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년 숲을 중심으로 “강력한 시간”, 그러니까 영성과 미학이 공존하는 고밀도 시간을 보냈다. 최근 3~4개월은 인생 내림굿으로 그 5년과 인생 70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지금은 말하자면 마지막 과장 뒷전풀이 시간이다. 느슨하게 일정을 잡아 가벼이 걷고 일상에서 제의 효과가 펼쳐지도록 복귀, 재배치 작업을 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마지막일지도 모를 새로운 발견 이야기를 하려 한다.
지난 일요일 오전, 광화문 교보에 들러 신간 서적을 둘러본 뒤 불광동으로 향했다. 불광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흔히 구기터널 계곡이라 부르는-내게는 미르골- 작은 골짜기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스마트폰 지도에는 영업 중이라고 떠 있는 식당 문이 굳게 닫혔다. 하릴없이 골목을 따라 걷다가 쌈밥이라 써놓은 곳으로 불쑥 들어갔다. 혼자서는 쌈밥을 먹을 수 없단다. 된장찌개나 주문하자, 된장~!
그래서 특별히~! 밥만이라도 돌솥밥을 먹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들여다볼 요량으로 스마트폰을 여는 순간 전혀 맥락 없이 질문 하나가 홀연히 떠오른다: 모유와 미음 중 아기에게 어느 것이 더 달게 느껴질까? 몰상식한 생각인 줄 알면서도 뭔가에 홀리듯 나는 그 질문을 검색란에 올렸다. 돌아온 답 방향은 예상대로인데 그 내용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내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는 정보를 담았다.
모유에 다량 들어 있는 유당(Lactose)이 강한 단맛을 내고 따라서 인간 원초 미각은 단맛에 끌린다. 단순히 “맛있어서” 끌리는 게 아니다. 그 단맛은 아기에게 생명 안전감과 존재 유온감-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부여한다. 이렇게 모유는 육신뿐만 아니라 정신 생존 토대까지 세운다. 장내 미생물과 네트워킹을 이루기 전, 인간 생명 자체가 일으키는 사건이다. 모유 결핍 어두움은 여기서부터 깔린다.
내가 단 음식에 진저리 치고, 쓰거나 담백한 음식에 기울어지는 곡절이 좀 더 정확하게 드러났다; 모유 대신 먹은 미음이 실제 영향을 끼친 일에 이치상 선행하는 원인이 밝혀진 셈이다. 그동안 내가 “빙의 불안”이라 부른 원초 불안과 “빙의 우울”이라 할 원초 우울이 같은 데서 발원했음을 알고 나니 이제야 진정한 해방이 왔구나, 싶었다. 홀가분했다. 때마침 돌솥밥이 나왔다. 밥 퍼내고 물을 부었다.
먼저 뽀얀 막걸리부터 한 양재기 가득 따라 모유로 모시어 꿀떡꿀떡 마신다. 오늘따라 다디달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돌솥 바닥에 있던 밥이 물에 불어 흰죽처럼 되었을 때 그 표면에 뜬 미음을 걷어내 한 숟가락 떠먹는다. 오늘따라 심심하디심심하다. 눈시울이 적셔진다. 천천히 오래오래 씹으며 70년 세월을 접어 찰나에 모은다. 눈시울이 뜨거운 물로 흘러넘치자, 고개 숙여 절한다: 고맙디고맙습니다!
우리 생명 팡이시질(networking)은 다 계획이 있으시어따. 미르골 향하기, 문 닫은 식당 검색해 정하기, 쌈밥집 가나 쌈밥 못 먹기, 된장찌개라서 밥이라도 돌솥밥 먹기, 모유와 미음 떠올리기···. 우연이 제곱 되면 섭리다. 이렇게 복귀와 재배치를 일구며 뒷전풀이 삼매로 들어간다. 삼매경에서 생은 감화한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들여다볼 때만 보이는 찬란함”(『자연은 퀴어하다』)을 살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