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후티 반군’은 서방 언론이 예멘의 저항 세력인 안사르 알라 군을 가리킬 때 으레 쓰는 말이다. ‘반군’이라고 하면 산악지대 동굴에 숨어서 게릴라전이나 하는 비정규군을 생각하기 쉽다. 사실 안사르 알라 세력이 장악한 수도 사나를 비롯한 예멘의 서북부 지역은 과거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처럼 고산지대다. 그러나 동굴 속 후티 반군이라는 말이나 이미지는 안사르 알라 세력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후티는 안사르 알라를 구성하는 주요 부족이기는 하나 안사르 알라는 후티뿐 아니라 북부의 수많은 부족과 정규군 잔여 세력이 망라된 연합체다. 오늘날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는 예멘의 실상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라면 ‘후티 반군’이라는 단순화된 표현을 쓰지 않는다. 안사르 알라는 현재 예멘을 실효 지배하고 있음에도 국제 사회의 공식 승인을 받지 못해 명목상 ‘반군’으로 불릴 뿐이다. 미국과 사우디의 원조에 기생하여 자국 민중을 탄압하고 남부 아덴에 웅거한 소위 ‘예멘 망명정부’와는 달리, 안사르 알라는 예멘 전체 인구의 70〜80%가 밀집한 지역을 확고히 통제하며 실질적인 국가 권력을 장악한 정권으로 기능하고 있다.
안사르 알라 군인들은 ‘샌들 전사’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들은 사우디가 2015년 예멘을 침공한 이래 사우디의 대리전을 치르는 예멘 정부군과 사우디 연합군에 맞서 싸우며 용맹을 떨쳤다. 바이든 정권 말기인 2024년과 트럼프가 재집권한 2025년 초, 그들은 미군과 서방 동맹군에 맞서서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을 증명했다. 그들이 ‘샌들 전사’로 각인된 계기는 자신들이 격추한 미국 첨단 무인 공격기 MQ-9 ‘리퍼’의 잔해 옆에서 샌들을 신은 채 소총을 들고 선 모습이 연이어 보도되면서부터다. 서방 세력과 안사르 알라 간의 갈등은 2023년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작전’ 이후 촉발되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천인공노할 무차별 학살과 파괴를 자행하자, 서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안사르 알라만이 이스라엘 본토 군사시설을 직접 타격하며 실력 행사에 나섰다. 급기야 안사르 알라가 이스라엘과 연계된 선박의 홍해 통행을 전면 봉쇄하자, 미국 등 서방은 2023년 말 ‘번영의 수호자 작전(Operation Prosperity Guardian)’을 발동했으나 봉쇄를 뚫지 못하고 무위로 끝났다. 2025년 초 재집권한 트럼프 정권 역시 단기간에 안사르 알라를 굴복시키겠다며 ‘러프 라이더 작전(Operation Rough Rider)’을 펼쳤으나 참패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군은 사나를 비롯한 예멘 곳곳의 기간시설을 무자비하게 폭격해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냈으나, 군사 전략적으로는 참담한 패배를 면치 못했다. 안사르 알라의 집요한 미사일·드론 비대칭 공격 앞에 미 해군 항모전단은 막대한 요격 비용과 피로도를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트럼프는 작전 개시 두 달도 못 채우고 일방적으로 폭격을 중단하고 사실상 굴욕적인 휴전을 선언한다.
올해 들어와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적 대이란 군사도발 속에서도 안사르 알라는 한동안 정세를 예의주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 7월 13일, 사우디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안사르 알라 고위 대표단이 탄 민항기가 수도 사나 국제공항에 착륙하려는 순간 활주로를 겨냥해 기습 공습을 감행하면서, 잠잠하던 전선에 다시 전쟁의 불길이 치솟았다. 활주로 폭격으로 사나 착륙이 가로막힌 항공기가 홍해 연안의 호데이다 공항으로 가까스로 긴급 회항해 착륙하는 아찔한 위기를 겪은 뒤, 양측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사우디와 안사르 알라는 2022년 정전 협정 이후 불안한 평화를 유지해 왔으나, 사우디가 외교적 관례와 협상의 약속을 짓밟고 저지른 무모한 도발로 인해 전면전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이다. 이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이 미-이스라엘의 비호 아래 자신이 여전히 ‘아랍의 맹주’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저지른 치명적 오판이었다.
오판의 대가는 가혹했다. 최근 전황은 사우디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가며 사우드 왕가의 안위를 직접 위협하고 있다. 서방과 아랍권 주류 언론의 왜곡 보도와는 달리, 사우디의 막대한 오일머니와 첨단 무기를 지원받은 예멘 남부 군벌 세력의 바브엘만다브 해협 요충지 탈환 시도는 안사르 알라의 정교한 반격에 부딪혀 궤멸적 타격을 입고 패주로 끝났다. 나아가 내륙의 타이즈 등 전략 거점 도시들이 안사르 알라 군의 촘촘한 포위망에 갇히면서, 전선의 주도권은 완전히 ‘샌들 전사’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사우디가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 지탱해 온 예멘 남부의 괴뢰 전선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다.
궁지에 몰린 사우디는 황급히 이슬람 종주국의 간판을 내걸고 ‘메카 공동방위협정’을 발동했다. 성지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워 이슬람권 우방국을 예멘 전선에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최근에는 왕세자 빈 살만이 파키스탄에 직접 연락해 정예 해군 특공대를 파병하여 바브엘만다브 지역을 탈환해 달라고 애걸했다는 소식까지 흘러나왔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사우디 본토와 성지 방어에 국한해 상징적 병력만 파견할 뿐 예멘 영내 작전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는 선을 분명히 그었다. 튀르키예 역시 직접 파병을 거부하고 기술·방어 지원에 한정했다. 특정 지역 탈환만을 목적으로 타국 특공대 파병을 조르는 빈 살만의 행태는, 그가 현대 군사 작전의 기초조차 모른 채 벼랑 끝에 몰렸음을 자인한 촌극에 불과하다. ‘메카 동맹’의 허울 뒤에서 드러난 우방국들의 냉담한 반응은 사우디가 처한 고립무원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웅변한다. 정세 분석가들이 사우드 가문의 몰락을 경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우디의 진짜 위기는 국경 밖이 아니라 왕궁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사우드 왕가 내부가 사실상 내전 상태를 방불케 하는 치명적인 권력 암투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권을 휘둘러온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과 군권을 쥔 국방장관 칼리드 빈 살만 형제 간의 갈등은 통제 불능의 임계점에 달했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실패로 끝난 대예멘 도발의 책임론을 둘러싸고 왕실 수뇌부의 갈등이 극에 달한 모양새다.
이 균열은 왕실을 넘어 사우디 국가 체제의 근간인 부족 사회 전체로 번져나가고 있다. 나즈드와 헤자즈의 유력 부족들은 빈 살만 지지파와 칼리드 지지파, 혹은 왕가 자체에 등을 돌리는 세력으로 쪼개져 반목하고 있다. 사우드 가문의 지배 체제는 본래 와하비즘의 종교적 정당성, 부족 간의 정교한 타협, 그리고 막대한 석유 수익의 배분이라는 삼각 축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국가 핵심 석유 시설들이 안사르 알라의 미사일과 드론 사정권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막대한 전비로 국고가 바닥나는 와중에 내부 권력 투쟁까지 폭발하면서, 100년간 이어져 온 사우드 왕조의 통치 정당성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사우드 왕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은 예멘의 안사르 알라 세력을 얕잡아본 오만에 있다. 안사르 알라는 북부 고원지대의 단단한 부족 연합과 자이드파의 종교적 결속을 바탕으로, 구 정규군을 흡수해 현대적 지휘통제 체제를 갖춘 다층적 군사·정치 세력이다. 사우디 주도 연합군의 오랜 공습과 경제 봉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동원 체계를 과시해 왔으며, 수백만 인파가 결집해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를 조직할 만큼 강력한 민중적 지지를 누리고 있다. 비록 샌들을 신고 산악을 누비는 모습 때문에 거칠어 보일지 모르나, 예멘은 사우디와는 궤를 달리하는 유구한 문명의 발상지다. 고대 솔로몬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시바(사바) 왕국’의 고향이자, 아라비아반도에서 보기 드문 몬순기후의 혜택 속에 수천 년 전부터 찬란한 왕조와 관개 문명을 일궈온 땅이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도, 트럼프의 호언장담도, 빈 살만의 페트로달러 환상도 안사르 알라의 ‘샌들 전사’들을 끝내 꺾지 못했던 비결은 바로 이 깊은 문명적 저력과 민중적 대의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샌들 전사들의 총구는 사우디 왕국의 심장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학살을 방조하고 서방 제국주의에 굴종해 온 아랍 군주정에 도덕적 파산 선고를 내린 지 오래다. 페트로 달러로 치장하고 서방의 첨단 무기로 무장했으나 사우디 왕국은 대의도, 신념도, 결속력도 없다. 형제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암투와 부족들의 이반 속에 사우드 가문은 건국 이래 최대의 존망 위기에 직면했다. 대표단 비행기를 노린 사우디의 비열한 도발로 촉발된 현 사태는 샌들을 신은 예멘 민중의 저항 앞에서 오만한 페트로 왕조가 어떻게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가를 증명하는 서아시아 현대사의 거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