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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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녹여냈다고 해서 그 다음 삶이 온통 기쁨이 된다면 그것은 치유가 아닙니다. 허황된 마법입니다. 병도 치료도 삶, 그 도저한 현실의 일부입니다. 현실 한 가운데서 병들고, 현실 한 가운데서 치료됩니다. 마침내 현실 한가운데서 살아가야 합니다.(214쪽)


마음병을 치료하는 것은 내면을 정화하는 것과 다릅니다. 격정을 풀어 평상심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정화의 맥락이 없지는 않으나 마음병 치료의 핵심은 도리어 삶의 타자적 조건에 유연하게 섞여들 수 있는 불순물 상태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본질상 상호작용인 운동입니다. 상호작용이란 서로 섞여들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서로 섞여들지 않는, 그래서 청정한 순물질의 마음을 경지로 여기는 가르침을 흔히 소승이라 하지만 이는 휴먼스케일 바깥 이야기이므로 당최 수레 자체가 아닙니다. 수레는 구름 아닌 땅 위에서 구르는 물건입니다. 땅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현실은 언제 어디서나 경계사건의 시공입니다. 경계사건은 불순물들이 일으키는 변화입니다. 변화가 치료입니다.


지난 4월 20일 『안녕, 우울증』리뷰58 <모국어 치유(2)>에서 말씀드렸던 ‘마흔네 살 싱그러운 처녀’의 결혼식이 30일 오후에 치러졌습니다. 그 동안 기억할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이 참석했고, 주례도 여러 번 섰지만, 결혼식에서 울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랑했던 남자가 결혼식 직전 일방적으로 배신하고 파혼 선언을 해버려 엄청난 고통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몸부림쳐야 했던 그의 곁에 제가 있었기에 남다른 감회가 든 것이었습니다. 참혹한 슬픔의 순간들이 아프게 되살아났습니다. 기나긴 발효기간 뒤 전개된 눈부신 사태가 감격스러웠습니다. 한의원 진료실에 앉아 그가 흘린 눈물, 자분자분 풀어놓던 이야기 속 그 어디에 이런 변화의 싹이 심어져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변화는 현실에서만 일어납니다. 현실에서 일어난 변화만이 참된 변화입니다. 참된 변화는 진실의 전체성, 그러니까 비대칭적 대칭성을 향해 부단히 나아갑니다. 비대칭적 대칭성의 진실은 슬픔 뒤에 기쁨을 일으키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기쁨 뒤에 슬픔도 일으켜 건강한 감당이 일어나도록 이끕니다. 슬픔만 있는 현실이 없듯 기쁨만 있는 현실도 없기 때문입니다. 기나긴 슬픔의 날을 지나왔다고 해서 저 마흔네 살 아름다운 신부가 살아갈 날들에 기쁨만 깃들기 바라는 것은 그저 수사修辭로 머물러 족합니다. 슬픔이 밀려오면 인격을 다해 맞아들이고 인격을 다해 흘려보내는 그이기를 빌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벌써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축하의 술잔을 오래 나눈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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