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릎공부가 첫발을 내디딘 2020년 초가을 이전에도 낭풀은 언제 어디서나 내 관심사였다. 숲 아닌 도시 거리를 걸을 때 역시 유심히 그들을 살펴 왔다. 예컨대 광화문 교보를 들를 때는 동쪽 세종로를 출발해 청진동, 수송동, 견지동, 관훈동, 경운동, 운니동, 원서동, 와룡동을 거치며 나무 순례를 했다. 6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내가 눈여겨보던 나무들은 대부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물론 인간이 손을 댔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며리다.

 

교보 뒤 종로1길은 옛 중학천 또는 삼청동천이 흐르던 곳이다. 그 흔적이나마 기억하게 하려 했을까, 짧은 인공 수로가 설치되었다. 옮겨 심었는지 자생인지 알 수 없는 버드나무 몇 그루를 발견하고 크게 반가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얼마 후 그 수로 연장선에 버드나무길을 누군가 조성했다. 주위 경관과 아직은 잘 어우러지지 못하고 눈에 익지 않았지만, 버드나무가 많아져 걷는 즐거움이 더해졌다. 최근 오랜만에 다시 가보았더니 고약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옮겨 심은 버드나무가 그 땅에 든든히 뿌리 내려 힘이 붙었다 싶었는지 가지치기를 단호하게 했다. 정확히 말하면 가지치기가 아니고 분기한 줄기 중동 쳐내기, 그러니까 이른바 닭발 가로수 만들기였다. 그렇게 중동을 쳐내면 그 둘레 또는 부근에서 잔가지가 여럿 일어나 무성한 잎을 피우므로 그늘 효과를 극치로 끌어올릴 수 있어서 그렇게 하는 모양이다. 잎이 없는 동안에는 말 그대로 닭발 형상을 띤 기형 버드나무로 노출된다. 뒤틀린 인간중심주의다.


 

‘짜침’ 넘은 ‘빡침’을 달래며 청진동 언저리를 걸어 종로5길로 들어선다. 석탄회관 옆 건물 무슨 재보험 회사 건물 앞에는 원래 3백 세 노송 두 분이 살고 계셨다. 물론 영업 차원에서 ‘모셔’ 왔을 테다. 그 건물이 헐리고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이다. 당연히 두 분은 또 어디론가 ‘모셔’ 갔으리라. 그렇게 뿌리 잘림 거듭 당하면서도 살아낼 생명을 기리기에는 인간 행태가 무심 잔학하다. 내 나무 순례는 점점 더 자욱한 절망 검푸른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율곡로2길과 4길 사이 이름도 없는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수송공원이 나온다. 거기에는 내가 천수관음으로 받들던 2백여 세 회화나무 한 분이 계셨다. 언제인지 왜인지 모르게 베어지셨다. 지금은 등걸 속이 분해된 채 쓰레기통 취급 받으면서도 어린 가지 생명들을 키워내고 계신다. 또 얼마 뒤엔 그 어린 가지마저 잘려 나가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천수관음 본분을 다하실 것임이 틀림없다. 들를 때마다 안아드렸던 기억을 더욱 또렷이 하며 떠난다.



 

공원 옆 조계사로 들어간다. 기복받이로 내몰린 대웅전 앞 회화나무(4백 세 이상으로 추정), 그 옆 백송(3백 세 이상으로 추정), 수수꽃다리(80세)를 자비안(慈悲眼)으로 다독여드리며 지난다. 내 눈길은 우정총국 시민광장에 늘어선 자작나무로 향한다. 냉대 생명을 아열대 도시에 억지로 모셔 기어이 사달이 났다. 외대 생장 본성을 견딜 수 없어서 줄기 분기를 일으킨 탓에 단정하던 본디 자태를 잃고 헝클어져 버렸다. 도시 미관은 나무 신음으로 우거져 있다.


 

우정국로 건너 인사동9길을 따라가다 백악미술관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율곡 선생 생가터에 4백여 년째 살고 계신 회화나무 한 분을 뵐 수 있다. 본디 음습한 곳인데 사방으로 고층 건물이 에워싸서 더욱 우중충하다. 그래서 회화나무를 모셨다 하거니와 오늘 그분은 육중한 피로감에 잠겨 계신 듯하다. 그 뒤편 공간을 흡연 장소로 지정한 탓에, 오랫동안 시달리셨다. 금연으로 돌려놓았어도 담배꽁초가 낭자하다. 노거수 깊은 기침 소리 우렁하다.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가을비보다 도시 나무 비가가 내 육신과 영혼을 착잡히 적신다. 창덕궁 돈화문 바로 옆에 계신 5백 세 은행나무께 이르기까지 걷는 동안 들은 도시 나무 비가 곡조와 가사를 모두 전하지 못해 죄스러움이 더해진다. 이렇게 계속하다간 내 복장이 터져나가지 싶다. 비그이는 일사 그른 듯하여 따스한 국물에 소주 한잔할 곳을 찾아 나선다. 이래저래 오늘 소주는 상가로운 위안일 테니 처음부터 두 병 시킨다. 그리고 벌컥벌컥 들이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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