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동 105번지 나무아트에서 박근혜 하야제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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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동 105번지 나무아트에서 박근혜 하야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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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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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인간의 사유방식입니다. 존재의 장엄을 복원하려는 당위 언어입니다. 신을 사유함으로써 인간은 장엄으로 가는 숭고의 내재화를 꾀합니다. 타락의 문명에서 숭고는 백전백패의 도정입니다. 그 비장함을 기록한 것이 구약성서입니다.


구약성서의 위엄은 실패하는 인간과 그 삶을 가차 없이 기록한 내러티브라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을 움켜쥐는 기독교·이슬람교의 힘이 여기서 나옵니다. 기독교·이슬람교가 구약성서에 힘입어 현실을 장악했으나 바로 그 때문에 구약성서는 현실 속에 유폐 당했습니다. 장엄을 향해 가는 인간의 숭고는 형해가 되었습니다. 구약성서가 숭고의 텍스트로 길이 남으려면 기독교·이슬람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배철현은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신의 위대한 질문들은 우리와 우주 안에 숨어 있는 숭고함을 일깨울 것이다.(30쪽)


그가 장엄과 숭고를 구별하지 않은 것은 인간의 역사를 납작하게 또는 매끈하게 인식하는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 특히 차별과 수탈의 역사는 인간이 장엄에서 이탈하는 과정입니다. 숭고의 역사는 장엄으로 복귀하려는 피눈물의 시간입니다. 이 두 역사는 동시에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역설을 통렬히 각성하지 않으면 신의 질문은 지금처럼 종교적 도그마의 메아리로 갇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 장엄을 되찾으려는 숭고의 길을 백만 명이 다시 나섭니다. 사이비 기독교 사제에게 영혼이 사로잡힌 채 나라를 망친 이른바 대통령과 그 두호세력한테서 공화국을 돌려받고자 함입니다. 각자 장엄한 신으로 스스로의 숭고를 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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