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일이송(영화감독)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남미의 지도. 수개월 전부터 SNS의 세계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밈. 남미 전역이 도미노처럼 극우화됐고 이제 '거의' 브라질만 남았다는 불안감이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기우로 그치지 않았다. 오늘 브라질 대선 1차 선거에서 룰라가 패배했다. 룰라가 근소하게 이길 거라던 여론조사 결과가 모조리 빗나갔다.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아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이겼다.
2차 결선으로 가겠지만, 룰라가 승리할 가능성은 적다. 설령 기적적으로 이긴다고 해도 오늘 선거에서 브라질 상원과 하원을 보우소나루 정당이 휩쓸었기 때문에 팔다리가 묶인 식물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아내 미셸 보우소나루가 오늘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또 두 명의 다른 아들들도 각각 상원과 하원에 당선됐다. 그러니까 감옥에 있는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제외하고, 온가족이 대통령에서부터 의회를 장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우소나루주의의 완벽한 부활이다.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쿠데타를 일으키다 감옥에 갔지만, 그의 가족과 지지 세력들이 뺨에 복수의 점을 찍고 훨씬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극우들은 트럼프 독트린을 완성했다. 남미 대륙 전역에 극우 정권이 들어섰고, 미 극우들은 쇠퇴하는 제국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남미의 민중을 지독하게 쥐어짤 것이다.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자신의 파시즘을 지지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대국을 얻게 됐다.
한 동안 권위주의 괴물들이 남미를 휩쓸게 될 것이다. 소고기, 콩, 금, 회토류 등을 노리는 다국적 기업의 배부른 만찬 식탁으로 수탈될 것이다. 물론 룰라 정부에서 주춤해진 아마존 삼림 벌채율이 다시 치솟게 되면서 인류는 기후붕괴의 지평선을 향해 더욱 빠른 속도로 질주하게 될 것이다.
암울하다.
룰라는 왜 패배했을까? 실업률과 인플레이션도 낮췄고 경제 지표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고려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로 다른 남미 국가들에서 그랬듯, 미국과 CIA의 선거 개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선거 전부터 브라질 법무부가 미국의 선거 개입을 면밀히 조사하는 중이다. 아니면, 룰라 정부 인사들의 부패 스캔들을 지목할 수도 있겠다. 아마도 2차 결선을 앞두고 패배 원인이 다양하게 분석될 것이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룰라 정부가 보우소나루주의를 제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육신은 감옥에 있을지언정, 그로 대변되는 보우소나루주의가 브라질의 뼛속까지 잠식한 터다.
극우들이 장악한 상-하원에 팔다리가 묶여 룰라가 제대로 의정을 펼치지 못한 점도 있겠지만, 룰라는 기존보다 더 우경화된 정치적 기조를 유지했고 이것이 브라질 좌파의 분열을 가져오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흔히 보우소나루주의는 성경, 소고기, 총알의 삼위일체로 설명된다. 성경은 복음주의를, 소고기는 농업 기업을, 총알은 군과 경찰을 의미한다. 보우소나루주의는 복음주의 세력, 농업 기업들, 군과 경찰력을 기둥 삼고 축조된 파시즘적 세계에 다름없다.
이러한 강력한 권력과 우경화 추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보다 진보적이고 담대한 정치 비전과 민중 동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파시스트를 축출한 직후 등장한 정부가 온건하고 우경화된 기조를 취했을 때 언제든 파시스트가 다시 귀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 트럼프를 쫓아내고 등장한 조 바이든 정부가 밍숭밍숭한 중도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트럼프의 부활을 재촉했듯이, 또 보우소나루를 쫓아내고 등장한 룰라 정부가 주춤거리면서 다시 보우소나루주의가 복권되듯이.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은 감옥에 보냈지만, 윤석열주의는 외려 더 기승을 부리는 형국이다. 그 와중에도 이재명 정부의 우경화는 앞서 예시한 경로를 착실히 따라가는 중이다.
오늘 일어난 브라질의 실패는 우리의 내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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