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3장 본문입니다.

 

子曰 中庸 其至矣乎 民鮮能久矣.

자왈 중용 기지의호 민선능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은 최고의 도리다. 백성들은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2. 평범함에서 늘 벗어나지 않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실천의 덕목입니다. 자신의 기득권에 대한 애착과 집중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같은 정도로 대우해야 하는 상대방과 소통하려면 필승의 전략이 아닌 공감의 진정성을 지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성으로 세상을 살기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 자세로 살면 백전백패할 것인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영혼 깊숙이 동의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2장에서 보았듯이 ‘특별한’ 존재로 인정 받고, 거리낌 없이 사는 사람들이 세상의 권력, 돈, 지식을 거머쥐고 있는데 그들 밑에서 힘없이, 궁핍하게, 더듬거리며 한 평생을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애쓰며 살아도 고작 백년 안쪽인데 도덕이며, 가치며, 아름다움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에 누군들 빠져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소인에 맞서 상생의 세상, 대동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군자의 길에 선뜻 나서, 내내 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도 여기 백성, 곧 민民이라 함은 소인다운 삶의 자연Sein적 매력과 군자다운 삶의 당위Sollen적 기품 사이에서 흔들리는 다수 시민을 가리킬 것입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특별한’ 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존재이므로 참 소통의 길, 즉 군자의 길에 목말라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소인의 저 ‘특별한’ 소유도 가없는 열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어느 순간 분연히 떨쳐 일어나 군자의 결기를 세워 보지만 이내 주저앉게 됩니다. 자긍심에 상처 입은 처자식의 슬픈 눈망울을 뿌리치는 일이 권력, 돈, 지식을 뿌리치는 일보다 쉽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아버지가 중용의 삶을 살아갈 때 흔쾌히 동의하고 동참할 아내와 자식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길을 모델로 제시하며 따르도록 강요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오래 지속하기 힘듭니다. 그들은 하루하루를 눈물겹게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몫을 지니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3.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비록 오래 지속할 수는 없으나 백성은 때때로 화산이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짧은 순간 집중된 결기로 중용이 수직적 성취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거대한 힘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백성의 존재는 숭고합니다. 또 그래서 백성이 백성인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중용의 도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백성을 두고 한탄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닙니다. 본디 중용의 도를 지속시키는 것은 군자의 몫입니다. 군자는 그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그가 선택한 만큼이 그의 삶이니 그로써 군자 되는 것이 군자의 숙명입니다. 군자라면 그 숙명 속에서 백성을 만나 그들과 소통함으로써 변혁의 여울목으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중용의 여정은 군자 다로 백성 따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군자 따로 백성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크게 하나大同입니다.


4. 우리 역사를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경 일천오백 년에 걸친 매판사적인 이익을 위하여 외국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제 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일이나 사람의 장구한 역사 가운데 인조반정 이후 단 한 번도 패권을 놓아본 적이 없다는 서인 노론 시대 이야기(신영복 선생의 주장에 대한 기본적 동의를 전제한 것임.)만 간추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군자연君子然했으며, 그 무엇보다 중용의 도를 지켰다고 자부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앞장서서 제 나라 조선을 일제에 팔아먹었습니다. 식민지 35년 동안 충실히 부역했습니다. 그들이 매판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동안 백성은 독립혁명투쟁을 일으켰습니다. 3.1혁명을 비롯한 여러 만세운동이 그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장투쟁이 그것입니다.


해방 뒤에도 서인 노론 집단은 반성은커녕 반공주의를 무기 삼아 다시 집권세력이 되었습니다. 매판과 독재, 그리고 분단체계를 하나로 묶어 지금까지도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매판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동안 백성, 그러니까 국민은 또 다시 목숨 걸고 자주·민주·통일을 위한 혁명 투쟁을 일으켰습니다. 4.19혁명이 그것이고 5.18혁명이 그것이고 6.10혁명이 그것입니다. 촛불집회 또한 같은 맥락에 있는 것입니다.


국정원과 군부의 명백한 선거 개입, 심지어 개표 시스템 조작을 통한 총체적 부정이라는 문제 제기까지, 이른바 정통성 시비에 휘말린 현 집권세력은 급기야 세월호사건을 일으키고 사고로 조작했습니다. 서인 노론 식 공작정치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제 국민은 어떻게 화산이 될 수 있을까요? 과연 중용의 수직적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요?



현실 상황으로 판단컨대 고전적 혁명의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사회정치적 모든 지표가 여실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빅 데이터의 예측이 그리 말하고 있습니다. 지표와 예측을 넘어서는 어떤 순간을 우리는 기다립니다. 기다리기 위해 우리는 먼저 길을 나섭니다. 그 길이 바로 인문의 길입니다. 인문의 길은, 혁명을 오래된 미래로 품고 있습니다. 화산의 풍경을 삭힌 감성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때리지 않고 울려서 성벽을 무너뜨립니다.


오늘 여기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인문 역시 고전적 인문은 아닙니다. 허구와 관념적 성찰의 영지에서 떠올리는 문학이나 철학이 주도하는 인문은 무력하고 한가합니다.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지향하는 경험의 서사가 지휘하는 실재the Real인문이 우리의 길입니다. 픽션과 논픽션, 문학과 의학, 철학과 과학, 심리학과 사회학, 시와 소설이 서로 경계를 가로지르며 실재 세계를 구성하는 길이 실재인문의 길입니다. 실재인문의 숨결에 우리 공동체의 마지막 감동이 달려 있습니다. 그 마지막 감동을 화산이게 하지 못하면 우리 공동체는 소멸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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