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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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2월, 내가 이송되었던 열차는·······칸마다 공중화장실 역할을 할 용기를 비치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그것은 갈증이나 추위보다도 훨씬 더한 고통을 불러일으켰다.·······사람들 앞에서 용변을 본다는 것은 고통스럽기 그지없거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은 문명사회 안에 있던 우리가 미처 대비하지 못한 트라우마였고 인간의 존엄성에 가해진 깊은 상처였으며 불길한 징조로 가득한 추악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의도적이고 터무니없는 사악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SS호위대는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플랫폼이나 선로 중간에 아무데나 쭈그려 앉는 것을 보면서 즐기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지나가던 독일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혐오감을 드러냈다. 이런 놈들은 비극적 운명을 맞아도 싸다, 하는 행동을 보면 알잖아. 저들은 멘쉔Menschen, 인간이 아니다, 짐승이다, 돼지들이다, 너무나 명약관화하지 않은가.(133-135쪽)

 

먹고 싸는 일은 인간생명에게 필수불가결하고 그런 만큼 거룩합니다. 피상적인 생각과 달리 둘 중에는 싸는 일이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입니다. 40일 넘게 먹지는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싸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평소 먹는 양에 비해 싸는 양이 1.3배 많은 게 정상입니다. 혀가 감각을 증폭시키는 데 반해 항문은 감각을 응축시킨다는 사실도 같은 지평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싸는 일의 중요성·시급성은 두 가지 이유에서 먹는 일과 전혀 다른 문화적 의미맥락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냄새나는 노폐물을 배출해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향기로운 음식물을 흡수해 들이는 것과 정반대의 인상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할 때 생식기를 노출시켜야 하기 때문에 성행위와 더불어 먹는 일하고는 달리 함께 실행하기 ‘거시기한’ 것이 되었습니다. 실체적 진실이 어떠하냐와 상관없이 배설의 문화적 의미맥락은 내밀함, 심지어 부끄러움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여성들에게 더욱 그러함은 물론입니다.

 

이런 맥락을 악의적으로 무너뜨려 다른 인간의 존엄을 탈취함으로써 고통을 주고 그것을 즐기거나 방관자로서 혐오감을 드러내는 인간과 존엄을 탈취당하고 고통에 빠진 ‘비인간’ 사이에 과연 무엇이 가로놓여 있을까요? 남의 존엄을 탈취한 자가 인간일 리 없으니 비인간의 위험에 떨어진 것은 마찬가지이고 그저 포식자와 피식자의 차이만이 존재하는 것인가요?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당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맞물린 이 순간에 바로 인간 존재가 지닌 비극성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문득, 동료의 26번째 죽음을 목도하고 76m 높이의 공장 굴뚝으로 올라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이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이 엄동설한의 굴뚝 위에서 ‘똥을 어찌 눌꼬?’, 그러니까 자본과 권력이 그의 배설에 가한 쓸데없는 폭력이 가장 마음 쓰입니다. 하루빨리 그가 따뜻한 제 집 화장실에 편히 앉아 쾌변을 누리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누구보다 아빠가 굴뚝 위로 올라간 그 날 호되게 앓아버린 아들 주강이, 그 아들 끌어안고 남편을 애타게 그리는 아내 이자영을 위해서.

 

“·······제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주강이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우리가족은 당신이 있을 때 완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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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12-18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춥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다가도
씨앤엠 노동자들과 쌍차 노동자들을 떠올리면 앗차 싶어 후회합니다.
그들을 떠올리면 도저히 지금 제 추위를 투덜댈 순 없지요.

bari_che 2014-12-18 18:16   좋아요 0 | URL
고마운 마음이십니다.^^
그렇게 마음을 포개는 데서부터 희망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