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쌤, 엄마한테 꼭 말씀해주세요!



[질문]


저는 3~4년간 우울증을 앓아왔고, 지금은 우울증으로 인해 학업에 실패하고, 대학진학도 포기하고, 사람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해져서 일반적이 사회생활이 힘들 정도입니다. 사람자체가 싫어 친구들과 연락을 끊은 지도 1달이 넘어가고, 가족들과의 상태는 우울증을 겪으며 급속히 나빠졌고, 저는 지금 가족들, 특히 엄마에 대한 많은 실망과 배신감들로 괴롭습니다.


자살충동을 자주 느끼고, 자살시도는 한번 있었고, 자살에 대한 생각들도 많이 합니다. 삶이 허무하기만 하고, 공허한 마음만 듭니다. 가끔은 세상 속에 있는 제가 투명한 막에 휩싸여 둥둥 떠다닌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인간이 작게 보이고, 저는 그보다 작게 보입니다. 열등감이나 외로움과 같은 갖가지 부정적인 감정들로 힘이 듭니다.


대학 진학을 다시 결심했지만 공부는 잘 되지 않고, 나아갈 방향도 잡지 못하겠습니다. 흥미가 있는 것도 없고, 절 그나마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은 판타지, 무협 같은 소설이나 만화책 그리고 TV를 보는 것뿐입니다. 그것조차 좋아하는 감정보다는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그저 멍하게 보는 수준입니다. 이것조차 안하면 제가 정말 인간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니까요. 어느 것도 제게 긍정적인 마음이나 관심은 끌지 못하고, 그래서인지 꿈도 없습니다. 무언가를 시도해보려고 해도, 인간관계나 여러 능력 면에서 저는 너무 작아져서 생각에 그칠 뿐입니다. 갈수록 소심해지고, 신경질적이게 됩니다. 잘해나가고 싶지만, 사람들 말처럼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도움의 손길이 너무도 필요하지만 주위에는 그럴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병원에는 두 달 정도 다녔지만 의사선생님과 만나면 자꾸만 긴장을 하게 되고, 말을 잘 하지 못했었고, 여러 상황들로 상담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병원을 다니고 싶지만 가족 특히 엄마에게서 또다시 같은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 두려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엄마나 가족들은 제가 유별나다고 생각하고, 공부하기 싫어 핑계를 대는 거라 생각합니다. 저를 전혀 이해해 주지 못하고, 그런 가족들과 대화하는 것이 저에게는 상처일 뿐입니다.


지금 병원을 다닌다면 돈 때문에 가족들에게 말해야할 텐데, 아니 적어도 한사람에게는 말해야할 텐데 가족 중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습니다. 비밀로 해달라고 해서 지켜질 보장도 없고요. 알바를 해서라도 병원비를 구하고 싶지만, 알바 할 때 부딪힐 사람들을 생각하면 포기하게 됩니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없고, 병원을 다니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주위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나아질 방법이 필요합니다. 가족들에게 알리는 게 가장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었지만 부모님에 대한 제 실망만 커졌을 뿐입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가족들에게 알리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울증이란 병에서도, 그리고 제 인생에서도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답변]


1. 그야말로 사면초가시군요.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제 인생의 어떤 길목들과 겹쳐지는 바람에 가슴이 자꾸 가라앉는 걸 느꼈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떤 위로의 말이 귀에 들어 오겠습니까만 그래도 곁에 계신다면 등 한 번 따스하게 도닥여 드리고 싶은 마음은 꼭 전하고자 합니다.


2. 지금 상태를 이론이든 임상사례든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그닥 마땅해 보이지 않네요. 스스로 아시는 바대로 깊이 있는 대화/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시급히 받으셔야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판단은 간결하게 하셔야 해요. 이것저것 고려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핵심 하나만 붙잡으세요. 우울증에 사로잡힌 자신의 생명을 구출하는 일밖에 달리 선택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돈 걱정하다가 생명 놓치는 일을 선택하실 것입니까? 아직은 이 땅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 속에 의사도 있는 법입니다. 돈 없다면 치료 안 하겠다는 의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3. 용기를 내셔서 직접 연락을 주시면 좋겠군요. 도와드릴 방도를 찾아보겠습니다. 사시는 곳이 어딘지 등 상세한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제 안타까움도 막연할 수밖에 없거든요. 자, 일단 그 힘부터 내 보세요. 홧팅!


[두 번째 질문]


안녕하세요. 답변을 읽기 전까지 많은 망설임 끝에 읽고, 또 이런 글을 쓰기까지 한 10번은 썼다 지웠다....... 반복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글이 안 써지는지.......


저는 돈이 아깝다거나, 돈이 아까워 치료를 받지 않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절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상담하는 일이라고 해도 될까요?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짐작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제 상황에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 자신이 느끼고도 있고, 그 치료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제 자신도 진지하고 끈기 있게 치료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돈이 없어 걱정하는 게 맞지만 뭐랄까....... 돈 구할 데는 있지만 뭐든 하기 전에 숨이 턱 막힌다는 게 문제이지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알바를 하거나,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가족 중 누구 한사람에게라도 말하여 금전적 지원을 받는 것....... 셋 다 딱 이거다 마음 내켜 할 만한 게 없고, 그나마 알바가 차라리 낫지만....... 이 생각 저 생각 안하려 해도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저는 조그만 거에도 상처받고, 또 그 상처받는 거에도 스트레스 받고, 그 스트레스 받는 것에 또 제 자신에게 실망하고....... 그렇게 진행될 것들이 눈앞을 스치니 깜깜하기만 합니다.


저는 **에 살고 있고, 작년까지는 고2때부터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서울에는 친 언니, 오빠가 있어서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았는데 외지 살다보니 건강도 나빠지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다시 **로 온 것입니다.


직접 연락한다는 것이 전화말씀이신지? 02-***-**** 이리로 하면 되나요? 선생님이 직접 받으시나요? 아니면 간호사 언니들이.......?


오늘 따라 말투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로 공격적인 것도 같고....... 왜이런지 잘 모르겠지만 혹시 선생님도 그렇게 느끼셔서 기분이 상하시지는 않을지 걱정이네요.


[두 번째 답변]


1. 그렇게 망설이면서도 글을 쓰고, 또 읽으시는 일 자체로 이미 치유의 길에 들어서신 것입니다. 우선 그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격려하시면 내면의 힘이 생길 것입니다. 조금 더 용기를 내 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를 향해 글을 쓰고, 또 그 상대방의 글을 읽는 일,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어려워해요. 저도 그렇습니다. 많이 망설이고, 또 고치고.......그럽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 숨 막히고 가슴 조이며 오만 생각 다 하게 되는 거, 웬만한 사람들 다 그래요.


자, 일단 심호흡 한 번 하세요.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세요. 저 많은 사람들이 **님보다 훨씬 강하고 유능하고 행복해 보이겠지만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테지요. 중요한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입니다.


물론, 고통은, 당하는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법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예민하고, 힘들고, 숨 막히는 느낌이 들게 되었는지 연유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직시함으로써 문제는 해결을 향하여 본격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2. 스스로 공격적이 된 사실을 알아차리신 것도 훌륭해요. 하지만 대뜸 상대방 걱정으로 넘어간 대목이 문제네요. 왜냐하면 상대방도 자신처럼 상처 받지나 않을까, 사실상은 그랬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돈 이야기를 꺼낸 것은 결코 **님이 돈 아끼느라 치료를 안 받으시려 한다거나, 돈 안 내고 어디 치료 받을 데 없나 두리번거린다는 의미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전체 문맥을 살피면 능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님이 스스로 공격적이라고 느끼실 만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신 것은 상대방의 현실적인 배려를 나름대로 공격으로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반응은 약도 되고 독도 됩니다. 약이 되도록 하는 게 우리 공통 목표 맞지요?


그럼, 아시는 바, 그 번호로 전화를 주세요. 제가 드릴 수도 있지만 스스로 전화하시는 것 자체도 하나의 치유행동이며, 성숙한 사회행동이기 때문에 그리 권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면 간호사가 그 즉시 저를 바꿔 줄 겁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 때 나누기로 하지요. 힘!


2008년 초, 이 소녀와 실제로 만나 밥까지 먹여가며 하는 무료 상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뒤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았지요. 그러나 획기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바로 엄마, 다른 하나는 돈. 바로 이게 우리사회의 좌우 아킬레스건입니다. 그중에서도 우선은 엄마.


사회적, 경제적 자립이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우주 자체지요. 엄마가 앞장서면 모든 길이 열립니다. 엄마가 가로막으면 모든 길이 닫힙니다. 이 소녀 가슴에는 분명히 이런 소원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제발, 우리 엄마가 제 상황을 꼭 알았으면 해요! 그런데 상황은 뒤집혀 있습니다. 2010년 벽두에 13살짜리 소녀하고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질문]


안녕하세요아직13살인데이런글올려도될지모르겠네요

마음상담실이라고해서올리는건데요

친구들이다들절싫어해요왕따는아니구요그냥대놓고

제가싫다고말하네요그리고엄마도많이아프세요

엄마가혼자일하세요왜냐면부모님이이혼했거든요

저정말마음도아프고힘드네요

친구들은저정말많이싫어하구요저이제중학교올라가는데요

입학식날친구들이절어떻게볼지걱정되네요

방금도많이울었어요엄마아픈것만생각하면진짜눈물나구요

친구들도절싫어하구요어떻해야되죠위로말씀듣고싶네요

정말자기전에안우는날이없습니다힘드네요


[답변]


1. 13살 소녀도 인격이며 생명입니다. 아플 수 있습니다. 위로 받을 권리도 있습니다. 이렇게 온라인으로나마 도움을 청해주셔서 고마워요. 그 용기와 진정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2. 부모의 이혼에 따른 상처, 어머니에 대한 걱정, 그리고 친구들 때문에 느끼는 소외감....... 누군가 감싸주지 않으면 홀로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군요. 우선 무조건의 위로를 전합니다. 다만 섣부른 격려는 일단 보류하지요. 이 상황에서 힘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부추김인지 잘 아는 까닭입니다.


그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만 쉽게 말씀드려 볼까 해요. 이렇게 글을 쓰신 것처럼 되풀이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도록 하세요. "나 아파, 나 슬퍼, 나 외로워!"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듣고 스스로 고개를 끄덕여주세요. 아플만하고 슬플만하고 외로울만하다고 스스로 지지해주세요.


아파해선 안 돼, 슬퍼해선 안 돼, 외로워해선 안 돼, 이러지 마세요. 아니, 나 인제 안 아파, 안 슬퍼, 안 외로워, 이러진 더더욱 마세요. 부정하고 외면할수록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은 더 깊어지기 때문이지요. 따뜻하게 자신의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을 안아주고 다독여주세요.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은 상처에 대하여 병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것은 치유를 위해 감응하는 것입니다. 좀 어려운 표현이죠?^^ 하지만 무슨 뜻으로 드리는 말씀인지 알아차릴 수 있죠?^^ 좋아요! 일단 이렇게만 하더라도 마음의 힘이 조금씩 생긴답니다.


3. 오늘은 요기까지. 다시 한 번 위로의 마음을 전해드려요. 쌤이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럼.......^^


13세 초등학생 소녀가 아픈 엄마를 진심으로 걱정합니다. 그래서 눈물 흘립니다. 자기 자신의 우울증을 의심하면서도 엄마를 살피는 마음이 제 온 영혼을 적셔 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 긴 제 임상 기간 동안 딸이나 아들을 위해 이렇게 간절한 마음을 전해 온 엄마가 전혀 없었다는 기억이 새삼 저를 전율하게 합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도대체 어찌하여 우리가 이런 삶을 살게 된 걸까요?


물론 엄마들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갈 일, 아닙니다. 아니 엄마들이 더 힘들겠지요. 그들이 산 세월, 얼마나 신산했는지 모르는 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 또한 어디선가 흘러왔을 것입니다. 책임이 있다 해도 온통 뒤집어씌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각성은 고통을 겪은 자에게서 먼저 일어나는 법입니다. 먼저 각성한 자가 먼저 길을 여는 것, 또한 이치입니다. 엄마들의 각성은 잘못한 것에 대한 윤리적 책임 때문이 아니라 왜곡되고 억압된 자신과 자녀의 영혼을 본디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한 생명적 의무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마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진실을 보아야만 합니다. 내 자식이 깊이 병들어 있습니다. 내 자식이 발달불균형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내 자식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핵심에는 사회 체제가 있습니다. 이 사회 체제를 주도하고 있는 헤게모니 블록을 상대로 내가, 이 엄마가 싸워야 합니다. 혼자서는 안 됩니다. 연대해야 합니다. 생명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이 죽어가면서 사무치게 엄마를 부르고 있습니다. 절통한 마음으로 제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쌤, 엄마한테 꼭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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