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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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대가 지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의 시대를 포함해서요. 해가 감에 따라 제게는 이 기억들이 이해되는 방식에 있어서 일종의 표류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였어요.” 레비는 종종 학교에서 젊은이들과 만남을 갖는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감정적인 참여가 있어요. 격렬하지만, 역사적인 동참은 아니에요.·······(255쪽)

 

이성복이 말합니다.

 

“구원이 온다면 망각과 함께 오리라.”(「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192쪽)

 

그러니 구원 받기 위해 잊자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기억함으로 죽임 당할지언정 그런 구원이라면 거절한다는 기상을 담았을 터.

 

프리모 레비가 정곡을 찔러옵니다.

 

표류.

 

기억이 진실을 붙잡고 있는 한 그것은 표류, 그러니까 떠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시대는 지나갈 지라도 진실의 기억은 지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 당위를 무심코 밀어내면서 기억이 지나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다시 한 번 프리모 레비가 의표를 찌릅니다.

 

감정적 참여.

 

대체 감정적 참여가 어쨌기에? 이 또한 프리모 레비로 돌아가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동참은 아니에요.

 

그렇습니다. 감정과 역사를 대칭으로 구성하여 이해한다면 감정은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 다시 그 내면에서 스러진다는, 그러니까 흘러가버린다는 말입니다. 역사는, ‘역사는 흐른다.’ 뭐 이런 역사가 아니라, 진실을 길이 담아두는 실재로서 역사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그만 배 밖으로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재빨리 자기가 검을 떨어뜨린 곳, 그러니까 뱃전에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다음에 거기서 찾으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자신이 탄 배가 계속하여 움직인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어리석은 처사입니다. 각주구검刻舟求劍 이야기입니다.

 

흔히 이 이야기를 시세의 변천도 모르고 낡은 것만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이해입니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진실을 놓치고 떠내려가면서도 그런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풍자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이 역사적인 동참이 아니기 때문에 떠내려갈 수밖에 없는 감정적 참여입니다. 역사적인 동참을 하는 사람은 뱃전에 표시를 하는 대신 검을 떨어뜨린 순간의 전체 좌표를 기억해두고 가급적 빨리 그 배에서 내립니다. 그 기억을 잃으면 안 됩니다. 검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배를 타고 끝까지 가서는 안 됩니다. 검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멀어지고 확률은 점점 더 낮아집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지니고 시간과 공간 사용을 구체화하는 사람만이 역사를 함께 살아내는, 그러니까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기억을 흩트리려는 세력의 음모·허위·조작·기만·은폐 행위를 우리는 그 동안 공포에 떨면서 지켜보았습니다. 기억이 흩어진 채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구원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안일한 이기심을 우리는 그 동안 서럽게 지켜보았습니다. 가능한 한 배가 멀리 떠내려가도록 시간을 끄는 세력의 음모·허위·조작·기만·은폐 행위를 우리는 그 동안 공포에 떨면서 지켜보았습니다. 가능한 한 멀리 떠내려가는 게 행복한 삶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안일한 이기심을 우리는 그 동안 서럽게 지켜보았습니다. 204일 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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