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내가 아니라 장점막 밖에서 나와 공생하는 미세 생명들이 이 다급한 말을 듣는다. 미세 생명들은 내게 이렇게 통역해 준다. “오늘은 지하철 갈아타고 걸어가지 말자. 그냥 쭉 가서 마을버스 갈아타고 가자.” 어르신 카드로 절약되는 교통비를 <전쟁 없는 세상> 단체에 기부하기 때문에 나는 마을버스를 타지 않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자고 결정한다.
숭실대입구역에서 내려 승강장을 너덧 걸음 걸어가다가 시선이 갑자기 발치로 뚝 떨어진다. 거기 매미 한 개체가 힘겹게 버둥거리고 있다. 내가 거기로 얼른 다가서자, 덩치가 집채만 한 젊은 남자 사람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간다. 나는 조심조심 매미를 들어 올린다.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그에게 말한다. “괜찮아~ 조금만 참아. 나무한테 보내줄게.” 서둘러 역사를 빠져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팝나무 줄기에 살짝 붙여준다. 천천히 힘들게 그가 나무를 타고 오른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어떤 미래가 닥칠지라도 지하철역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만은 면할 테니 그 구원 요청은 일단 유효했다.

사실 이런 일은 내게 일상이다. 땅강아지, 지렁이, 나방, 무당벌레, 벌, 거미, 심지어 파리까지 수없이 살길을 찾아주었다. 오늘 일을 특별히 거론하는 며리는 내가 느닷없이 귀가 경로를 바꿨다, 즉 다른 경우와는 달리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데서 결과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 변화는 그만한 연유를 담고 있어야 한다. 사실 우연히 일어난 일조차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팡이시질(hyphaeing), 그러니까 네트워킹 작용에 따르지만 요즘 내가 깊이 관심 두는 내밀하고도 정확한 감지 능력 문제의식에 맞춘 과정 배치가 아니었을까?
서구 과학 인과율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내 인식 방법은 ‘소설’에 가깝다. 기껏해야 유사 과학 정도로 폄하될 줄 모르지 않는다. 소설이든 유사 과학이든 서구 과학과 다르다는 이유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소설이다. 인간 지성을 수학에 외주하여 만들어낸 서구 과학 이전 인류 고대 과학에서는 지식과 지혜가 분리되지 않았다. 지혜는 몸 알아차림에서 나오는 적응과 창조 능력이다. 이를 제거한 서구 과학은 일직선으로 제국주의 지식을 향해 질주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시간이 없다. 고대 과학 지혜를 복원해야 인류가 살 수 있다. 내가 주창하는 “범주 인류학”이 바로 그런 자각에서 발원한 지성 운동이다. 범주 인류학은 서구 과학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서구 과학주의자보다 더 깊이 알고 있다. 범주 인류학은 서구 과학을 가로질러 간다. 최근 내가 경험한 놀라운 일 하나를 소개한다.
책깨나 읽는 사람이라면 로빈 월 키머러가 쓴 『향모를 땋으며』를 모를 수 없다. 그가 지닌 사상과 글쓰기가 얼마나 탁월한지를 지나 나는 그 향모 자체에 지극한 관심이 갔다. 자료는 그리 충분하지도 깊지도 않았다. 볏과 식물로 향이 뛰어나고 북미 대륙 선주민은 지구 최초 식물로 여기며 그 향을 매우 귀하게 대한다는 정도였다. 접할 수 있는 길도 찾지 못했다. 외곽 관련 자료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레몬그라스라는 아로마에 가 닿았다. 볏과 식물에서 추출한 아로마로 향이 레몬 비슷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 뿐 레몬과는 전혀 무관하단다. 볏과 식물이라는 데에 희망을 걸고 옆지기한테 부탁해 그 아로마를 구했다. 적어도 내가 맡은 그 향은 레몬과 전혀 비슷하지도 않았다. 그 향은 벼 줄기나 잎에서 나는 향과 거의 똑같았다!
열 살 이전 고향 논두렁 경험, 그 아득함 속에 묻혔던 벼 향이 시간 벽을 찰나에 부수고 기억을 불러냈다. 더 놀랍게도 나는 단박에 이 벼 향이 원시 형태 바닐라 향이라고 직감했다! 사실 벼 향에서 바닐라를 떠올리긴 불가능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낸 데는 밥에서 나는 향에 평소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한국인도 밥 향을 골똘히 생각하는 경우는 없지만 나는 밥 향으로 훌륭한 아로마를 만들 수도 있다고 평소 생각해 왔다. 벼 향과 밥 향을 같은 선상에 올리자마자 직관이 발동했다.

어쭙잖은 내 서구 과학 지식이 반기를 들었다. “바닐라는 난초과 식물일 뿐 아니라 바닐라 향도 여러 복잡한 과정, 심지어 발효까지 거쳐야 추출할 수 있다는데 어떻게 벼 줄기나 잎에서 나오겠는가?” 제법 오랫동안 나는 이 고대 지혜를 발설하지 못했다. 마음에 확신은 드는데 증명할 길이 없어서다. 매미 구조 사건 직후 내게 기이한(!) 용기가 피어올랐다. 두 단계를 거쳐 내 고대 지혜를 서구 과학이 증명한다는 진실을 밝혀냈다.
내 가설 하나: 볏과 식물과 난초과 식물은 한 조상에 갈라져 나온 자손이다. 서구 과학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내 가설 둘: 벼 줄기나 잎에는 바닐라 향을 내도록 하는 성분이나 물질이 있다. 이 또한 서구 과학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좀 더 복잡한 세부 이야기가 존재할 테지만 내가 이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확인” 말고는 서구 과학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홀연한 카이로스 경험이 매미 구조 사건과 연동된다는 진실도 부정하지 못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경로를 좇아 진실에 가 닿고 “살려주세요!”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반대한다면 그대가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