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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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줄기들이 그 자유를 누리면서도 서로 연대하는 일·······이질성들이 공존(con-sist)하면서 ‘무질서의 질서’라고나 해야 할 어떤 일관성(consistence)에 도달하는 일·······(244쪽)

 

국보 제169호 청자양각죽절문병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보았습니다. 그 때 받은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받은 감동은 아마도 다른 많은 분들과는 다르지 싶습니다. 고려청자의 빼어난 비취색이나 그 병의 아름다운 형태미 등에 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를 사로잡은 것은 말로만 듣던 국보 청자양각죽절문병이 “대충” 만들어졌다는, 그러니까 장인이 낮술 한 잔 걸친 채 손톱으로 죽죽 대나무 사이를 가르고, 되는 대로 쓱쓱 대나무 마디를 그었다는, 느낌이 주는 무량한 친근감과 온기였습니다.

 

월드스타 김윤진을 영화 아닌 실제에서 가까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보았습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사뿐사뿐 걷는 배우가 아니고 아파서 옴쭉 달싹하지 못하며 신음을 토해내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맨얼굴 김윤진을 말입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건대, 분명히 그 맨얼굴 김윤진이 훨씬 더 아름다웠습니다. 아픔이란 창을 통해 드러나는 무량한 친근감과 온기는 그 어떤 화장과 미용술로도 빚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자분자분 병에 대해 이야기하며 때로는 묵묵히 그에게 침을 놓았습니다.

 

자유를 누리면서도 서로 연대하는 무엇, 무질서의 질서에 도달하는 무엇이 아니라면 실로 예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유를 누리면서도 서로 연대하는 무엇, 무질서의 질서에 도달하는 무엇이어야 진실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드러내는 게 예술의 본령이라면 이는 사람의 그것과도 같으니 결국 사람은, 그러니까 삶은 예술이어야, 아니 적어도 예술을 향해 부단히 걸어가야 하는 무엇입니다. 이 과정을 인문人文이라고 합니다. 인문의 위기는 삶을 예술 아닌 사업으로 여기는 ‘사람 아닌 사람’이 판을 치고 있는 사태입니다.

 

 

군대 폭력 문제의 해결책으로 인문학이 운위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실소가 절로 터져 나옵니다. 대체 인문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렇게 인식한 인문학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온 나라를 사업 판으로 만들어 반反인문의 세상으로 만들어 놓고서 인문학을 떠드는 이 적반하장의 코미디. 연대의 맞은편에 날뛰는 자유가, 질서의 맞은편에 질펀한 무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떠드는 인문은 가짜입니다. 가짜가 권력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뭉개는 오늘 정녕코 아나키의 미학이 필요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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