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란 없다. 문제부모가 있을 뿐이다.’ 진부해서 진득한 진실입니다. 이 진실의 전형인 그가 까만 얼굴에 새까만 눈동자로 저를 찾아온 것은 고작 10대 중반 때였습니다. 그는 역설 자체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맹하게 풀린, 다른 한편으로는 총기가 번뜩이는 내면 풍경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발음도 분명치 않고 급한 어조로 툭툭 던지는 말의 형식과 깜냥대로 근거와 서사를 갖춘 말의 내용이 기이한 화쟁 미학을 조몰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를 묘사한 부모의 말과 달랐습니다. '엄친아'에서 쓰레기로 떨어진 탕아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문답으로 확인한 바입니다.


“어머니가 늘 그러실 텐데. 언젠가 제자리로 올라올 거라고. 바닥 이전 네 자리는 어디니?”


“그런 바닥 같은 거 없는데요.”


그렇습니다. 바닥이 있다면 누구나 그 바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닥은 결코 어디서 떨어져 나뒹구는 천한 곳이 아닙니다. 올라갈 이유가 없습니다. 아이는 그 진실을 깨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바닥을 치는’ 선문답을 시작했습니다. 화두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전체적 관점을 지니기 위해 뒷문을 열어둔다.

(2) 경계 밖에서 나를 본다.

(3) 자기 자신의 연인으로 살아간다.

(4) 나는 매혹적인 사람인가?

(5) 나는 어떤 소향을 지닌 사람인가?

(6) 진실의 대칭성(1): 평범과 비범의 화쟁

(7) 진실의 대칭성(2): 삶의 두 동력-타인의 인정과 자기 신뢰

(8) 진실의 대칭성(3): 빛과 어둠-가지 않으면 오지 못 한다.

(9) 현실적 인생관: 반걸음 앞을 내다보고 한걸음씩 내디딘다.

(10) 현실적 자기성찰: 바로,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인가?

(11) 현실적 생활 기조: 견디면서 준비하고 준비하면서 견딘다.


10대 중반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거르지 않고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난해하고 심지어 현학적이다 싶은 어휘와 문장을 나오는 대로 구사하면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못 알아듣는다는 느낌이 없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올 것이 왔습니다. 드디어 어머니와 용서를 주고받으며 현실 생활로 복귀시키기 위해 피부에 와 닿는 화두를 꺼내들었습니다.


(12) 사람과 삶을 치유의 관점에서 보기(1): 어머니


바로 그 순간, 어머니는 아이 덜미를 낚아챘습니다. 어머니가 저와 그의 숙의를 더는 참지 못 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불운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이는 머지않아 저를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아이는 3년 뒤 대학생이 되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나름 전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고, 예의 그 반골 ‘끼’가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대신 전술전략을 보유했습니다. ‘이렇게 다시 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오겠다.’며 총총히 떠났습니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그를 위해 화두를 준비해 놓고 기다립니다.


“(13) 철학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