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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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에서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일부를 박탈당했다는 의식을 되찾고 괴로워했다.·······우리는 수개월 또는 수년을 동물적인 수준에서 살았다.·······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기 위한 성찰의 자리는 없어졌다. 우리는 더러움과 사생활의 결핍과 자기 존재의 축소를 정상적인 삶이었을 때보다는 훨씬 덜 괴로워하면서 견뎠다. 우리의 도덕적 잣대가 변했기 때문이었다.·······우리는 우리의 나라와 문화뿐만 아니라 가족과 과거, 우리가 그렸던 미래 또한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물처럼 현재의 순간에만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굴곡 없는 바닥상태로부터 우리는 단지 드문 막간 동안에만 벗어날 수 있었다.·······하지만 이것은 고통스런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왜소해진 우리 존재를 외부로부터 측정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해방 후(종종 해방된 직후에) 일어난 자살의 많은 경우들은 이와 같이 몸을 돌려 “위험한 물”을 바라보는 데서 기인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해방은 어쨌든, 반성과 우울함이라는 해일과 함께 찾아온 위기의 순간이었다.(87-88쪽)

 

“이제 됐어?”

 

몇 년 전 한 외고 학생이 엄마가 요구한 성적을 낸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유서 전문입니다. 그가 살았던 공간은 ‘성적-아우슈비츠’였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간은 ‘성적-동물’로였습니다. 이윽고 “존재를 외부로부터 측정할 기회”가 왔을 때, 그러니까 “어둠에서 나왔을 때” 그는 “자기 존재의 일부를 박탈당했다는 의식을 되찾고 괴로워했습니다.

 

마침내 프리모 레비의 준엄한 통찰 지점에 가 닿고 말았습니다.

 

해방 후(종종 해방된 직후에) 일어난 자살의 많은 경우들은 이와 같이 몸을 돌려 “위험한 물”을 바라보는 데서 기인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해방은 어쨌든, 반성과 우울함이라는 해일과 함께 찾아온 위기의 순간이었다.

 

세계에서 청소년이 가장 많이 자살하는 나라 대한민국은 누가 보더라도 거대한 수용소입니다.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서 지난 봄 이 국가는 단박에 고등학생 266명을 바다에 빠뜨려 타살하는 기록을 천추만대에 새겨 놓았습니다. 시방은 또 ‘물 수능’으로 수십만 수험생에게 ‘물고문’을 가하고 있습니다. 요행히 좋은 성적으로 살아남아 명문대학에 가도 이른바 ‘서울대증후군’에 시달리는 아이들한테 대한민국은 20대, 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통계 말고는 제시할 것이 없습니다. 입만 열면 국격과 국기國紀를 떠드는 자들이 통치하는 나라치고 너무나 형편무인지경입니다.

 

상위 0.1% 매판 과두寡頭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기 위한 성찰의 자리”를 빼앗고 대신 “왜소해진 우리 존재를 외부로부터 측정할 기회”를 흘림으로써 우울증과 자살로 국민을 몰아가는 이 사이비국가가 권력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범죄를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됩니다. 야차의 무리를 응징하려면 어떤 질곡에서도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기 위한 성찰”의 결기를 지켜내야 합니다.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기 위한 성찰”의 결기가 흔들릴 때마다 죽음의 순간에도 “사랑해!” 톡을 보낸 우리 새끼들의 지극한 마음결을 되새겨야 합니다. 하여 그 아이들의 죽음 값을 살아내야만 비로소 우리는 인간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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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5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5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4-12-05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얼마전 딸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잘함이 더 많아

bari_che 2014-12-05 21:31   좋아요 0 | URL
따님의 오묘한 어법
제가 잘 못 알아듣겠습니다.^^

그저 어머니께서 인용하신 뉘앙스 따라
한 말씀만.^^

모름이 더 많아

2014-12-05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