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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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래. 나도 죽는다!’ 아주 분명한 몸 감각으로 죽음의 느낌이 다가들 때 슬픔보다 간절함에 목이 멥니다. 제 목숨과 삶에 대해 지닐 수밖에 없는 근원적 그리움이 가슴을 적셔 옵니다. 더 살고 싶다는 안타까움이 아니라 송구함과 감사함으로 온 영혼이 젖어듭니다. 목숨도, 삶도 따뜻한 어머니 품에서 나오는 향 맑은 아픔이며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리움으로 우울증 앓는 벗들과 마음을 나누어 왔습니다. 온 정성을 기울였으나 다만 한 올 바람으로 스쳐 가버린 인연도 있습니다. 어물어물 당황하며 맞았으나 평생 인연으로 함께 흘러가는 인연도 있습니다. 허망함과 뿌듯함이 수도 없이 교차합니다. 누군가는 허구한 날 슬픈 사람과 살다시피 하는데 그대는 슬프지 않은가,·······묻습니다. 물론 슬픕니다.·······그러나 그 슬픔,·······모두 사람의 것입니다. 올만해서 왔습니다. 갈만하면 가지 않겠습니까. 아, 그들이 채 가기도 전에 스러지는 사람이 드물지 않습니다. 허나 그들 또한 알지 못할 또 다른 인연으로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내릴 것입니다.

  하루 삼만 삼천 번씩 꿈을 꿉니다.·······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웃을 무애자재無碍自在의 땅으로 초대하는 꿈. 제 팔 뻗어 닿는 곳에 있는 사람들, 제 입 열어 들을 수 있는 곳에 있는 사람들, 그들만이라도 함께했으면 하는 꿈.·······부디 이 꿈이 예지몽豫知夢이 되어·······켜켜이 쟁여진 정한의 매듭을 푸는 실마리로 살아나기를 삼가 빕니다.(292-293쪽)


우울과 불안이 모질게 엉겨 붙어 있는 청년이 어느 날 상담 중에 문득 문맥을 끊고 간절한 눈빛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쌤 아프지 마세요.”


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쌤 아프시면 누가 고쳐요?”


제가 되물었습니다.


“누구? 너? 나?”


그가 돌연 무거워진 낯빛으로 대답했습니다.


“둘 다요.”


순간 제 온몸은 커다란 눈시울이 되어 붉게 젖어들고 말았습니다. 하마터면 그를 끌어안고 엉엉 울 뻔했습니다. 재빨리 노을을 거둬들이고 웃으며 말해주었습니다.


“쌤은 아파도 안 아파!”


이 말은 그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준 것입니다. 물론 이 말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는 합니다. 제가 본디 하려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쌤은 늘 아파서 안 아파!”


늘 아팠던 장엄 스승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제게 그런 장엄이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 아닙니다. 장엄을 향한 숭고의 여정에서 무수히 실패한 자가 지니는 비애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 오면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네가 고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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