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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평점 :
세월과 함께 찾아오는 지혜
이파리는 많아도 뿌리는 하나
거짓으로 보낸 젊은 시절 동안
햇빛 아래서 잎과 꽃들을 흔들어댔지
이제 나는 진실을 향해 시들어가네
The Coming of Wisdom with Time
Though leaves are many, the root is one;
Through all the lying days of my youth
I swayed my leaves and flowers in the sun;
Now I may wither into the truth.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예이츠의 시는 내가 잊고 싶지 않아 하는 무언가에 이름을 지어준다. 나이 듦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면 “거짓으로 보낸 젊은 시절”을 넘어 “진실을 향해 시들어”갈 기회가 열린다. 시들어가는 것을 보톡스로 막으려는 유혹에 저항한다면 말이다.
내 젊은 시절의 거짓말들은 의도적인 게 아니었다. 사실인 즉, 나 자신과 세상, 그리고 그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 주제들에 관해 내가 했던 말은, 종종 내 에고라는 악명 높은 거짓말쟁이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내가 누군지에 대한 영적 진실 (즉, 어둠과 빛의 복잡하고 헷갈리는 혼합물)을 받아들이자면, 내 에고는 쪼글쪼글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이는 사람을 가장 쉽게 주름지게 만든다. 이 모든 주름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이 정도나마 내가 다다른 진실은, 자신을 정직하게 직면할 용기를 내도록 하는 영적 훈련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패배를 인정하고 “그래,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라고 말할 정도로 에고가 깨지고 삶에 의해 거름이 되는 경험에서 온 것이다.(40-42쪽)
머지않아 “진실을 향해 시들어 가기”는 죽음에서 끝이 나리라. 죽음은 시듦의 궁극적 형태이고 아마도 진실의 궁극적 근원일 것이다.(47쪽)
예이츠는 시에서처럼 미리 알아차리고 스스로 진실을 향해 시들어간 것일까? 모른다. 대신 파커 J. 파머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패배를 인정하고·······에고가 깨지고 삶에 의해 거름이 되는 경험”을 하고서야 “이 정도나마” 진실에 다다랐다고 고백한다. 에고가 “쪼글쪼글”해져야 “내가 누군지에 대한 영적 진실 (즉, 어둠과 빛의 복잡하고 헷갈리는 혼합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 셈이다. 요컨대, 시들어야 진실을 향한다, 다.
나는 “영적 훈련”으로 도달한 진실을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적 훈련이 “용기를 내도록” 하여 “정직하게 직면한” “자신”을 통해 도달한 ‘진실’은 기껏해야 ‘아라한’이기 때문이다. 아라한은 진정한 “영적 진실 (즉, 어둠과 빛의 복잡하고 헷갈리는 혼합물)”에 가닿지 못한 채, 자신의 알량한 경지를 타고 앉아 내려오지 않는 자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에게서 “어둠”을 내몰고 빛만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그러나 치명적인 거짓이다. 수많은, 아니 거의 모든 ‘영적 스승’은 이 함정에 빠져 있다. (이 문제는 나중에 토머스 머튼을 이야기할 때 자세히 다루겠다.)
함정 아닌 참 도량은 저잣거리의 평범한 삶이다. 평범한 삶에서 경험한 “패배”와 깨짐, 그리고 “거름”이야말로 진실을 향하게 하는 시듦이다. 시들면wither 흔들어대지sway 못한다. 요란한 거짓의 계절이 지난 뒤, 시들고 떨어지는 가장자리께나 진실은 고요히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맹렬한 강박에 포획된 우울증 또는 격심한 우울에 침륜된 강박증을 치료받고 나를 “생명의 은인”이라 부르며 십년 넘게 연락을 계속하는 사십대 중반 여자 사람 하나가 밤늦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느닷없이 쓰러져 돌아가셨단다. 그는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엄마가 당신 자신의 삶이 지닌 진실에 가닿지 못했을까봐 안타깝다고 했다. 죽음의 순간, 얼마나 살고 싶어 했을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극단의 공포가 밀려온다고도 했다. 그의 이런 예민함은 그렇게 죽어가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본 트라우마에서 비롯한 것이다. 나는 목 놓아 한 번 울고, 그 울음을 위해 다시 한 번 목 놓아 울라고 말해주었다. 빈소에서 만난 그는 비교적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입관할 때, 죽음 얼굴에서 엄마가 진실에 가 닿은 증거를 보았다 한다. 죽음으로 가는 급박한 여정에서 그의 엄마가 진실을 맞이하기까지 대체 어떤 시듦이 있었을까. 답 있을 리 없는 궁금함에 젖어 나는 빠르게 소주잔을 비워냈다. 그와 작별인사를 나눈 뒤부터의 기억은 밤하늘로 훨훨 날아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