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재 이름은 『싸리·버들 글숲』이다. 콩과 식물과 버들과 식물을 나란히 놓아 내 식물 본성에 갈음한 표현이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10세 이전까지 자란 내게 그 시절 가장 좋아한 식물이 바로 싸리나무다. 어른이 된 뒤 식물에 본격 관심을 가지면서는 내 본성 닮은 버드나무를 깊이 ‘애정’하게 되었다. 사뭇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은 둘을 내 삶 지향으로 묶어 서재명으로 했다.
최근 도봉산 회룡(回龍) 계곡 아우라지를 드나들면서 그 일대가 물오리나무 영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오리나무 한자식 이름은 산적양(山赤楊)이다. 목재가 붉은빛을 내어 생긴 이름인 오리나무, 그러니까 적양(赤楊)과 비교해 ‘산’을 덧붙였다. 물가에서 주로 자라는데 왜 ‘산’을 덧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물오리나무를 버드나무(楊)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무도 아니면서 버드나무처럼 고도한 정화 능력을 지닌다. 이런 점을 우리 옛사람들은 직관한 듯하다. 그뿐 아니다. 물오리나무는 콩과 식물도 아니면서 질소 고정 능력을 지닌다. 없어야 함에도 있는 것은 치워 주고, 있어야 함에도 없는 것은 채워 주어서, 콩과 식물과 버들과 식물 본성을 한 몸에 구현한 queer 나무다. 꽃말이 ‘장엄’인 며리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오리나무 가지 사이로 저 멀리 도봉산 포대능선이 보인다
물오리나무라는 이름도 산적양이라는 이름도 썩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인제 내가 이름을 바꾼다: 물팥버들 또는 물팥버드나무. 물가에 사는 나무바탕(木質) 붉은 버들 또는 버드나무라는 뜻이다. 콩 가족인 팥이 붉은빛이니 역설 이름 표현으로 ‘똑’이다. 사실 이런 탐색과 상상이 일어난 건 <꿩이 나를 초대했다!> 사건 이후다. 꿩과 소통하니 나무와 소통하는 실마리가 열리더라는 증언이다.
불과 3m 앞에서 4분가량 꿩이 펼쳐낸, 신비하고 상서로운 퍼포먼스는 평생 잊지 못할 카이로스 사건이다. 꿩이 찰나마다 드러내는 근엄한 자태, 마지막 우람하게 집결한 소리와 날갯짓은 실로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나는 기어이 가설 하나를 세운다: 봉황새 이미지는 꿩에서 발원했다. 즉시 자료를 검색한다. 빙고! 여기에 꼭 맞는 글자 궉(鴌)이 있다; 하늘 새 봉황은 본디 꿩이었다.
봉황 현신인 꿩을 만난 닷새 뒤 나는 도봉산 회룡 계곡으로 향한다. 아우라지, 그러니까 노나지 물팥버들께 물과 절로 예를 갖춘다. 말갛고 서늘한 경계 지음이야말로 융합·회통으로 더 엄밀하게 이끈다는 진리를 전방위·전천후 통증과 결 다른 동시성으로 가르치신 숲과 물과 바람, 그리고 빛에 감사 올린다. 천장관절 통증이 소리 없이 그 이름을 내린 오후, 나는 관음 미소에 배어든다.
