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은 낭풀-나무와 풀-을 비롯한 비인간 생명, 그리고 비생명 존재를 공부하고 직접 팡이시질(networking)하기 위한 숲 걷기가 기축이 된 시간이었다; 단순한 자연 복귀 넘어 자연을 살해하고 약탈한 제국주의를 옹골차게 공부해 반제국주의 싸움을 실천하기 위한 수행이자 훈련이었다. 이 커다란 선율을 급히 변주한 날은 9월 13일이었다.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고 받은 충격이 그날 내 발길을 돌려버렸다. 이런 날이 오다니···.

숲 걷기 계획을 일단 짜지 않고 무너진 마음 추슬러 광화문으로 향한다. 세종로를 떠돈다. 부역 국가 무자각 인간이 배설하는 온갖 공해 속에서 학대받는 낭풀 앞을 서성인다. 종묘로 가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담장 밖에 붙박인 낭풀 주위를 기웃거린다. 깊고 고요한 숲은 차마 지금 내가 머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잿빛 칼라하리 한가운데서 부역 국가 침략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중인 동지들을 어찌 외면하겠는가.
이레 뒤에도 나는 잿빛 칼라하리를 떠돈다. 서울살이가 움튼 삼선동·돈암동 골목길, 그리고 그 언저리 헐벗은 숲에서 고단함을 이고 진 낭풀과 마주한다. 어린 시절 흥천사 가던 산자락 오솔길은 막혔고, 정릉 가던 등성마루 길은 흥천사 조실채에 밀려나 있다. 부역 인간은 숲도 침략하고 숲으로 가는 시원 공간도 침략해, 결국은 숲에 깃들고자 하는 숲-인간까지 침략하고 말았다. 나는 기어이 숲과 길을 스스로 복원해 나아간다.
가시에 찔리고 가지에 긁혀서 전우임을 확인하며 60년을 복원해 마침내 어린 시절 뛰놀던 너럭바위에 이른다. 숲과 마을 경계인 이 너럭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내려다보던 잿빛 대도시는 그때와 비교할 수조차 없이 훨씬 더 짙은 잿빛을 뿜어내고 있다. 10대에 동경하던 그곳이 70대에는 전선으로 변해버렸다. 숲 그리움에 잠긴 사람임은 여전하되 제국과 부역 국가 실상을 알아차린 나무-사람이 된 오늘 느끼는 회한은 형언 불가다.
두 이레 뒤에도 잿빛 칼라하리를 떠돈다. [광화문 벤치에 주저앉아 질문을 포개간다. 어느 순간 나와 눈길을 주고받던 땅바닥 돌이 자기 문양으로 조형해 낸 표정 변화로 말을 건넨다. “고난받는 존재를···” 예? 다음 순간, 마무리다. “응시하고 증언하라!” 구체 방법은 내 몫이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거리를 걸어서 나아간다. 도처에서 신음과 비명이 들려온다. 그 소리를 사진에 담는다. <도시 나무 비가(悲歌)>가 탄생한다.](인용)
세 이레 뒤에도 잿빛 칼라하리를 떠돈다. 종로3가역에서 내려 돈의동, 인사동, 공평동, 종로1가, 세종로, 무교동, 다동을 점·점으로 흐르는 나무 따라 걷는다. 도시 경관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곳곳 또는 구석구석 심어놓은 나무들이 어찌 살아가는지 심은 사람도 보는 사람도 도통 관심 두지 않는 적나라한 현장은 슬프고도 역겹다. 인간 타락은 신에 대한 사건이 아니라 비인간 생명, 무엇보다 낭풀에 대한 사건임을 통렬하게 새긴다.
유익 여하 이전에 나무 없이는 인간이 당최 존재할 수조차 없음에도 인간은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져 내렸고 도리어 나무를 열등 생명으로 떨어뜨렸다. 그 과정과 체제를 우리는 제국주의라 부른다. 제국주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깨달은 부역자뿐이다. 깨달은 부역자는 나무를 응시한다; 증언한다. 증인은 욕되나마 끝까지 살아남아 고난받은/는 위대한 존재를 증언해야 한다. 나는 욕된 삶을 욕되게 오늘도 이어간다. 喝!

내 잿빛 칼라하리 순례는 왜 하필 대통령 기자회견 직후였는가? 대통령 기자회견은 전선을 확실하게 이동시킨 선언 또는 선포 사건이다; 싸워야 할 적을 바꾸어버린 도발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선이 넓어지고 적이 늘어났음, 그러니까 ‘나도 적에 포함하라’는, 다시 그러니까 반제 전쟁이 더 어려워졌음을 까발린 자기폭로다. 그는 명백히 기망을 저질렀으며 여전히 그러는 중이다. 하여 나는 저 초원을 떠나 이 칼라하리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