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창욱(목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미군정이 우익 세력들을 포섭할 때, 기독교 집단도 포섭 대상이었다. 한국 기독교와 미국은 아삼육 관계였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인들 대개가 미국 기독교를 이식받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거부감없이 장단이 잘 맞았다.
그렇게 한국 기독교와 미국이 아삼육 관계가 된 것은 구한말 때 부터였다. 미국 입장에서 조선은 황금어장이었다. 황금어장은 선교용어이다. 어부가 다량의 물고기떼를 만나면 대박나는 것처럼, 선교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미국 선교사들에게 조선은 대박 현장이었다.
황금어장답게 선교사들은 조선에 많은 기여를 했다. 기울어져 가는 조선, 급기야 일제에 먹히고 마는 조선에서 유일한 기대처였다. 조선 민중들은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 병원, 교회를 통하여 야소교와 친숙해졌다. 그리고 자연히 선교사들의 고향인 미국도 동경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에 미국 선교사들이 얼마나 많았냐면, 한 가지 정책이 증거한다. 1909년 미국 선교사들이 모여서 중대한 결정을 했다. 이른바 ‘선교지 분할정책’이다. 조선의 각 도 별로 미국의 각 교단이 분할 담당하기로 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미국 북장로교는 강계, 선천, 평양, 재령, 서울, 청주, 안동, 대구, 등 평안도 황해도와 충청북도 일부 지역과 경상북도 지방을 맡았고, 미국 남장로교는 전주, 군산, 목포, 광주, 순천, 등 전라도와 대전 부여 등 충청남도 일부와 제주도를, 캐나다장로교는 함경도 지방을, 그리고 호주장로교 선교부는 부산, 진주, 마산, 거창, 통영 등 경남지방을 맡았다.
이 정책에 따라 미국의 각 교단이 중복을 피해서 선교지를 맡은 것이다.
미국 선교사가 얼마나 많았으면 이런 정책을 세울까, 싶다.
미국 선교사들에게 조선행은 선교사의 사명인,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라는 예수의 명령을 순종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 권력에게는 선교사들의 외국행이 선교사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가 존재했다.
그것은 무엇일까? 1880-90년대, 미국은 아메리카 정복이 거의 끝나갈 시점이었다. 원주민 말살로 시작한 정복은 중미, 남미까지 확장했고 탐욕을 다 채웠다. 이제는 새로운 정복지가 필요했다. 그곳은 태평양 건너 아시아였다. 하지만 이미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정복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었다. 정복을 순탄하게 하려면 이미지를 순화시켜야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바로 선교였다. 미국 권력 입장에서는 선교사들이 미국의 나쁜 이미지를 세탁해 주는 너무도 반가운 존재였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타국에 나가기 좋게 전폭적으로 협조했다.
예를 들면 지금도 선교사들이 가장 큰 애로를 겪는 게 비자문제다. 일반 여행객 신분이기 때문에 기간이 다 차면, 옆나라 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그렇게 체류를 연장하는 것이다.
즉 당국이 본국증명서나 여권, 비자 등을 협조해 주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을 세탁해 주는 선교사들이 아시아로 가는 일을 막을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증명서는 극히 한 예일 뿐이다.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가 얼키고설켜 있겠는가.
조선에 미국선교사들이 득시글거릴 수 있었던 데는 미국 권력의 깊은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선교사들도 그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분야가 다르니 그냥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을 뿐이다. 그리고 헐버트 선교사같은 극소수의 선교사 빼고는 미국 선교사 대개는 미국 권력의 의도에 협조하면서 선교했다. 조선 입장에서는 미국 선교사들이 백프로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미국의 속셈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고종을 보기 좋게 배신했다. 일제의 침략에 방패막으로 미국을 의지했던 고종은 그래서 미국에게 여러 가지 알짜배기 사업권을 줬던 고종은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어떡하든 국제사회에 조선의 처지를 알리고자 했던 고종특사 헐버트 선교사도 조국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미국선교사들은 이렇게 일치감치 조선에 깃발을 꽂을 수 있었다. 조선 교회에 대한 독점적 지위는 일제 강점기 내내 계속됐다. 교회 안에 조선인의 자생적인 모임이 생기면 선교사들은 저주까지 퍼부으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고수했다. 그렇다고 자생적인 모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선교사들의 추악한 면모만 드러날 뿐이었다. 그렇게 미국권력과 같은 모양인 것을 스스로 증명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흐름이 8.15 후 미군정 시기에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검은머리 미국인들을 포섭하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이게 8.15 후 한국기독교의 모습이다. 미국의 시다바리 역할로 내전과 전쟁, 조국 분단에 가담한, 자랑스럽지 못한 부역의 역사다. 그 치부를 가리기 위해 더 반공에 광분한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가 제대로 서려면, 미국과 얽힌 관계부터 청산해야 한다. 한국기독교 현실과 동떨어진 말인가. 그렇더라도 한국이 자주독립하려면 미국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듯이, 한국 기독교도 과거를 청산하고자 하면 반드시 이 길을 거쳐야 한다. 진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