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울증 - 남성한의사, 여성우울증의 중심을 쏘다
강용원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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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체·······

  ·······남성은 부분에 집중합니다.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봅니다. 그러므로 그 밖의 것은 눈에 안 들어옵니다. 이를 ‘중심 시각’이라고 합니다. 이런 감각은 원시시대 사냥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설도 있는데, 전체를 부분의 합이라고 보고 부분을 분석하는데 집중하는 삶의 태도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부분을 분석해서 다 모아 놓아도 전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집중 또 집중합니다.·······

  여성은 부분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 상황을 한눈에 읽는 데 능합니다. 중심 시각을 흩트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감각입니다. 아마 월경-임신-출산-육아-완경으로 이어지는 변화와 돌봄의 삶, 그리고 전통적인 가사노동의 경험 등에서 비롯한 감각일 겁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의 명암과 흐름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과 늘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성은 생각도, 행동도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진행할 수 있습니다.·······

  병도 생명 현상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병만 뜯어서 본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입니다. 병‘만’ 보다가는 병‘도’ 못 보는 어리석음을 저지릅니다. 의사는 궁극적으로 병을 고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과 삶을 고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전체에 주의하는 생명 감각이 아니면 참의사가 되기 어렵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의사 두 분이 붓다와 예수라면 그 분들의 공통점은 사람과 삶을 전체로 꿰뚫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감각에 포착된 사람과 삶은 다름 아닌 슬픔이었습니다. 붓다의 자애로움에 슬픔이 녹아 있기에 자비慈悲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사랑에 슬픔이 녹아 있음을 신약성서는 특별하게도 ‘예수께서 우셨더라.’는 말을 세 번이나 등장시킴으로써 드러냅니다(웃으셨다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의사의 감각이 머물러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요.(130-131쪽)


『고수의 생각법』이라는 책을 낸 ‘바둑 황제’ 조훈현이 최근 정치를 하겠다고 큰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보고 ‘멘붕’이 와서 바둑 발전을 위해 집권여당으로 들어간다고 했다니 과연 고수의 생각법입니다. 대한민국 정치판에 대한 정밀한 형세판단 끝에 내린 결론이라 전제하고 일단 추이를 지켜보겠습니다.


한 방면에서 ‘도가 트이면’ 모든 방면의 안목이 열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견성한 승려들만 지니는 생각이 아닌 모양입니다. 하기는 산꼭대기 올라가 보면 발아래 깔린 수많은 길들이 결국 한곳으로 모이니 자신이 올라온 길이 아니라 해도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테지요. 특이한 것은 우리사회의 경우 그런 고수들이 정치에 발을 담글 때는 대부분 수구집단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도가 트인’ 사람들이라 범속한 사람들은 모르는 깊은 뜻을 지니고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이 그 동안 내왔던 정치적 결과를 통해 판단하건대 그 깊은 뜻이라는 것은 사실상 실체가 없는 허깨비임이 분명합니다. 이 길로 ‘도가 트인’ 사람이라고 해서 저 길로도 ‘도가 트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지 싶습니다. 강자의 위선 클럽에 합류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는 것이 명쾌한 설명 아닐까요.


이치를 따지자면 인간 그 누구도 전체적 안목을 완벽하게 지닐 수 없습니다. 그런 한계를 인정하고 매순간 더 큰 맥락을 고려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계가 비대칭의 대칭으로 구성되고 운동한다는 진실 안에서 삶의 감각을 벼려내야 합니다. 한 쪽 극단으로 치우치거나, 한 방향으로 경도되어 부분적 사실에 집착하는 것은 자체 오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침내 권력으로 변하여 타자를 강제하고 착취합니다. 모든 사상과 종교가 그렇습니다. 심지어 과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 날 부분의 전체 지배는 불가피한 최소한을 뒤집고 제약 불능의 최대한으로 군림하며 전 인류를 제압하고 있습니다. 이 폭력은 가파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은 언젠가 기술특이점을 형성하면서 극소수 지배층의 신노예제사회 전략에 획기적인 공헌을 할 것입니다. 이 비관적 예측이 단지 예측으로 끝나려면 “수많은 감정들, 수많은 긴장감들, 이 느낌들이 모이고 쌓여 인간에 존경심으로 귀결되는” 전체적 생명 감각을 일깨워야 합니다. 돈만이 가치이고 돈 버는 능력만이 자랑인 이 세상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오늘 아침 김소연 시인이 쓴 <인간의 감정들>이라는 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가 네 차례의 대국을 치렀다. 처음엔 알파고에 대해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점차로 이세돌 기사에게 관심이 옮겨가는 게 느껴진다. 승패의 결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터뷰나 기자회견 같은 것조차 이세돌에게만 가능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이세돌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알파고는 우리의 존경을 얻기엔 가지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많아 보였다. 더 이상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길 수 없게 되더라도, 우리가 알파고를 존경할 일은 아예 없거나 요원해 보였다. 그는 조마조마해했고, 바둑알을 손끝에 쥐고서 떨었다. 떨리는 손끝에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이 실려 있었으니, 그 손끝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 손끝에 마음을 주었다. 사람들은 패배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말을 할지가 궁금했고, 그는 가장 차분하고 가장 깨끗한 대답을 했다. 듣는 우리는 감탄을 했다. 당황하고 긴장한 표정, 잔뜩 찌푸린 미간, 초조가 극에 달했을 때에 담배를 피우며 보였던 뒷모습.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에 우리는 마치 내 일처럼 아슬아슬해했다. 그는 세 번을 졌으면서 마침내 이겼고 함박웃음을 보였다. 세 번을 졌으면서도 마침내 이길 수 있는 게 진정 인간의 모습이라는 말 따위는 할 필요도 없다.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감정들, 수많은 긴장감들, 이 느낌들이 모이고 쌓여 인간에 존경심으로 귀결되는 것을 알파고는 누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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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3-15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수들의 수구집단행에 대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

2016-03-17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