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를 상실한 영아가 홀로 힘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슬기(!)는 장내 미생물 네트워킹에서 왔다. 인간 진화 정보에서는 홀로 힘으로 살 수 있으려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지식이 왔고. 요건 하나: 어른일 것. 그 이야기는 했다. 인제는 남은 한 요건을 이야기해 마무리 지을 차례다: 여성일 것. 우리 속담은 이렇게 표현한다. “홀어미 삼 년이면 쌀이 서 말, 홀아비 삼 년이면 이가 서 말.” 속담 다른 판본은 홀어미 대신 과부를 넣는다.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홀아비와 맞추려면 홀어미를 넣는 게 옳다. 자식 키우는 위치를 부가했을 때 그 차이가 한껏 더 선명하게 드러나니까.

 

내게는 4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제자가 한 움큼 있다. 제법 오래전 집에서 식사 모임을 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결혼한 여제자가 제 남편을 초대해 나중에 도착했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느낀 이상한 광경을 보고 한마디한다. “? 왜 선생님이 주방에 계시죠? 제자들은 앉아서 먹기만 하고···.” 대뜸 대답이 돌아온다. “! 선생님 우리 엄마거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는 식이다. 내가 남선생이고 제자 모두가 여제자이지도 않은데 이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모임은 마치 모녀 동맹과 흡사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자타공인으로.

 

나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엄마 노릇을 해왔다. 세상을 가르치고 삶을 의논하는 일에 더해 먹이고 재우는 일까지 했으니 일테면 틈새엄마였다. 그들에게 한 엄마 노릇은 나 자신에게 한 엄마 노릇 연장선에 있다. 사실상 한평생 모성 결핍 상태에서 웃자란 어른으로 살아왔기에 나는 나 자신에게 엄마 노릇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그런 빈자리가 보이는 아이들에게 스며드는 감수성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결혼한 뒤에 내 옆지기에게도 딸에게도 엄마 같은 남편, 엄마 같은 아버지로 살아왔다. 인정한다,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고 또 슬픈 일이라는 사실을.

 

그 모순 역시 인정한다, 다른 선택 여지가 없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사실을; 내밀 영웅이 벌인 생존 투쟁이라는 사실을. 질병 방어기제임과 동시에 영성 치유인,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역설 사건 보이지 않는 마주 가장자리에는 이 통렬한 각성이 요동한다. 짐승 과장(科場), 아기 과장, 사내(아비) 과장을 정색하고 들여놓은 내림굿을 통해 70년 모순을 달여내니 바야흐로 후천개벽(後天開闢) 시대가 도래한다. 그 들머리에 죽을 만큼 희생한 결과 쌀 서 말 하야니 놓인 대신, 뼈아프게 깨친 결과 아우라지 노나지 물이 변한 젖 서 말이 뽀야니 놓여 있다. 그 젖 먹고 참 건강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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