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26장 첫 번째 문단입니다.

 

故 至誠無息. 

고 지성무식. 

不息則久 久則徵 徵則愈遠 愈遠則博厚 博厚則高明.

불식즉구 구즉징 징즉유원 유원즉박후 박후즉고명.  

博厚所以載物也 高明所以覆物也 愈久所以成物也. 

박후소이재물야 고명소이복물야 유구소이성물야. 

博厚配地 高明配天 愈久無疆. 

박후배지 고명배천 유구무강. 

如此者 不見而章 不動而變 無爲而成.

여차자 불현이장 부동이변 무위이성.


그러므로 지극히 성실함은 쉼이 없다. 쉬지 아니하면 오래 지속되고 오래 지속되면 효험이 나타나고 효험이 나타나면 유원해지고 유원해지면 넓고 두터워지며 넓고 두터워지면 높고 밝아진다. 넓고 두터운 것은 물物을 싣는 것이고 높고 밝은 것은 물物을 덮는 것이며 유구한 것은 물物을 이루는 것이다. 넓고 두터운 것은 땅과 짝이 되고 높고 밝은 것은 하늘과 짝이 되며 유구함은 끝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나타내지 아니해도 빛나고 움직이지 않아도 변하며 작위가 없어도 이루어진다.

 

2. 실천 중용이 구체적으로 역사와 사회 속에서 그 신호와 에너지를 전달해 나아가는 과정을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온전히 적확하고 치열한 실천至誠은 다함이 없는 법입니다[무식無息], 중단하지 않는 법입니다[불식不息]. 늘 깨어 있으면서 시간과 함께 단련되어 갑니다[구久]. 물이 흐르기를 멈추면 썩는 것처럼 “이만하면 됐다” 하고 주저앉는 순간 기득권 의식이 독으로 자라납니다. 시간의 물결에 늘 씻기면서 실천은 더욱 더 퍼들퍼들 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아 있는 상태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견디며 후패하지 않아야 살아 있는 깃발이 됩니다[징徵]. 다함없는 실천은 그 자체로 증거이자 징조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일으키는 힘이며 깨닫게 하는 신호입니다. 굳센 에너지가 되려면, 경쾌한 파동이 되려면 시간 속에 살아 펄럭여야만 합니다.

 

그 깃발이 펄럭여 아득히 먼 데까지 표지로 작용합니다[유원愈遠].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지평선 저 멀리 있는 사람에게까지 푯대가 되어 나아갈 방향을 정해주고, 걸어갈 용기를 줍니다. 참 실천은 반드시 또 다른 실천을 낳는 법입니다.

 

그 실천의 아득한 파장은 점점 멀리 퍼져 나아가고 겹겹이 쟁여집니다[박후博厚]. 참된 소통은 생명의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잠자던 생명의 감각이 눈부시게 살아납니다. 감각들의 공현共絃은 깊은 울림이 되어 서로를 감싸줍니다. 퍼지되 얄팍해지지 않고 깊어지되 편협해지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과 사회와 자연의 생명력을 드높이고, 그 평등한 연대성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고명高明]. 중용의 자랑은 중용 실천자의 덕이나 경지가 아니고 중용 실천으로 드러나는 대동 세상 그 자체입니다. 생명의 쌍방향 소통, 그 자체의 향기가 긍지입니다.

 

3. 이처럼 온전히 적확하고 치열한 실천[지성至誠]은 자신의 엄정한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강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꿉니다. 그렇게 바꾸어 낸 세상과 혼연일체가 되어 흘러갑니다. 애써 자랑하지 않아도 다 압니다. 구태여 힘주지 않아도 바꿀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조종하지 않아도 잘 되어갑니다.   



 

4. 대한민국의 현임 대통령은 이른바 유체이탈 어법으로 자신이 여느 사람과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임을 과시합니다. 이를테면 ‘교주’ 리더십입니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과 소통해야 할 민주공화국의 대통령과는 거리가 먼, 자신을 높이고 국민을 얕잡아 보는 시대착오적인 태도입니다. 그런 대통령의 정치적 실천이 어떻게 적확하고 치열할 수 있겠습니까? 원론만 꺼내 놓고 사라지는데. 어떻게 다함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 정도면 됐다고 늘 자랑하는데. 어떻게 깃발이 될 수 있겠습니까?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지 않는데. 어떻게 또 다른 소통을 낳겠습니까? 백성이 울고 있음에도 혼자 웃으며 다니는데. 어떻게 생명의 시너지가 일어나겠습니까? 생떼 같은 아이들 250명을 죽이고도 못 본 체 하는데. 어떻게 평등한 생명 연대가 일어나겠습니까? 저토록 강고하게 국민을 아랫것 취급 하는데.


중용은 자기 엄정성無息에서 출발하여 평등한 생명 연대高明로 나아가는 유기적 통합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자기에게 관대함으로써 남을 억압하게 되는 정치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온전히 자신을 채워 온전히 자신을 비우는 군자 나기가 이 땅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평범한 시민의 작은 촛불 하나를 큰 가치로 받들 줄 아는 통치자 나기가 이 땅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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