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이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체중은 50kg 아래로 내려간다. 은근히 기분 갉아먹는 신열, 시난고난한 호흡기 증상, 무엇보다 기이한 폭발 기침이 신묘하게 기습 종료된 이후부터 대상포진처럼 바람만 스쳐도 아픈 근육통으로 영일 없다. 몇 날 며칠씩이나 잠에서 깨어 병이 건네는 이야기 듣다가 날 밤을 새우곤 한다. 허리가 아리고 다리는 파근하며 활동 감각이 휘주근하다. ‘은화처럼 맑은’ 영 줄 하나 겨우 부여잡고 진실을 뒤좇는다.
모른 채 알아차리고 알아도 모른 채 한 달이 흐르고 보니, 이 시간 전체가 신병 속에서 씻김굿과 내림굿이 갈마든 커다란 굿판이었다. 내게 결핍과 상실 틈새로 때 이르게 주입된 식물성·여성성·성숙성을 씻어 내보내고(씻김굿), 늦게나마 건강한 그러나 낯선 동물성·남성성·유아성을 맞아들이는(내림굿) 의례·몸짓 또는 자세·언어가 재현되고 변주되는 시간이었다. 아프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의학이 개입해서는 안 될 시간이었다.
급격하게 살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알아보고 놀란다.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일흔 살 먹은 남자 사람이 50kg 미만 체중이라면, 게다가 술까지 주야장천 마셔댔다면, 더럭 암 걱정을 들먹여도 호들갑은 아닐 테다. 뾰족한 설명 방법이 없으니 그냥 빙그레 웃고 만다. 웃고 말 일이 아니다. 오늘은 오만 년 만에 숲 걷기 중단이다! 문이란 문은 죄다 열고 하루 종일 바람 길목에 오도카니 앉아 멍때림으로 휴식을 취한다.
생색 없는 평온이 잠시 내려앉는다. 이 간이역에서 내릴 여행이 아니니 다음 행로에 유념한다. 어디인지 모르는 ‘솟을굿’ 역을 향해 다시 일어선다. 거기 또한 아플 만큼 아프고 나서야 닿을 곳인지 나는 모른다. 천명 받는 일이 무슨 상 받는 일은 아니니 전보다 더 깊은 신음 속으로 나를 던져야 하는 일은 아닐까, 오히려 두렵다. 통증이 깊이 가라앉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나는 사부자기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밥을 먹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