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병색이 가득한 초로初老 한 분이 ‘도통 음식을 삼킬 수 없다. 침 치료를 받으면 낫느냐?’며 찾아왔습니다. 곡절이 있지 싶어 침을 놓으면서 이리저리 말문을 두드려보았습니다. 처음엔 완강히 부인하더니, 이내 기총소사 하듯 말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원인은 배우자의 외도였습니다. 어느 종교단체 회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현장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그는, 여전한 분노와 배신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3년째 부부는 똑같은 말로, 똑같이 소리치며 싸웠습니다. 이제는 아들딸들조차 지쳐서, 이혼하라고 말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진중한 어조로 물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이혼하시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경전에 이혼은 금지되어 있다.’는 대답이 성마르게 돌아왔습니다. 저는 진중함을 더해 다시 물었습니다.


“경전에 혹시 용서하라는 말씀은 없나요?”


민망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가 어떤 유형의 종교인인지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삶의 기준으로 삼는 가치는 대부분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부드럽게 어조를 바꾸어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외도 파트너를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어떤 매력이 배우자분을 흔들었다고 생각하세요?”


의외의 질문을 받은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익숙한 가부장적 어휘 몇 가지를 나열했습니다. 대답하는 그의 얼굴에는 이미 다음 질문을 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한 번도 정색하고 생각하거나, 문제 삼지 않았음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물론, 그가 예상하는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질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붙였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치명적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사달이 나기 전까지 부부간의 성생활은 어땠습니까?”


예의 그 성마름으로 돌아왔으나, ‘20년 이상 전혀 없었다.’는 대답에는 어쩐지 뉘우침의 기색이 묻어 있었습니다. 역시 간단히 질문에 대한 설명을 붙였습니다. 일주일 뒤로 상담 예약을 잡고 돌아갔습니다. 사흘 뒤, 그가 한의원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님, 외람되지만 상담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봐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습니다. 신기해요. 밥이 잘 넘어갑니다. 정말 신기해요.”


저는 싱그러운 리듬을 넣어 ‘축하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가 어깨 통증 때문에 침을 맞으러 왔습니다. 부부간 평화와 안정이 여전히 잘 유지되고 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삶을 크게 돌아본 것이 확실했습니다. 아, 물론 남편의 외도에 면죄부를 준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혀. 당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