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 탕전실 바깥쪽 긴 다용도실 창문에는 담쟁이덩굴이 흡착근(吸着根) 내리고 무성하게 살아간다. 그들 모습 지켜보면서 틈새로 하늘까지 우러를 수 있는 거기가 내겐 참 정겹다. 16년째 서 온 자리인데 올봄 어느 날 아연 그들에게 말 건넬 마음이 들었다. 낭풀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가 쌓여 시간 중력이 강해지면서 감지하기 전에 카이로스로 들이닥친 듯하다.
내가 말을 건넨 까닭이 있다. 담쟁이덩굴 본성상 흡착면이 형성되는 공간을 우듬지가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덩굴이 번져가기 마련이다. 창문틀인 경우는 여닫으므로 문제가 된다. 닫을 때 잘릴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 나는 손으로 걷어내고 창문을 닫았는데 귀찮아선지 간호사가 잘라내곤 했다. 내 제지로 다시 그러지는 않으나 근본 대책이 없어 변화가 필요했다.
한창 자라던 덩굴 하나가 창문틀 모서리 돌아 흡착근을 붙이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상하지 않게 들어내고 덩굴을 손으로 받쳐 든 채 사람에게 하는 말과 똑같이 이야기한다. “여기로 넘어오시면 창문을 닫을 때 잘립니다. 더 안쪽으로 들어오지 마시고 이렇게 바깥을 향해 올라가세요.” 덧붙여 말한다. “저기 위쪽에 계신 분들한테도 이 말씀을 전해주세요.”
나는 우듬지가 향해야 할 곳을 가리켜 잡아주고 다른 줄기와 잎을 이용해 임시 고정 상태로 만들어준다. 매일 살펴본다. 두세 덩굴이 고개를 살짝 들이미는 기척을 보여서 똑같이 말하고 방향을 잡아준다. 일주일쯤 되자 변화된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능히 들어올 수 있음에도 더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행렬이 멈춰 섰다. 손댈 수 없이 높은 곳도 마찬가지다.

아래쪽-내가 말하고 손댔던 곳

위쪽-말 전해 달랬던 곳
마른 늦장마긴 해도 창문 닫을 일이 조금 더 잦은 요즘 창가에는 그들과 나 사이 평화가 낭자하다. 낭풀들은 인간 말을 알아듣는다. 인간이 그들 말을 알아듣지 못할 따름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다; 그 곡절이 타락과 범죄로 뒤엉켜 있다. 어떤 정치 현안보다도 끽긴한 과제가 바로 이 타락과 범죄를 자각하는 일이다. 진심으로 참회하며 낭풀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