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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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따라서 타자의 부정성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면역학적 기술로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다.(11-12쪽)


  ·······신경성 폭력은 시스템에 이질적인 부정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스템적인 폭력, 시스템에 내재하는 폭력이다. 우울증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소진증후군도 긍정성 과잉의 증후이다. 소진증후군은 자아가 동질적인 것의 과다에 따른 과열로 타버리는 것이다. 활동과잉에서 과잉은 면역학적 범주가 아니며, 다만 긍정적인 것의 대량화를 의미할 뿐이다.(22쪽)


한병철은 신경증 또는 신경성 질환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을 대표적인 예로 꼽았습니다. 그런데 ‘신경증’의 개념은 진단 체계가 없어져 미국정신의학협회의 DSM에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ICD는 ‘신경증적’이라는 개념을 협의로 사용(F40-49)하고 있지만 여기에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등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소진증후군은 1974년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만든 용어로 세계보건기구의 ICD나 미국정신의학협회의 DSM에서 인정하는 공식용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병철의 이런 용어 사용과 이런 질병들이 21세기 초의 병리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는 판단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한병철이 이 책을 쓰면서 인용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는 사람들입니다. 미루어보건대 한병철이 직접 의학이나 면역학의 영역으로 들어가 철학하듯 탐구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가 미주에서 말한 대로 사회적 담론과 생물학적 담론 사이의 상호작용(74쪽), 좀 더 정확히는 사회적 담론의 프레임으로 생물학적 내러티브를 재구성한 결과들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런 넘나듦은 언제 어디서도 일어납니다. 불가피하고 불가결합니다. 문제는 넘나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촘촘하지 못하거나 전경을 드러내지 못하는 통찰입니다. 한병철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소진증후군을 면역학적 부정성 아닌 긍정성 과잉으로 인한 질병의 대표로 꼽은 근거에 관해 생각해보면 대뜸 성기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네 질병 사이에 어떤 연관성에 터한 것도 아니고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제한적으로 열거한 것도 아닙니다. 설명하기 맞춤한 것들을 챙겨 뽑아들었다는 느낌입니다. 하필 양극성장애 아닌 우울장애를, 하필 발달장애에 속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하필 자기애성 성격장애 아닌 경계성 성격장애를, 하필 엉성한 개념의 소진증후군을 특히 긍정성 과잉으로 인한 질병의 대표로 삼은 토대가 그다지 탄탄해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쉽게 단순하게 사유하는 게 아닌가, 불현듯 의구심이 생깁니다.


한병철에게 이런 틈이 생기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서구의 한복판에서 세계의 통시적 맥락과 공시적 지평을 구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를 동질적 긍정성의 과잉 시대로 읽는 것에는 그 자체 타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중대한 논점을 누락시킬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공화정이 인류의 당위로 자리 잡은 20세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와 공화정은 타자적·이질적 부정성, 그 폭력을 물리치려는 저항의 산물입니다. 그 저항은 서구를 중심으로 일어나 서구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꽃이 피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입니다. 서구의 민주주의와 공화정은 인류가 주체로서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제도임과 동시에 기층민중과 식민지를 대상화함으로써 이룩한 피의 제도입니다. 21세기는 신자유주의와 신식민지 전략을 통해 민주주의와 공화정의 어두움을 스마트하게 가리고 가짜 동질성과 가짜 긍정성을 보편화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동질성은 이질성의 가면입니다. 21세기 긍정성은 부정성의 가면입니다. 시스템적 폭력, 시스템에 내재하는 폭력은 위장된 것입니다. 신식민지의 변방에 서면 사유가 어렵고 복잡해집니다.


오늘 518입니다. 광주를 피로 물들여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여전히 오리발을 내밀며 호의호식하고 있습니다. 그 자는 일해재단 만들어 기업가들을 협박해서 불법으로 축재했습니다. 청문회 나와서 말했습니다. 강요한 적 없다. 자발적으로 돈 주더라. 그 말을 곧이들은 사람 없습니다.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소진증후군의 동질성·긍정성은 과연 곧이들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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