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문제에 유난히 취약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타고났는지 어떤 트라우마 때문인지 알지 못 하지만, 근거로 삼을 만한 일이 하나 있기는 했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서 격리되었습니다. 7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가 그를 길렀습니다. 추정컨대 극단적인 애지중지 아니면, 방치 상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 알아서 해주거나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현실에서 아기가 판단하고 선택할 무엇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하면 따라 하는 습성이 자연스레 형성되었습니다. 그것을 문제로 느껴 정색하고 고민조차 전혀 하지 않았음이 분명했습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일대 파국 위기에 직면했으니 말입니다.


예식만 남았을 뿐, 그는 사실상 혼인 상태였습니다. 그 와중에 그는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었습니다. 배우자가 그 사실을 알아서 문제 삼을 때까지 그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배우자가 분노와 배신감에 떨며 피폐해져가자 그도 화들짝 놀라 자신의 상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거의 실시간으로 자신의 동선을 배우자에게 보고했습니다. 자신의 결백한 생활을 증명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하고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배우자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미 신뢰가 무너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가 하는 행동을 뭔가 숨기려는 계략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를테면 편집장애로 치닫고 있었던 셈입니다. 저는 묵묵히 그가 보는 앞에서 그림 하나를 그렸습니다. 달을 그리는데 달의 윤곽을 먼저 잡지 않고 주위에 있는 구름을 채색했습니다. 채색되지 않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남아 달의 모양을 갖추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이른바 홍운탁월烘雲托月 기법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변방에 답이 있습니다.”


성性(적 결백)이라는 문제의 중심에 배우자의 부정적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를 건드릴수록 불에 기름을 붓는 역효과만 내기 마련이다, 변방을 울려 중심이 비워지도록 해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배우자가 평소 바라던 그대 모습은 뭡니까?”


지성적인 풍모였다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책 하나를 추천해주었습니다. 독후감을 정성스레 써서 배우자에게 읽어주도록 했습니다. 결과는 ‘엄지 척’이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삶의 소미한 길목을 돌며, 차근차근 배우자의 신뢰를 쌓아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보내는 낭보가 쌓여갔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그는 배우자의 손을 잡고, 표연히 하산했습니다. 제가 뭘 더 말씀드릴 게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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