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리사회의 특별한 조건2-불화하는 가정, 가정 폭력
[질문]
안녕하세요? 우선 이런 곳에서라도 털어놓는 게 쉽진 않지만 그래도 상담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인데요. 예전에 아빠께서 반 년 동안 거의 집을 나갔었고 아빠가 잘못해서 제가 중2때 엄마랑 아빠랑 이혼을 했고요. 중1때부터 저는 상처가 많았고요. 엄마도 아빠 때문에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그 후로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사는데 엄마가 직장을 다녀요.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거의 저한테 풀고요. 엄마와의 마찰이 너무 심합니다. 엄마가 욕하면서 화내는 것에 저는 항상 말대꾸를 하게 되요. 저항할 힘도 있고요. 하지만 그게 잘 못된 건 줄은 아는데 엄마가 그런 입장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 화나서 더 화내고요. 뭐 별로 심하지 않은 사소한 투정만 부려도 이년저년 하면서 그럼 아빠랑 살아, 왜 나한테 빌붙어서 이러고 있냐? 넌 아빠랑 똑같아서 난 너 싫어, 지금 당 나가! 이런 소릴 시도 때도 없이 합니다. 그리고 나가라고 막 밀고 제가 밀리면 현관문 잠그고, 정말 싫습니다.
전 아빠도 싫어요. 아빠 집에도 가기 싫어요. 그 소릴 들을 때마다 정말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울어요. 용돈도 정해진 날짜에 안주고 엄마랑 몸싸움도하고 엄마가 싸대기도 때리고 밤에 잠옷 바람으로 쫓겨나서 택시타고 친구 집에서 잔적도 있어요. 엄마 때문에 집 나간 적도 있었고요. 그래도 엄마가 직장에서 윗사람들한테 많이 깨지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이해해야지, 하고 생각을 하는데, 교통비 떨어졌다고 교재 사야 된다고 돈 달라고 하면 욕하고 돈 없다 그러고....... 그리고 동생하고 저를 차별해요. 엄마가 너무 싫어요. 침대에만 누우면 소리 없이 우는 게 습관이 됐어요. 그래서 거의 항상 팅팅 부은 눈으로 등교하고요. 엄마랑 마찰이 있을 때마다 저는 자살을 생각하게 되고 자살시도도 해봤습니다. 옷장에 옷걸이 매달아서....... 근데 너무 서러워요. 독하지 않고서야 못 죽겠어요.
스트레스성 장염도 있어요. 스트레스는 거의 친구들과 돌아다니거나 폭식하는 걸로 푸는 편입니다. 뭐 우울하고 그렇다고 해서 밥을 안 먹지는 않습니다.^^ 친구들은 많지만 이런 거 털어놓을 진짜 친구는 한명입니다. 저는 활발하고 밝은 성격이지만 혼자 있을 때마다 항상 우울해지고 소심해져요. 학교생활은 괜찮아요. 별 문제 없는데 지나간 과거의 가정문제를 떠올리면 계속해서 눈물만나오고 아빠를 원망할 뿐이고요. 여하튼 엄마랑 다툴 때면 다투는 게 너무 심하고 저는 그럴 때마다 자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오늘도 엄마랑 싸워서 엄마는 지금 집에 계시지 않아요.
어떡하면 좋죠?
[답변]
1. 쉽지 않은 결정인데 이 공간에다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으신 점, 우선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마음을 털어놓는 글쓰기는 치유의 좋은 방법입니다. 아주 잘하셨어요.^^
부모님한테서 받는 상처와 고통, 많이 공감해요. 저 또한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만 서로 뀌었을 뿐 본질이 같은 상처와 고통을 퍽 오랫동안 지속 반복적으로 받았답니다. 지금도 마음에 흉터로 남아서 이따금씩 아픈 기억을 불러일으키곤 하지요.
2. 무척 힘드시겠지만 다음 두 가지만 먼저 마음에 꼭 담아두시기 바랍니다.
첫째,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필요합니다. 상처와 고통을 운명이려니 하고 감수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 전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말도 아닙니다.
문제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여 외면하거나, 거부하거나, 절망하면 할수록 더욱 힘에 부치기 마련이므로 평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담담히 현실을 제삼자의 눈으로 한 번 살펴보라는 말이지요. 당사자로서 문제에 깊이 빠져 있으면 현실이 왜곡, 과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 입은 딸의 관점을 잠시 접고 이렇게 질문해 볼까요?
"000씨(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는 왜 이러실까? 무슨 곡절이 있지 않을까? 혹시 어떤 결핍, 예컨대 애정결핍이 원인 아닐까? 그러면 그 분도 아프셔서 그런 것 아닐까?"
타인을 '결점'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분노를 느끼지만 '결핍'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공감을 느낍니다. 아, 그렇구나! 이것이 바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길의 시작이지요. 사람에게든, 사물에게든 다른 측면이 존재하고 그 모든 것을 다 보아야 진실입니다. 결국 이 진실이 구원입니다.
진실 속에서 참된 소통이 일어납니다. 참된 소통만이 우리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합니다. 지금 *** 님의 슬픔은 바로 이 소통의 결핍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잠시 거두고 차분히 진실을 주목하십시오.
둘째, 지금은 이 슬픔이 *** 님보다 훨씬 커 보여서 당장이라도 깔려 죽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 슬픔보다 *** 님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아차리셔야 합니다. 슬픔은 다만 나와 내 삶의 일부일 뿐이지요. 그러므로 그것은 내 생명을 근본적으로 허물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국 지나갈 것입니다. 행복한 시절과 그 기억이 그러하듯 불행한 이 시절과 기억 또한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충고하는 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을 지녀 보세요.
버스는 우리가 조바심 낸다고 빨리 오지도 않고 느긋하다고 천천히 오지도 않습니다. 올 때 옵니다. 그리고 반드시 옵니다. 힘들고 슬플 때 침대에 파묻혀 울지 말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십시오.
3. 맨 앞에서 드린 말씀을 다시 한 번 꺼내겠습니다. 이렇게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계속해서 글을 쓰세요. 어떤 형태, 어떤 내용의 글쓰기라도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태까지의 삶을 역사처럼 써도 좋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주제로 서도 좋습니다. 친구에 관해 써도 좋습니다.
그리고 글 읽기 역시 좋은 치유 방책입니다. 특히 성장소설을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그 밖의 소설, 시 등 모든 문학은 치유의 글쓰기이므로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상담할 수 있는 분을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대뜸 들겠지만 세상이 마냥 비정하지만은 않습니다. 선생님, 사회복지 관련 업무에 종사하시는 분, 성직자 등 주위를 돌아보세요.
가능하다면 저를 찾아 오셔도 나쁘지 않겠지요. 제게 도움의 능력이 없다면 하다못해 책이라도 빌려드릴 수는 있을 테니 말입니다.^^ 힘내세요!
2008년 늦가을에 고2 여학생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부모의 불화, 이혼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됩니다. 그 여파로 나타나는 폭력과 소외는 그 상처를 더욱 깊고 크게 하지요. 사실 이 문제 또한 우리사회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매우 높은 이혼율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계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긴 했지만 최근 보건복지가족부가 거의 두 쌍 가운데 한 쌍이 이혼한다고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1위라는군요.
이혼의 경우 다른 여러 가지 사회적 부작용도 있겠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바로 아이들입니다. 이혼에 이르는 정도 그렇거니와 이혼 뒤의 후유증까지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문화적 특성상 이혼 과정에서 새로이 형성되는 인간관계가 서구적인 합리성으로 이끌리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유난히 정서적 고통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부부 당사자야 어차피 자신들의 일이므로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자녀의 경우는 그냥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에 주체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상처를 완화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당사자보다 더 격심하게 시달릴 수도 있는 것이지요. 사실 부모가 입만 열면 자식들 때문에 산다고는 하지만 내밀한 과정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는 게 맞습니다.
결혼과 이혼이 기본적으로 개인 차원의 문제임은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제도이기도 합니다. 또 사회마다 다른 어떤 특성을 지닌 문화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회문화적 흐름을 조절하고 변화시키는 대승적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런 일을 겪으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됐을 때, 또 어떤 모습으로 세상이 돌아갈지 참으로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