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단지 여성의 건강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것은 남녀 모두의 건강에 관한 책이자 성 차이를 고려한 새로운 과학에 관한 책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 생식 기능을 제외하고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라고 가정하고 행동해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모아온 정보에 따르면 이것은 잘못된 가정이다. 어디를 돌아보든지, 정상적인 신체 기능뿐만 아니라 질병을 체험하는 과정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차이를 보인다.(7쪽)


기나긴 의학사에서 이 이야기를 정색하고 한 것이 2002년이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저자가 몸담고 있는 의학이 백색의학임을 웅변으로 증명해준다. 서구의학이 그렇다고 해서 동아시아 전통의학은 뭐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도 부질없다. 도 긴 개 긴이다.


이 다섯 문장은 이 책의 첫 문단을 이룬다. 단호하면서도 함축이 깊은 선언을 머금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며 그 차이를 고려한 의학을 말하면 대부분 ‘여성에 관한’ 의학이라고 인식한다. 바로 이게 남성의 사고방식이다; 형식논리의 사고방식이다; A가 아니라고 하면 대뜸 non A를 떠올리는 유아적 사고방식이다. 이치를 따지고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이런 사고방식이 수천 년 동안 인류문명의 주도권을 쥐어왔다. 의도된 무지를 탑재한 우중愚衆에게는 어이없음이 매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최근 9년 동안 우리사회를 휩쓴 광풍이 그 전형에 해당한다.


A가 아니라는 말에는 부분은 오류라는 근원적 진실이 들어 있다. non A는 그 진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A가 아니라는 말은 딸랑 non A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전체 진실을 향해 두 팔을 한껏 벌리고 있는 것이다. “성 차이를 고려한 새로운 과학”은 여성과 남성의 화쟁을 통해 일심의 전체 진리를 밝혀 무애자재의 삶으로 나아간다는 선언이다. 종자논리를 바꾸는 발본적인 혁명이다. 이 과학이 완숙기에 이르면 이 과학의 주체들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여성 몸 공부는 당연히 여성 맘공부로 이어진다. 여성 몸 공부는 여성의 오감과 제육감, 그리고 육감肉感을 거쳐 직관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직관으로 보는 전체 진실이 어떻게 남성이 쌓아올린 백색 문명의 세계관과 다른지 알게 되면, 과학의 개벽이 온다. 개벽은 이상한 신흥종교가 떠드는 묵시록이 아니다. 백색과학의 어이없음을 타파하는 죽비다. 둔탁해서 예리한 깨우침 소리를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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