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특별한 짝꿍 질환이 있어요.


아이들의 우울증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 바로 발달장애입니다. 이 문제는 뒤에 가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지만 우선 <발달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의 저자 호시노 요시히코의 개념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발달장애에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이른바 자폐증과 아스퍼거증후군을 아우르는 광범성발달장애(PDD), 그리고 학습장애(LD)가 모두 포함됩니다. 그리고 그 장애라는 표현이 주는 편견을 고려하여 그는 발달장애를 발달불균형증후군으로 다시 고쳐 말합니다.


발달불균형증후군이 만병의 근원이라 하는 호시노 요시히코에 따른다면 이것이 우울증과 결합할 경우 우울증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됩니다.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마도 엄밀한 인과관계로 놓기보다는 평등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아니 어쩌면 파악하는 관점의 문제이지 본령은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규명하는 게 중요하지 않고, 아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다양하게 고통 받고 있는가를 살피는 게 중요하겠지요.


2009년 여름에 나눈 대화입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전 중3 16살 여자고요. 요즘 너무 기운이 없어요. 과다수면 아니면 기면증에 걸린 게 아닐까 하고 두렵고요.


제가 우울증 대인공포 조울증, 이런 게 좀 심한 거 같아서 글을 남겨요. 요즘 스트레스에 정신적으로 힘들고요. 잠 때문에 또 몸이 너무 힘들어요. 학업, 가족, 메이크업 학원(진로 이쪽)이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진짜학교에서 밥 먹다가도 운다니까요? 그냥 순간적으로 기분이 확 상하고 기분 안 좋을 때 돌발적인 행동을 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표정이 안 좋아지고 울죠.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않아요. 물론 학교에서 즐거운 시간도 조금은 있겠죠. 하지만 워낙 감정 기복이 심해서....... 전학 온 뒤로 더 심해진 거 같아요. 미칠 것 같아요.


제가 감정기복이 심하다고 했잖아요. 어제 학교에서 일기 쓸 때,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손목을 칼로 내려찍어서 죽여 버리고 싶다." 이렇게 썼다니까요? 이런 제가 지금 보니까 무서워서 미칠 지경이에요.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삶의 낙이 없어요. 취미도 없고요. 취미 찾아볼 생각도 없어요.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전 우울증 스트레스 조울증 이런 거 테스트할 때마다 다 점수가 높게 나와요. 낮게 나오는 딱 하나 자살 테스트뿐. 자살할 용기는 없어요. 인터넷 중독도 심각하게 나오는 편이구요.


마음이 복잡해요. 저도 이런 제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너무 복잡해요. 미칠 것 같아요. 한의원이나 정신과 이런 곳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안정 취하고 싶은데 돈도 걱정이지만 엄마, 아빠가 그런데 왜 가냐고 할 것 같아요. 엄마아빠는 제가 이런 줄 몰라요.^^ 활발한 애로 알고 있어요. 분명히 한의원이나 정신과 가자고하면 미친년 취급하면서, 돈 아깝다고 공부나 해! 이럴걸요? 안 봐도 비디오죠. 이렇게 안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제가 싫어요.


자가 테스트에서는 ADHD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특성불안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태입니다, 자세한 평가 및 치료가 필요합니다, Hamilton 테스트하신 결과는 19점입니다, 당신은 중간 정도의 우울증 증상이 있습니다. 전문의와 상담하세요.......


[답변]


1. 부모님과도 소통하지 못한 채 이런 상황 앞에서 두려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구체적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지금 마음 상태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보냅니다.


2. 자신과 생활을 살피다가 자가진단까지 하게 되었겠지만 그 결과를 보고 지나치게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참고 자료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합니다.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우울증 환자가 된다는 극단적인 말도 있는 것처럼 이런저런 병명에 얽매이다 보면 정말 내가 이러다 미치는 게 아닐까 더럭 겁이 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시기 바랍니다.


물론 말씀하신 대로라면 열여섯 나이에 홀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현실인 것이 맞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 특히 의지만한 어른이 계시지 않다는 게 참으로 힘든 부분입니다. 사실 공부 문제든 진로 문제든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는데 어른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만 하면 뭐가 되는 줄 아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대화가 잘 안 되지요.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겪는 심리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는 더더구나 완고합니다. 사춘기 때 존재하지 않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유 능력이 엄청난 속도로 자라기 때문에 허무감에 빠져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생각이 자라는 폭량과 실제 할 수 있는 일 사이가 너무 커서 절망감, 우울감에 빠져든다는 사실도 수용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진지하게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또 하나, 더 어이없는 편견이 있습니다. 어린 애가 무슨 우울증이냐, 네가 뭐 부족한 게 있어서 우울증이냐,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정신력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회풍조입니다. 이는 참으로 '완전' 무지입니다. 우울증의 90%는 청소년 초기에 발병합니다. 부모 없고 돈 없어서 우울증 걸리는 게 아닙니다. 우울증은 정신력으로 버틸만한 기분저하를 넘어선 뇌질환입니다.


3.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일단 *** 님 자신부터 자신이 처한 시기가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자신에게만 일어난 특수한 것이 아니고 남들에게도 일어나는 보편적인 것이란 사실을 차분히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읽을 수 있어요. 그래야 무서움이 성큼 덜어지거든요.


다음에는 진지하게 이 문제를 부모님과 상의하셔야 합니다. 물론 안 봐도 비디오인 거 압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계속 말씀하셔야 해요. 필요하다면 이 상담 글을 보여드리세요. 그래도 안 되면 제가 부모님과 직접 통화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이 문제는 개별적 연락 통로를 이용하지요.) 아무튼 이 문제는 중3 학생이 혼자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4. 지금 상태를 그냥 내버려 둔 채 시간이 약이다, 하고 버티면 안 됩니다. 중3이면 앞으로 남은 몇 달의 시간이 질적으로 아주 소중합니다. 객관적으로 우울증이다, ADHD다, 이런 병명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생활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합니다. 서둘러 부모님께 알리시고 길을 찾아야 합니다. 힘!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학습장애는 이미 우리사회의 주요 문화목록어가 된지 오래입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들의 이 문제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아이들의 성적이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의 인격의 고른 성장, 그에 다른 사회적 스킬의 균형 잡힌 발달 문제보다는 당장 급한 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짝꿍인 우울증에는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아니 아이한테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보이는 행태가 전형적인 (어른) 우울증의 증상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발달장애가 우울증 뒤에 숨어 있을 가능성도 결코 낮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발달장애는 감추어져 있는데 그로 말미암아 우울증이 잘 낫지 않게 되므로 상황이 꼬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광범성발달장애 가운데 전형적인 자폐증은 어려운 병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우울증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아스퍼거증후군이 문제겠지요. 아스퍼거증후군은 일상적 대화나 학습활동에는 거의 문제가 없습니다. 특별한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의 공감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맥락과 상관없는 일방적인 언행을 거침없이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잘 융합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고립이 일어나고 우울증과 결합됩니다. 아, 물론 반대의 수순을 밟기도 하겠지만요. 요즘 이런 아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낍니다. 아스퍼거증후군을 병이라고 볼 수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발달의 불균형과 우울증이 공존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결코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 크게 문제 되는 짝꿍이 불안장애입니다. 2009년 겨울에 나눈 대화입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 학생입니다.


제가 지금 공부를 해야 되는 시기인데,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고 너무 지쳐요. 중2때부터 불안한 증상이 시작되고, 중3때, 그리고 고1인 지금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우울증 검사를 해보니 심한 증상이라고 나오더군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제가 이제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될지 모르겠어요.


마음속에 불안들이 자꾸 휘몰아쳐요. 첫 번째 불안은요 제 주위의 사람들이 죽을까봐, 저의 이러이러한 행동 때문에 사고를 당한다거나 죽고, 제 곁을 떠날까봐 자꾸 나쁜 상상이 되고, 불안해져요.


두 번째 불안은 성폭행, 성추행, 납치, 강제, 폭행, 폭력, 살인 이런 사회적으로 안 좋고 무서운 일들이 저한테 일어날까봐, 제 가족들, 제 친척, 저의 소중한 사람들이 당해서 제 곁을 떠날까봐 걱정이 되고, 마음속으로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계속 생각을 하지만, 자꾸 생각이 나요.


세 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동성애자라고 생각할까봐 그게 두려워요. 전 그냥 평범한 학생인데, 중3때 남자애처럼 생긴 공부 잘하는 어떤 여자애가 있었는데, 저는 '쟤는 어떻게 공부를 잘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빤히 쳐다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다른 사람들한테는 제가 동성애자로 보였을 까봐 그게 걱정이 되요. 지금으로선 많이 지난 일이지만요. 그때 그 여자애의 친구들이 귓속말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저를 보면서 욕을 한 것 같고, 제 얘기를 하는 것 같고, 저를 오해해서 제 친구들한테 오해한 것을 말할 것 같은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이글을 읽으시는 선생님께서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실까봐 겁도 나고요. 막 다른 사람들의 나쁜 일에 잘 됐다 이런 생각 들 때도 있고 그럴 때면 벌받을까봐 걱정된 적이 많아요. 제가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혹은 어떤 친구가 저를 원망하거나 복수하려고 할까봐 겁이 나고요. 항상 똑같은 고민 똑같은 생각을 하며 힘들게 지내고 있어요. 벌이란 것이 무섭고 생각하는 것이 무서워요. 아무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공부에만 전념하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돼요.


그냥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도 가끔씩 밀려들어오는 생각에 무표정으로 멍하게 있을 때도 있어요. 음, 다른 사람들, 가족들, 친구들은 제가 이런 고민을 하는 줄 모르고요, 말하기도 싫어요. 저 어쩌면 좋을까요. 공부도 안 되고 지금 너무 힘듭니다. 꼭 답 글 써주세요.


[답변]


1. 한창 공부할 시기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2. 기본적으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감에 상처를 입었군요.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가지는 감정 가운데 하나인 신뢰감에 문제가 생기면 우울과 불안이 나타납니다. 어떤 곡절이 있어 그렇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일단 깊고 자상한 상담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합니다. 더 지체하지 말고 부모님과 진지하게 의논하셔서 상담 받으세요.


3. 그리고 한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립니다.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잊지 마셔야 해요. 지금 *** 님의 연령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고 능력이 급성장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무의미감, 공포감, 불안감 등이 수시로 출몰하지요. 하지만 그것들 영원하지 않아요. 다 지나갈 것입니다. 따라서 너그럽게 생각하고 견디는 순간들도 필요합니다.


4. 하지만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꼭 받으셔야 해요. 힘!


물론 우울증과 불안장애의 결합은 어른의 경우에서도 현저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서 훨씬 더 심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감정-뇌가 팽대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생애 초기에 겪은 다양한 공포들이 다시 점화되고 일반화되어 청소년기의 불안을 증폭시킵니다. 여기에는 끊임없이 조여드는 성적(成績)에 대한 압박감, (이성) 친구 관계의 미묘함, 성적(性的)인 상상과 욕구에서 오는 폭발적 공격과 그에 따른 죄책감, 외모에 대한 날카롭고 중독적인 관심, 그리고 추상적 사유 능력이 가져다주는 죽음 등에 대한 서늘한 경도(傾倒) 등이 매우 현실적인 힘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니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누구도 동참할 수 없는, 그런 불안이, 초조가, 조급증이 언제나 30cm 안에 있습니다. 책을 열 때 손끝이 떨리는 그런, 밥 한 숟가락 밀어 넣을 때 속이 문득 굳어버리는 그런, 야자 끝나고 집으로 향할 때 홀연히 아득해지는 그런, 그런, 불안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울울한 마음을 그 어디에도 풀어놓을 수 없을 때, 아이들은 속절없이 우울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엄마도, 아빠도, 분명히 그런 시절을 겪었을 텐데, 왜 기억하지 않는 걸까요? 누구든 다 그런다고요? 그래요? 그러면 누구든 다 죽을 텐데 뭣 하러 사나요? 헐~!  


세 번째로 크게 문제가 되는 짝꿍, 바로 불면증입니다. 2008년 여름에 나눈 대화입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고3학생입니다. 수험생은 아니고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도 아니고요.


근데 요즘 들어서 자꾸 밤이 되면 잠이 안와요. 불면증인 거 같은데....... 뜬눈으로 밤을 지내구요. 아침에 해 뜨는 거 봐도 잠이 안 들어요. 자다 깨다 자다 깨다 심하고요. 그래서 몇 시간 못 자고 또 일어나서 밤을 새곤 해요. 진짜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가만히 있다가 눈물이 막 나고요....... 누가 조금만 서러운 말을 하면 그냥 눈물이 줄줄 흘러요. 쓸 데 없는 잡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을 못 자는 거 같은데 아예 잠이 안와요. 잡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그리고 죽고 싶다는 충동도 많이 느끼고요.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구요.


제가 어릴 때부터 병을 갖고 있어요. 임파선 혈관 기형이라는 병이에요. 얼굴에 부어오르고 보기 싫은 상처 때문에 옛날부터 마스크를 끼고 다녔었어요. 그래도 당당하게 잘 살고 있었거든요. 근데 요즘 들어서 제가 너무 한심해 보이고 1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데 걔가 나한테 뭐라고 하면 더 눈물 나고 섭섭하고 서운하고 그런 거 같아요.


그 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 들어서 왜이런지 모르겠어요. 정말 힘들어요. 지금도 눈물이 막 나요. 너무 서럽고 우울하고 섭섭하고 뭔가 모르게 슬프고 밤에 잠도 못자고 왜 이런 거죠?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와요.......피곤한데 잠이 들지가않아요.......


[답변]


1. 아주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위로와 공감의 마음을 전합니다.


2. 전후 사정으로 보아 수면장애를 동반한 우울증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병명의 확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고요히 받아들이는 일이 치유의 지름길입니다.


수면장애도 우울증도 있을 만해서 있는 것입니다. 즉 곡절이 있다는 말이지요. 그것을 살피지 않고 병이니까 무조건 빨리 떼어내야 한다고만 생각하면 일이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모든 질병은 내면의 소리를 간직하고 있으므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잠이 안 올 때 '잠이 안 온다.'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깨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깨어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하게 되지요. 눈물이 흐를 때 우울하다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눈물은 슬픔을 씻어내는 약이기도 하거든요. 이렇듯 진실은 모순된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사실에 온 영혼이 눈뜨기 위해 지금 많이 아픈 겁니다. 마치 해 뜨기 전 어둠이 더욱 짙은 것처럼.......


3.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지녀 온 병과 그 치료적 외상에 결부되어 자긍심이 입은 상처가 핵심 아닐까 싶군요. 이 문제는 자상하고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4. 하지만 고통은 고통입니다. 단순히 정신력으로 승부할 게임이 아닙니다. 수면중추를 포함한 신경, 내분비, 면역계의 이상 상태를 분명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므로 심층 상담은 물론 약물(수면제가 아닌)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우울증에 내면의 소리가 깃들어 있다고 해서 고행주의를 자처할 이유는 없지요. 더 미루지 말고 부모님과 상의하여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셔야 하겠어요. 힘!


물론 기면증도 있어요, 한사코 자려 하는 병 말입니다. 사실은 똑같은 겁니다. 대략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수면주기가 전면적으로 재조정된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감정-뇌의 팽대와 무관하지 않겠지요. 이때는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잠이 요동을 칩니다. 완전 말똥말똥하거나, 완전 ‘시체’거나....... 이걸 보고 어른들은 또 욕합니다. 예민하기 짝이 없다, 신경 줄이 너무 가늘다, 정신이 썩었다, 결기가 부족하다.......마치 아이들이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투로. 정작 윤리적 감수성이 필요할 땐, 세상이 다 그런 거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고, 생명의 이치가 작동할 땐 막무가내로 윤리를 들이밉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짝꿍. 맨 끝에 놓아서 섭섭하겠어요, 바로 중독이죠. 우선 퍼뜩 떠오르는 것은 게임중독입니다. 2011년 초 봄에 어느 엄마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질문]

초등학교 3학년 된 아이를 둔 40대 초반 엄마입니다. 요즘 아이가 온라인 게임에 너무 빠져 있어 걱정입니다. 집에서 못 하게 하니까 주변 PC방을 다니더군요. 학교 근처 문방구 앞에도 작은 게임기가 있어서 몇 시간 동안 하고 돌아오는 눈치고요. 집에서도 게임을 하게 해 달라며 하루 종일 저를 따라다닙니다. 제가 잔소리도 심하게 해보고, 달래보기도 하고 아이 아빠도 야단쳐 보지만 소용이 없네요. 제가 보기엔 아이의 머릿속에 게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걱정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이런 문제를 대할 때 흔히 우리 어른들이 취하는 극단적인 태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게임중독에 빠져버렸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그 치료 방법을 찾아나서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먼저 부모가 아이를 야단치고, 도덕적으로 훈계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지요. 어떤 부모는 미끼를 던져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려 하기도 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계약’을 맺기도 합니다. 그러다 안 되면 상담이나 약물치료를 위해 심리상담소나 신경정신과 병의원을 찾습니다.


다른 하나는 방치하는 것이지요. 먹고살기 바쁜 부모의 경우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일일 테지만, 편하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극단이지만 두 태도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정서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아이들이 어떤 감정적 경로를 거쳐 게임에 빠져드는지, 그리하면 아이들이 어떤 정서 속에서 살게 되는지,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결과만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는 극단적 규제로, 다른 하나는 극단적 방임으로 고착되는 것이지요. 둘 다 나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아이가 지금 중독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정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물론 재미 수준을 넘어섰을 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있지만 그렇더라도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아이의 정서, 특히 감정적 결핍이나 상처입니다. 결핍이나 상처 때문에 격화된 감정이 아이를 그런 곳으로 몰아가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학교생활에 대한 불안이 격화되면 게임에 몰두함으로써 그 불안을 피해 가려 하게 되지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감정 형성 과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게임을 금지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게임에 빠져 있다는 현실 이전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마음의 현실을 알아차려서 맞장구 쳐주고 다독이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감정은 나 몰라라 하고 행동만 금지하는데 아이가 어찌 그 금지를 진심으로 수용하겠습니까.


이맘 때 아이들의 경우 이성·의지 에너지가 감정 에너지를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감정적으로 마음 문을 닫은 아이는 더 이상 어른의 이성·의지적 말을 듣지 않는 게 아니라 듣지 못 합니다. 여기부터 해결하세요. 그게 바른 순서입니다.


중독은 게임 말고도 많죠.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폭력, 전쟁, 정복 등에 관한 환상적인 생각이나 만화, 판타지 소설. 실제적 폭력, 절도, 폭주, 음주, 흡연, 본드 흡입, 섹스. 또, 아, 자살 시도. 이 모든 것들이 실제 일어나는 몸 감각, 삶의 열정을 제압하기 위한 도피이자 슬픈 실천인 것입니다. 어른들은 물론 이 또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어 심판합니다. 중독을 몰고 온 고통은 모르쇠. 고통을 낳은 우울은 개 무시. 아, 우리 짝꿍이 물어요, 어른들은, 우울증이 몸 감각을 죽일 때, 어떻게 당당히, 그리고 관능적으로 대처하느냐고요. 흠, 알죠, 어른들한테 할 말이 없다는 걸.


편리한 대로, 어쩔 땐, 덩치 작은 어른으로, 어쩔 땐, 반 토막 인간으로 아이들을 가지고 노는, 사물화 하는 일일랑 이제 그만두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그 자체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 자체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 자체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 자체의 눈물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른과 다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에 주의를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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