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수려한 용모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빼어난 전문지식을 지닌 서울 강남 출신 엘리트입니다. 그렇다고 통속한 '똥 부자' 부모 덕분에 스펙 쌓고 특목고 간 다음, 관악산 자락에서 몇 년 놀다, 대기업 들어간 경우는 전혀 아닙니다. 평범하게 일반고 나와, 스스로의 힘으로 소신껏 원하는 대학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나름 어렵디어렵다는 금융계 노릇노릇한 자리에 냉큼 자리 잡은 영특한 청년입니다. 헌데 그런 그가 대체 무슨 이유로 절 찾아왔을까요? 그런 그에게 어떤 고통과 어둠이 있는 것일까요?


그가 수려한 용모를 지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에 꼭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중성적' 이미지가 그에게서 풍긴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만 제게는 그 이미지가 애정결핍으로 읽힙니다. 결핍을 어렵사리 극복한 데서 나타나는 어정뜬 균형, 그러니까 그리움이 여전히 기갈처럼 남아 있는 절제가 자아내는 풍경이 중성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핍은, 지닌 자를 먹잇감으로, 다루는 자를 포식자로 배치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먹잇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투명인간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롤 모델도 아니고 기댈 수도 없고 부족함을 채워주지도 않는 아버지와 늘 먼 평행선을 유지했습니다. 삶의 결정적 길목을 돌 때마다 그는 늘 혼자였습니다. 부성父性은 그에게 우묵한 결핍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거의 그 자신이었습니다. 아니, 그가 거의 어머니 자신이라 표현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원통한 삶에 그를 포개놓고 살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어머니의 해원굿이어야 했습니다. 과도한 책임감은 늘 죄책감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죄책감은 늘 자기 파괴적 희생으로 구현되었습니다. 모성은 그에게 육중한 결핍이었습니다.


중첩된 결핍은 그의 인간관계를 근원적으로 지배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연애를 쥐고 흔들었습니다. 그의 연인은 늘 자식 같이 굴었습니다. 그의 그리움인 부성이나 모성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물론 연인에게도 곡절이 있었을 테지요. 두 사람은 늘 그런 문제 때문에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사과와 화해는 늘 그의 몫이었습니다. 이런 불균형에서 그는 날카로운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연인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연인은 늘 즐겁게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적절한 주고받기란 당최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너무 깊어 선뜻 들어가 놀기 힘든 물이었고, 연인은 찰방거리며 놀기에 딱 알맞은 물이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혼인하면 10년 안에 둘 중 하나가 바람을 피울 것입니다. 누굴까요?”


초롱초롱한 그의 눈에 아연 긴장감이 서렸습니다. 바로 다음 순간 설마 자신이겠느냐는 표정이 자리 잡았습니다. 제가 그 표정을 뒤집는 대답을 하자 잠시 망연한 눈빛으로 앉아 있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워낙 영민한 그였으므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옳고 그름의 차원이라기보다 문제를 느끼는 의식의 실팍함, 그리고 그 차이가 빚어내는 생의 중량감 차원에서 그가 견딜 수 없으리라는 이야기를 간단명료하게 해주었습니다.


숙의를 계속하며 그는 중첩된 결핍에서 서서히 벗어났습니다. 5개월 뒤, 그는 연인과 결별했습니다. 연인은 결별의 순간에도 장난기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홀가분하게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사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겪습니다. 만남은 기쁘고 헤어짐은 슬픕니다. 기쁨은 깨달음을 주지 않습니다. 헤어짐은 깨달음을 줍니다. 결별의 각성 여하에서 인간은 판가름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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