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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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가치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외양에 달려 있다. 그래서 전시의 강제는 성형수술과 피트니스클럽에 대한 강박을 낳는다. 성형수술의 목표는 전시가치의 극대화에 있다. 오늘날에는 내적 가치를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외적인 척도를 제공하는 자가 모범으로 여겨지고, 사람들은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러한 척도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전시의 명령은 가시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절대화를 초래한다. 비가시적인 것은 전시가치, 주의를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하지조차 않는 것이 된다.(34-35쪽)

 

일부 서구 언론들은 대한민국을 성형수술의 Capital이라 부릅니다. 몸 숭배 문화라며 그 저급함을 비웃습니다. 저들의 말이 다 옳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인구 대비 성형수술 건수가 압도적인 세계 1위인 게 사실이고 보면 마냥 부인할 처지 또한 아님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몸 숭배, 정확히는 외모 숭배가 다른 어떤 숭배에 비해 더 저급하거나 해괴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외모 숭배는 돈 숭배, 권력 숭배, 종교 숭배의 맥락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돈·권력·종교는 인간을 “내적 가치”로 판단하지 않고 “외적인 척도”로 판단하는 3대 근거입니다. “그러한 척도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충성이자 헌정인 한 성형수술이든 뭐든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성형수술의 그 충성·헌정 행위가 인간 자신의 몸에 칼을 대는 “폭력적 수단”이라는 데 있습니다. 돈과 권력과 종교의 타락상을 급기야 인간 생명의 물적 구현인 몸에 새긴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도 “전시가치의 극대화”를 위한 “아름다운 외양”만을 만들어 넣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로써 투명사회가 육화embodiment되었습니다. 악마의 성육신Embodiment이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

 

악마가 노리는 바는 간단명료합니다. 생명의 깊이를 강탈하여 표면으로만 존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깊이는 생명에 있습니다. 더 깊은 삶이 있느냐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더 얕은 삶은 엄존한다는 사실입니다. 표면으로 투명성을 확립하고 그것에 사로잡힌 삶, 사로잡혔으면서 사로잡았다고 착각하는 삶, 소유의 대박을 영혼의 대박이라 굳게 믿는 삶 말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으로 가득한 세상이 바로 악마의 대동大同입니다.

 

악마의 대동은 물론 전 지구적 프로젝트입니다. 성형수술을 필두로 한 이른바 허영소비의 세계 시장 규모는 4조 5천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 시장의 성장을 한국·중국·인도가 주도한다고 합니다. 특히 18.4%에 이르는 한국의 가파른 성장은 세월호사건 유가족을 세금 도둑으로 모는 현실과 대비되어 실로 통렬한 아이러니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외모의 결함이 어떤 사람에게 정신장애의 요인이 될 수 있어 성형수술로써 건강한 삶을 되찾아주었다는 개별적 진실과 어떤 나라가 ‘성형공화국’이라는 사실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서 직면하고자 하는 것은 ‘성형공화국’입니다. 그 공화국의 국민입니다. 주권을 가졌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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