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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평점 :
아메리도·······언어의 단절 때문에 괴로웠다·······하지만 그의 언어는 독일어여서·······다른 방식으로 괴로움을 겪었다.·······정신적인 괴로움이었다.·······자신의 언어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는 괴로워했다.·······라거의 독일어는·······지식인에게는 알아듣긴 하지만 말하려 하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야만적인 은어였다.(163쪽)
제법 이른 아침 시간인데 90세 어르신 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 동안 노인성현훈(어지러움)을 치료받으시던 분입니다. 송구영신 인사를 하러 30년 아래인 제게 먼저 오신 것이었습니다.
“갑오년 한 해 원장님 후의厚意 덕분에 잘 보냈습니다. 오는 을미년 새해 의업 창성을 기원합니다.”
90노인의 고색古色 인사를 받다 화들짝 떠오른 말.
“갑오세甲午歲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 거리다, 병신丙申 되면 못 가리.”
갑오·을미의 언어적 연상이 일으킨 기억작용임에 틀림없습니다. 갑오년에 부패한 내정을 혁파하여 외세를 몰아내지 못하면 이듬 해 을미년을 허송하다가 그 다음 병신년이 되면 나라와 백성 모두가 병신(불구)이 된다는 뜻을 담은 저 갑오년, 그러니까 1894년 농민혁명 당시의 노랫말입니다. 갑오년을 넘기면 안 된다는, 여기서 시간을 멈춰 세우고 기어이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의 뜻을 이루자는 견결한 의지가 민중적 언어유희에 실려 비장과 골계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120년 전 갑오년의 이 노랫말이 120년 후 갑오년 마지막 날인 오늘 해질녘, 격한 다급함으로, 발끝을 태우는 안타까움으로 생생히 다가옵니다. 저 갑오년 우금치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가 이 갑오년 맹골수도에서 재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갑오년 불리다 스러진 노래가 이 갑오년 다시 불리다 스러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120년 전 어떤 말이 오늘 우리 혀에 이렇게 착착 감기는데 반하여 오늘 우리 귓전을 맴도는 어떤 말은 우리 입을 얼어붙게 합니다. 세월호사건 이후 260일 동안 이 나라 힘 가진 자들이 쏟아낸 말들은 오직 이것이었습니다.
“알아듣긴 하지만 말하려 하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야만적인 은어”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건이므로 당연히 국고에서 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힘 가진 자들이 야합하여 “야만적인 은어”를 만들어 본질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세월호사고.
국민성금으로 보상.
2014년 갑오년에 수용소 국가 권력이 만들어낸 “야만적인 은어”들의 결정판입니다. 이 “언어의 단절”, 그러니까 공동체의 파괴를 그대로 두고서야 우리가 어찌 이 갑오년을 떠나보낼 수 있겠습니까. 오늘이 2014년 12월 31일인 사람은 야만인입니다. 2014년 260번째 4월 16일 따름인 사람이 바로 참 지식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