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병은 아무리 하찮아도 병으로 인정하고 신속하게 치료합니다. 마음의 병은 아무리 심각해도 병으로 인정하고 신속하게 치료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게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질병 인식 수준입니다. 누가 우울증이다 하면 정신력이 나약하다느니 호강에 겨워 그렇다느니 입찬소리 쉽게 해버리는 풍경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합니다. 요즘은 조금 다른 버전으로 마음의 병을 홀대합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다, 약만 먹으면 금방 낫는다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협공 탓에 우리사회에서 우울장애 환자가 상담치료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50대 중반의 매우 위중한 우울장애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누군가에게서 저를 소개 받았는데, 자신이 인터넷을 통해 찾아서 꼭 한 번 가봐야겠다 메모해둔 사람하고 일치해서 놀랐다며 좋아했습니다. 저는 초군초군 우울장애 전반과 통합치료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희망에 부풀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금방이라도 무슨 결단을 내릴 듯 했던 첫날과 달리 다소 힘 빠진 표정으로 다음 날 나타났습니다. 당분간 침 치료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직감했습니다. 그 다음 날 와서는 배우자가 시골로 이사 가자 말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놀라서 물으니 그제야 상세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우울증은 조용하고 공기 맑은 시골로 내려가 평화로운 전원 생활하면 낫는 병이라고 우깁니다. 상담하고 한약 복용하겠다고 했더니 돈이 남아 도냐며 펄펄 뜁니다. 아무래도 선생님께 통합치료 받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긴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저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여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침마저 맞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사를 갔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나중에 우연히 안 사실은 가벼운 어깨 근육통 때문에 신근히 침을 맞으러 오던 초로 한 분이 있었는데 바로 그가 그의 배우자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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