갈리는 혼합물)”에 가닿지 못한 채, 자신의 알량한 경지를 타고 앉아 내려오지 않는 자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에게서 “어둠”을 내몰고 빛만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그러나 치명적인 거짓이다. 수많은, 아니 거의 모든 ‘영적 스승’은 이 함정에 빠져 있다. (이 문제는 나중에 토머스 머튼을 이야기할 때 자세히 다루겠다.)


함정 아닌 참 도량은 저잣거리의 평범한 삶이다. 평범한 삶에서 경험한 “패배”와 깨짐, 그리고 “거름”이야말로 진실을 향하게 하는 시듦이다. 시들면wither 흔들어대지sway 못한다. 요란한 거짓의 계절이 지난 뒤, 시들고 떨어지는 가장자리께나 진실은 고요히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맹렬한 강박에 포획된 우울증 또는 격심한 우울에 침륜된 강박증을 치료받고 나를 “생명의 은인”이라 부르며 십년 넘게 연락을 계속하는 사십대 중반 여자 사람 하나가 밤늦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느닷없이 쓰러져 돌아가셨단다. 그는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엄마가 당신 자신의 삶이 지닌 진실에 가닿지 못했을까봐 안타깝다고 했다. 죽음의 순간, 얼마나 살고 싶어 했을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극단의 공포가 밀려온다고도 했다. 그의 이런 예민함은 그렇게 죽어가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본 트라우마에서 비롯한 것이다. 나는 목 놓아 한 번 울고, 그 울음을 위해 다시 한 번 목 놓아 울라고 말해주었다. 빈소에서 만난 그는 비교적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입관할 때, 죽음 얼굴에서 엄마가 진실에 가 닿은 증거를 보았다 한다. 죽음으로 가는 급박한 여정에서 그의 엄마가 진실을 맞이하기까지 대체 어떤 시듦이 있었을까. 답 있을 리 없는 궁금함에 젖어 나는 빠르게 소주잔을 비워냈다. 그와 작별인사를 나눈 뒤부터의 기억은 밤하늘로 훨훨 날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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