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경험을 통해 제가 이름 붙인 병이 더러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서울대증후군>입니다. 서울대 학부 또는 대학원에 입학한 (직)후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 일이나 사람을 대할 때 느끼는 두려움, 힘없음, 의욕 없음, 관심사 없음, 즐거움 못 느낌, 지쳤다는 느낌, 쉽게 피곤해짐·······우울장애 범주에 넣을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학생들이 의외로 드물지 않습니다. 대뜸 의문이 드실 것입니다. ‘아니, 서울대씩이나 갔으면서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다니?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고 있는 거 아냐?’


대체 왜 이런 생각과 감정에 휘말릴까요? 상식적으로는 성공 뒤에 오는 허탈감 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모든 성취 뒤에 이런 증상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본디 모습을 되찾는 게 맞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항 정도로 심각하다면 여기에는 다른 요소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문제와 맞닥뜨렸던 어떤 서울대 학생과 숙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먼저 명문 사립대 두 곳에 합격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서울대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때 감정 상태를 물으니 별다른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왜 그랬는지 설명해보라 하니 막막한 표정을 지으며 한없이 머뭇거립니다. 제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무조건 서울대로 가야 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가 무릎을 쳤습니다.


“맞습니다. 언제나 제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이 지속되었거든요. 모든 게 이미 정해져 있었죠. 그게 절 숨 막히게 했고, 한없이 공허하게 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의 삶에서 그 자신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국가가 만든 입시제도, 사회적 분위기, 학교와 부모의 집착 등이 일사불란하게 강요하는 편향된 가치가 그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박탈해버린 것입니다. 입시가 끝나고 해방되었을 때, 해일처럼 들이닥친 수치심과 무기력감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것입니다.


숙의 초반에 확인해보니 그는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 힘이 부족하며, 안정적으로 계획하고 조직하는 힘이 떨어지는 경향성을 보였습니다. 타고난 것일 수도 있지만 생애 초기에 입은 트라우마 탓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는 만 2살 이전, 어린이집(종일반)에 보내졌습니다. 양육의 주요 부분에서 부모, 특히 어머니가 결락된 사고였습니다. 10대 초반, 크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수술을 받고 2개월 동안 입원해야 했습니다. 실은 마취·수술·입원도 사고입니다. 10대 후반, 진학·전학을 둘러싸고 겪은 스트레스 때문에 6개월 동안 우울장애 약물치료를 받았습니다. 우울장애 첫 치료를 약물로 하는 것 또한 사고입니다. 이런 일련의 중대한 사고들이 그의 심리 전반을 왜곡하였을 것입니다.


왜곡의 갈피를 찾아가며 우리는 2차례 15개월에 걸쳐 고통과 삶을 숙의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느낀다, 문제를 문제 삼는다, 내 자신에게 예의를 지킨다, 나만의 콘텐츠를 고민한다, 나만의 삶 그 너머를 본다, 절박함·절실함의 감각을 터득한다, 반걸음 앞을 보고 한걸음 내디딘다, 이 순간을 알아차린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내 스타일로 받아들인다, 근원에 육박한다, 전복하고 또 전복한다, 나 자신에게 기도한다,·······. 그러는 동안 그는 늘 어렵기만 하던 아버지와 대화를 통해 휴학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외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자신과 삶을 보는 눈이 천천히 빠르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가 어느 날 설거지한 사기그릇 같이 반들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여전히 느릿느릿 머뭇머뭇 살더라도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를 우선순위에 두고 타인에게 배어들 수만 있다면 족하다 싶습니다. 그럴만한 그에게 신뢰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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